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법 휴게에 무임금 노동·해고 공포·갑질까지…”
‘최저임금 인상과 경비노동자 처우 증언대회’

▲ 초소를 벗어나 쉴 수 있게 마련된 광주 모 아파트 경비원 휴게공간.
 “지금 제가 일하는 아파트는 경비원 휴게시간을 11시간이나 잡아놓고 있습니다. 오전10시에서 10시30분, 점심시간 12시에서 1시30분, 오후 4시에서 4시30분, 저녁식사시간 6시에서 7시30분, 심야 시간 11시에서 다음날 아침 6시까지 11시간이 휴게시간입니다. 말이 휴게시간이지 택배 업무며 승강기 고장이며 쉴 수가 없습니다. 휴게공간이 따로 있으면 쉴 수 있겠지만 휴게공간이 따로 없고 초소에서 무조건 대기해야 합니다. 집이 10분 거리여서 밥이라도 먹고 오면 좋은데 그것도 못하게 하고 초소에서 해먹게 합니다. 초소가 한 평 남짓인 데다 화장실까지 같이 있어요. 에어컨도 없고. 화장실 냄새나는 초소에서 밥을 지어먹어야 합니다. 휴게시간을 11시간이나 늘려놨어도 내년 1월1일부로 현재 근무하고 있는 경비원 32명을 16명으로 줄이겠다고 합니다. 용역회사라도 누가 나가고 어떻게 되는지 알려줘야 하는데 12월 중순이 다 되도록 아무 말이 없어요. 하소연 할 곳도 없고 답답합니다.”

 북구의 한 아파트에서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는 A씨. 이미 11시간의 휴게시간을 적용받고 있었지만 내년에는 절반의 인력이 해고될 상황으로 내몰렸다. 해고되는 16명에 속하지 않고 일자리를 지키게 된다고 해도 노동조건은 더 열악해질 게 자명한 상황.

▲아파트 경비 노동자 근로실태 들여다보니
 
 내년 최저임금 인상을 앞두고 편법으로 휴게시간을 늘리거나 경비 인력을 감축하는 아파트들이 늘어나면서 경비 노동자들이 또 다시 벼랑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12일 오전 광주시청 ‘행복드림실’에서 열린 ‘최저임금 인상과 경비노동자 처우 증언대회’에선 ‘갑질’ 횡포에 대한 경비노동자들의 생생한 증언들이 터져 나왔다.

 이날 증언대회에선 특히 휴게시간에 대한 문제들이 불거져 나왔다. 대부분 아파트들이 경비원의 임금을 줄이기 위해 휴게시간을 두고 있지만 말이 휴게시간이지 무임금 노동시간을 강요당하고 있다는 증언들이다.

 “휴게장소가 따로 마련돼 있지 않으니 좁은 곳에서 그대로 쉴 수밖에 없다. 택배까지 들여놓고 관리를 해야하니 좁고, 여름에는 에어컨도 없어 정말 힘들다. 밤 12시가 넘은 휴게시간에도 택배를 찾으로 주민들이 수시로 문을 두드린다.”

 “아침 밥을 못 먹고 온다고 해서 7시부터 8시까지 휴게시간으로 까고 점심시간 1시간 반을 깐다. 저녁 시간 한시간 반을 까고 12시부터 새벽까지 휴게시간으로 해서 무임금 시간이다. 그 시간에 쉴 수가 없다. 소방벨, 층간소음 인터폰, 취객들 오고…아예 퇴근을 하도록 하는 것이 낫지 않냐.”

 “우리 아파트는 점심 2시간 저녁 2시간 야간 6시간 총 10시간을 휴게시간으로 잡고 있어서 급여도 140만 원 남짓 받는다. 휴게 장소도 따로 없고 초소에서 대기하면서 민원처리를 해야 한다. 에어컨은 내년에 설치해준다고 했는데 그 때 가봐야 알 것 같다.”

 “우리 아파트는 지금 휴게시간이 8시간인데 내년에 최저임금 인상으로 주민들 관리비 부담 줄인다고 휴게시간을 1시간30분을 늘려 9시간 30분이 됐다. 지금과 똑같이 일하지만 급여는 그만큼 줄어든다는 의미다.”

 증언들에 따르면 이미 휴게시간을 늘릴 만큼 늘려버린 아파트들은 내년 경비원 인력 감축에 나서고 있다. 11시간 휴게시간을 두고 있던 북구의 A 아파트의 경우 현 32명 경비원을 16명으로 감축하는 안이 주민투표를 통과했다. 이미 휴게시간을 10시간 두고 있는 서구의 B아파트의 경우 현재 10명의 경비원을 6명으로 줄일 예정이다.
 
▲“날이면 날마다 몇 명을 줄이네…”

 게다가 일상적으로 해고 불안을 겪고 있어 스트레스가 심하다는 증언도 나온다. 55세 이상자의 노동자들은 ‘2년 이상 고용 시 정규직으로 간주’하는 기간제법 기간제한 예외사유로 인해 경비노동자들은 계약만료라는 쉬운 해고에 노출돼 있다. 게다가 간접고용의 경우 단기계약이나 쪼개기 계약도 늘어나고 있어 고용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내년 1월1일부터 인원을 절반으로 줄인다고 지난 6월부터 공고가 붙었는데 어떤 기준으로 자르는지 누가 잘리게 될지 아직 아무도 몰라서 다들 불안해한다. 이건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 쫓겨날지 몰라 밥맛도 없고 잠도 잘 안온다.”

 “날이면 날마다 몇 명을 줄이네, 나이로 자르네, 경력순으로 자르네…이야기를 한다. 이런 말이 들릴 때마다 자존감이 무너지고 하루라도 빨리 그만두고 싶은 심정이다. 매년 이런 현상이 반복된다. 자긍심을 갖고 일하고 싶은데 현실은 너무 힘들다. 예전에는 인원감축 공고문을 경비원들이 직접 붙이고 다녔는데 최근에 언론에서 언급된 후로는 관리소 직원이 몰래 붙이고 간다. 하지만 뗄 때는 결국 우리손으로 떼러 다녀야 한다.

 쉬운 해고에 놓여있는 경비원들은 그 같은 이유로 입주자대표회의나 관리사무소 등의 갑질에 노출되기도 했다.

 “주차 문제로 다른 동대표에게 말을 했다는 이유로 자치회장이 단지 내 길거리에서 욕설을 하고 ‘너 같은 놈은 용역회사에 말 한 마디 하면 해고 할 수 있다’고 협박을 하고, 자치회 부회장이란 사람은 자신의 소유 밭에 근무 시간에 저를 불러 풀베고, 땅 뒤집고, 퇴비까지 뿌리게 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겨울철 작업복·모자 하나 지급안돼”

 “추운 겨울이 되었는데 겨울 작업복, 겨울모자 하나 지급하지 않는다. 한 달에 세 켤레씩 지급하도록 돼 있는 장갑뿐만 아니라 화장지, 볼펜 등 어느 하나 지급해주는 것이 없다. 좁은 초소에 에어컨, 냉장고 하나 제대로 설치된 곳이 없다. 겨울이 와서 춥다고 하니까 조그만 전열기 하나씩 지급해 주면서 두 개 들어가 있는 열선도 전기료 많이 나온다고 한 개 빼버리고 지급했다. 서글프다. 그래도 이런 곳에서 수년 간 참고 일했는데 그나마 여기서도 쫓겨날지 몰라서 걱정이다.”

 이날 증언대회를 주최한 광주비정규직센터와 광주지역일반노조 측은 아파트 경비 노동자들의 근로조건 개선과 인권이 보호되기 위해선 △위탁관리가 아닌 자치관리 형태로 아파트 관리가 정착돼야 하며 △기간제법, 근로기준법 등 각종 법제도가 개정돼야 하며 △입주자 대표회의와 입주민들의 의식개선 △지자체 및 관계기관의 지원책 강화 △경비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설립 등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광주비정규직센터 강세웅 대회협력국장은 “아파트 관리가 기업경영하듯 이윤의 논리로 가고 있다”면서 “하지만 아파트는 마을 공동체로 경비노동자 역시 공동체의 한 구성원으로 함께 갈 수 있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황해윤 기자 nabi@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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