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전용극장 시대의 `막차’
80년대 개관…화제의 개봉작으로 인기 몰이

▲ 지금은 리모델링으로 건물 외관이 교회로 바뀌어 흔적조차 찾기 어렵지만 아카데미극장은 광주 동구 충장로 5가에서 80·90년대 상권을 이끌었다.

한복집과 양복점들이 줄지어 선 충장로 5가. 천변 방향 영도주단 골목으로 접어들면 4층짜리 교회건물이 나온다. 엔터시네마와 등을 맞대고 있는 이 건물은, 겉모습과 달리 그 안에 광주 전용극장들의 막내였던 아카데미극장을 품고 있다.

리모델링으로 외피를 바꾼 지금, 극장 흔적을 찾아보긴 힘들다. 다만 1층 계단 벽에 붙은 ‘아카데미빌딩’이라는 황동팻말이나, 인근 다방·세탁소 간판에 들어간 ‘아카데미’라는 이름에서 과거사를 가늠케 할 뿐이다.

건물 1층 기둥에 붙어 있는 ‘준공표지석’의 ‘1982년9월30일’은 이 건물 극장사의 시작을 알려 준다. 광주의 극장전용 건물들이 대개 50~60년대 들어선 것에 비춰볼 때, 아카데미극장의 개관은 그야말로 ‘최신’이었다. 이미 인근 150미터 반경 안에 광주·현대 등 쟁쟁한 극장들이 들어 서 있었지만, 새로운 시설과 화제의 개봉작들로 승부수를 띄웠다.

하지만 문닫은 시기는 다른 극장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2000년대 초반이다. 처음 극장을 지을 때 소유자는 따로 있었지만, 83년말 이후 백정인 씨가 건물을 인수해 운영했다. 백 씨는 앞서 대인시장 근처 시민관이라는 극장을 운영한 경험이 있었다.

백 씨는 2002년 극장건물을 매각했고, 이후 경매를 거쳐 2006년부터 한 교회의 소유가 됐다.

극장출발 당시 지하 2층에는 캬바레, 지하 1층은 주차장, 그리고 지상 1층은 다방과 상가가 있었다. 2층엔 예식장도 있었고 극장은 3·4층을 차지했다. 하지만 이후 내부 시설들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

지하 2층의 캬바레는 얼마 지나지 않아 ‘구라파 나이트’클럽으로 바뀌었는데, 한 때 시내에서 가장 ‘물 좋은 곳’으로 알려지면서 문전성시를 이뤘다고 한다. 하지만 극장보다 먼저 문을 닫았다.

2개 예식홀이 있던 2층 예식장은 이후 볼링장으로 변신하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90년대 초에 아카데미극장 2관(소극장)으로 변신을 거듭한다. 당시 1·2관으로 나뉜 ‘사건’은, 광주 극장사상 최초의 복합상영관으로 기록된다. 아카데미 2관은 나중에 ‘신영극장’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나이트클럽과 다방·볼링장·극장이 동시에 영업하던 시절이, 아카데미극장의 최대 호황기로 꼽힌다. 놀이와 예식과 만남이 한 곳에서 해결됐으니, 요즘말로 멀티플렉스쯤 되겠다.

80년대 중고교를 다녔던 이들에겐, 한번쯤 아카데미극장에서 단체관람을 했던 기억이 있을 터.

극장골목 입구에서 20년째 ‘아카데미세탁소’를 운영하고 있는 이차남(67) 씨는 “극장 덕에 예전엔 이 일대가 정말 대단했다”며 “특히 학생들 단체관람이 많았는데, 한번씩 몰려들면 노점상들과 엉켜 북적북적했다”고 회고했다.

학생 단체관람이 많았던 이유에 대해, 84년부터 문을 닫을 때까지 극장에서 근무한 김종현(66) 씨는 “일종의 관객유치 전략이었고 실제 맞아 떨어졌다”며 “무엇보다 좋은 영화를 많이 상영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1관에 이어 2관이 문을 닫을 때까지 줄곧 극장입구에서 표를 받는 수표주임을 했고, 지금도 극장건물 지하 주차장 관리인으로 일하고 있다.

아카데미극장이 황금기를 구가하던 80년대를 지나 하강곡선을 그리기까지 주변에 많은 변화들이 있었다.

가까이 있던 대인동의 공용터미널이 92년 광천동으로 옮겨간 게 한 요인으로 꼽힌다.

아카데미극장 골목 입구에서 30년 넘게 양복점을 해온 이강국(62) 씨는 “극장 지하의 ‘구라파 나이트’라고 하면 시골에서도 사람들이 놀러올 정도였다”며 “그런데 대인동 터미널이 옮겨가면서 적잖이 타격이 됐을 것”이라고 했다.

99년엔 7개 상영관을 갖춘 엔터시네마가 극장과 등을 맞대고 개관했다. 아카데미극장 뿐만 아니라 인근 단관이던 광주극장과 현대극장에게도 직간접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변화는 필름배급방식에서 왔다는 지적이다.

아카데미극장 수표주임이었던 김종현 씨에 따르면, 기존 영화배급은 개봉영화의 경우 필름 한벌만 광주에 내려와 개봉관의 독점상영체제였다. 아카데미극장에서 ‘007 시리즈’가 개봉한다는 말은, 광주시내에서 그 곳에서만 볼 수 있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배급사가 영화필름을 여러벌 배급하면서부턴, 관객들에게 극장 선택권이 생겼다.

김씨는 “과거엔 영화자체로 승부가 됐지만, 배급방식이 바뀌고 복합상영관이 밀려들게 되면서 극장 접근성과 상영작 숫자 측면에서도 다른 극장들과 경쟁을 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복합문화공간으로서, 그리고 좋은 영화 선점으로 지역 상권까지 이끌던 아카데미극장.

그러나 2001년 인업존으로 상호를 변경해 운영해오다 2003년 폐업한다. 480석이던 1관 관람석은 현재 교회측의 예배당 객석으로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200석의 소극장이던 2관 역시 2002년 페업한 뒤, 현재는 사무실로 바뀌어 있다. 이광재 기자 jajuy@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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