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작업 중이나 `오월사적지’ 대책은 없어

▲ 80년 5월 당시 계엄군과 시민군의 총격전이 벌어졌고 수백명의 민주인사들이 고초를 겪어 5·18사적지 22호로 지정된 광주교도소. 2012년까지 북구 삼각동으로 이전 예정이지만 5·18사적을 고려한 어떠한 향후 활용계획도 없는 상태다. <광주드림 자료사진>

5·18사적지인 옛 전남도청이 아시아문화전당건립 과정에서 난맥상을 보이는 가운데, 역시 5·18의 사적지인 광주교도소도 관심이 쏠린다. 2012년까지 이전될 현 광주교도소 부지에 대한 사후 계획이 없어, 자칫 또 하나의 ‘별관 논란’이 재현될 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7일 광주시와 광주교도소 등에 따르면, 1971년 현재의 자리에 둥지를 튼 광주교도소는 시설노후와 공간협소, 주민민원 등을 이유로 이전 작업이 진행중이다. 이를 위해 교도소측은 1191억원을 들여 육군 31사단 예비군 훈련장 주변 삼각동 상월산 기슭의 땅 28만6000㎡를 매입해, 현재 2000명 수용 규모를 1500명으로 줄여 건물을 짓기로 했다. 부지매입률은 현재까지 72%. 당초 계획상으로는 오는 10월 실시설계에 이어 2010년 착공예정었지만, 매입 속도가 더뎌 이전 목표 시점이 다소 미뤄질 수 있다는 게 교도소 측의 설명이다. 산적한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교도소 측은 정부의 토지수용 조치를 통한 사업진척 가능성에 낙관적이다.

그런데 문제는 교도소가 옮겨지고 난 뒤다. 광주의 북쪽 관문에 위치한 광주교도소는 80년 5·18당시 광주소식을 외곽으로 알리려 나가던 시민군과 계엄군 사이에서 치열한 총격전이 벌어졌던 곳. 또한 상무대 영창을 거쳐갔던 4000여 명의 시민들 가운데, 400여 명이 고초를 겪은 곳이기도 하다. 때문에 광주시는 이곳을 5·18사적 제22호로 지정해 표지석도 세워놓았다.

하지만 교도소가 떠난 뒤 이 사적지의 운명에 대해선 아무도 모르는 게 현실. 무엇보다 현 소유주인 법무부가 이전 후 활용계획을 세우지 않은 탓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과거엔 기존 부지를 매각한 대금으로 새 시설을 지었지만 정부 방침이 바뀌어 별도 예산이 투입되고 있으므로 이전 후 활용계획을 따로 세우지 않았다”며 “이전이 끝나면 기존 부지 처분권은 기획재정부 소관으로 넘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시 각 부서에서도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시 도시계획과 관계자는 “한 마디로 (법무부가) 팔지 안 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현재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했고, 재산관리 관련 부서 관계자는 “향후 활용계획이 없으니 담당부서가 딱히 정해지지도 않았고, 더욱이 시로선 재원도 없는 데다 사업 우선순위에서도 밀려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혹시 국비사업 차원에서 접근이 된다면 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적지 담당부서인 민주선양과도 “남의 땅을 가지고 우리가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는 노릇”이라는 입장이다.

이런 가운데 5·18단체에선 사적지로서의 보존가치를 주장하고 있다. 오월구속부상자회 양희승 회장은 “80년 5월 항쟁으로 광주교도소에는 427명이 수감됐었다”며 “앞서 70년대 민주화운동 관련자들까지 고려하면 광주교도소의 보존가치는 크다”고 말했다. 이어 “향후 개발이 되더라도 독방으로 구성된 제2사동(일명 특사)만이라도 원형 보존하자는 게 우리 입장이고, 앞으로 법무부나 광주시에 전달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향후 계획 없는 법무부, 손 놓고 있는 광주시, 그리고 아직 `혼자 생각’뿐인 오월단체. 충분한 사전 준비과 협의가 없으면, 오월사적지로서의 광주교도소는 또 하나의 큰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는 게 최근 `옛 도청 별관 논란’의 교훈이다.

이광재 기자 jajuy@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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