상점과 예식장까지 갖췄던 매머드 극장
남진·나훈아 등 한 때 쇼 무대로도 유명

▲ 6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까지 영화와 함께 쇼 공연도 펼쳐졌던 북구 유동의 아세아극장.

웬만한 대도시에는 `아세아’라는 이름을 가진 영화극장들이 있었다.

서울은 물론 부산에도 있었고, 대구에도 광주에도 아세아란 이름을 단 극장들은 있었다.

`아세아’라는 이름 속엔 신문물이 들어오던 개항기의 향기가 묻어 있다. 50~60년대 한국영화 붐과 함께 시작된 극장들 역시 당대 사람들에겐 신문물과 크게 다르지 않게 여겨졌을 터.

하지만 지금까지 그 이름을 제대로 유지한 곳은 복합관으로 변모에 성공한 대구의 씨네아시아 정도에 불과하다. 세운상가 내에 있던 서울의 아세아극장은 청계천공사와 함께 2001년 사라졌다. 광주시 북구 유동의 아세아극장도 지금은 간판만 남아 있을 뿐이다.

60년대는 도시화와 산업화로 광주 인구가 집중되기 시작하던 때.

이 시기 광주엔 제일극장과 현대극장을 시작으로 시민관(대인동), 문화극장(일신방직 근처), 한일극장, 동아극장 등이 문을 열었다. 아세아극장은 그 뒤 68년 북구 유동 50번지에 문을 열었다.

지하1층 지상 6층짜리 이 건물은, 1층에 상가와 2층에 예식장 시설까지 갖춘 매머드급이다. 워낙 층간 높이가 높아, 인근 다른 건물과 비교하면 8층 이상은 돼보인다.

극장 설립자는 고인이 된 김창섭씨. 하지만 다른 일부 극장에서 보였던 자식대까지 `가업’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김 씨의 사후 극장건물은 96년 김수철이라는 인물에게 팔렸다.

북구청에 따르면, 이후 99년에 극장대표자를 김광준 씨로 변경신고한 게 기록의 마지막이다. 휴업이나 폐업신고도 없이 어느날 문을 닫은 것이다. 다만 우키시마마루호 사건을 다룬 영화 `아시안블루’가 2001년 9월 상영된 바 있어, 최소한 그 때까진 극장 명맥을 이었다고 추정할 뿐이다.

북구청 관계자는 ?법령상 극장이 계속 영업을 하지 않으면 직권말소도 가능하지만, 그 경우라도 극장주에게 사전통보를 해야 하는데 한 때 찾아봤지만 알 길이 없더라”고 했다.

등기부상 극장건물은 98년부터 가압류가 시작됐고, 결국 경매시장에 매물신세가 됐다. 지난해 5월에서야 이 지역 한 주택건설업체가 주인이 됐다.

그런데 이처럼 사업부진과 이후 경매, 그리고 부동산 또는 건설업체로 소유권이 넘어가는 과정은 이미 문 닫은 계림극장이나 태평극장과 닮았다.

특히 계림극장의 경우 올초 부동산업체가 넘겨 받은 뒤 최근 주변이 도시재개발지역으로 지정된 바 있다. 아세아극장도 지난해 새 주인을 만난 뒤 지난 5월 극장 일대가 도시환경정비구역으로 지정돼 묘한 공통점을 보인다.

현재 극장건물에는 1층에 다방과 옷가게를 비롯해 모두 5개 업체만 영업을 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 7개 업체에서 두 개 업체가 줄었다. 예식장도, 캬바레도 문닫은 지 오래다.

76년 청소일을 시작으로 현재 건물 관리인까지 32년을 이 극장과 함께 해온 김희성(73)씨는 ?예식장은 내가 이곳에 일하기 전부터 있었는데, 극장문을 닫을 즈음 함께 닫았다”며 ?터미널이 광천동으로 옮긴 뒤 대부분 예식장들이 그쪽으로 쏠리면서 이곳도 함께 어려워졌다”고 했다.

80년대 중반엔 예식장을 포함해 건물 전체적으로 내외부를 새로 도색하는 등 정비를 단행했다. 이후 예식장은 잠깐 잘 되는가 싶었지만, 터미널 근처로 몰리는 예식손님들을 잡기엔 역부족이었다고 한다.

80·90년대 아세아극장은 재개봉 영화 두편을 연속상영했다. 80년 즈음 한 때 개봉관 지위를 얻은 적도 있었지만 몇달 정도였다.

보다 앞서 70년대의 아세아극장은 `쇼’로 유명했다. `광주의 극장문화사’ 저자 위경혜 씨에 따르면, 70년대 초중반에 걸쳐 한 해 평균 세번 정도 남진·나훈아·하춘화·바니걸스에서 코미디언 배삼룡까지 당대 인기스타들의 쇼가 무대에 올랐다.

70년대 이곳에서 10년 가량 영사기사로 일했다는 유영제(현 롯데시네마 영사실장) 씨는 ?간혹 대형가수들의 쇼가 무대에 올랐다”며 ?한 번 (쇼를) 하다 보니 이어서 계속하게 됐던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잇단 쇼가 가능했던 데는 또다른 내외부 요인도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일단 극장구조다. 층간고도가 높은 데다, 3층에서 들어가 4층과 5층이 분리되지 않은 관람객석구조는 공연환경에 유리했을 것. 여기에 아세아극장 위치도 쇼 무대 성공의 또다른 배경으로 꼽힌다. 아세아극장은 당대 광주 최대규모였던 양동시장과 다리하나 건너편에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역시 이젠 `과거’가 됐다. 한 때 극장과 예식장 손님을 유인하며 주변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했지만, 도심의 변화 속에 함께 역사 저편으로 사라질 운명을 앞두고 있는 것이다.

북구청 건축과 관계자는 ?아세아극장을 포함한 임동·유동지역 일대 8만6793㎡가 지난 5월15일 도시환경정비사업구역으로 지정됐다”며 ?앞으로 조합설립과 사업시행계획 등의 일정이 진행되면 극장을 포함한 일대 건물들은 전면철거될 것”이라고 했다.

이광재 기자 jajuy@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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