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산구청장 도전 “시민이 빛나는 정치로 판 바꾸고 싶다”

▲ 지난 22일 투게더광산 나눔문화재단에서 만난 강위원 상임이사가 자신이 꿈꾸는 광산의 미래 비전을 설명하고 있다.
 “광산구라는 ‘큰 집’에서 의미있는 모델을 만들고 싶었어요. 시민력에 기반한 자치의 힘. 그 전세계의 표준이 바로 광산구가 되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지난 22일 투게더광산 나눔문화재단에서 강위원 상임이사를 만났다.

 광산구 더불어락(樂) 노인복지관 관장, 투게더광산 나눔문화재단 상임이사, 광주주먹밥은행 은행장 등 그의 이름 뒤엔 여러 ‘직함’들이 붙는다.

 전남 영광에서 여민동락 공동체 활동을 12년째 이어왔는데 광산구 생활도 어느덧 8년차다.

 그는 광산구를 “새로운 가능성을 준 용광로 같은 터전”이라고 했다. 이 말대로 그는 광산구에서 정치인으로의 변신을 준비 중이다.

 “원래 여민동락을 설립하면서 꿈이 있었어요. 작고 강한 공동체의 모델을 전국에 확산하는 과정을 통해 국가 진보에 기여하자. 그리고 광산에서 그러한 미래를 위해 어떻게 가야하는지 학습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추상적 관념에 있던 민주주의, 자치를 구체적 생활현장에서 실험하고 많은 것을 얻었죠. 젊은 도시, 생산도시, 농촌과 도시가 공존하는 복합 도시. 이런 광산구가 기초 지자체의 혁신모델을 만들어낼 수 있는 보편적 가능성을 가진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80년대 선배들관 다른 방식으로 기여하자”
 
 광산구를 ‘시민력에 기반한 자치의 세계적 교과서’로 만들고 싶다는 것. ‘강위원’이 정치에 뛰어든 이유는 이렇게 정리할 수 있었다.

 “마을 곳곳, 광장에서 민주주의가 꽃피우는. 그래서 민주화의 성지 광주가 ‘세계시민공화국’으로 가는 교두보가 광산구가 될 겁니다.”

 1989년 서석고등학교 3학년이던 그는 노태우 정부의 전교조 탄압 반대시위를 주도하다 제적당했다. 검정고시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노동자로 살다 1994년 전남대 국문학과에 입학한 뒤로는 전남대학교 총학생회장,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의장 등을 지내며 90년대 학생운동의 복판에 섰다. 그는 또다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돼 징역 5년을 선고 받고 4년2개월만에 출소하는 고초를 겪었다.

 “80년대 선배들은 혁명을 성공시켜본 대중운동의 태산같은 자부심이었죠. 그에 비해 90년대는 학생운동이 쇠락하며 사회운동 지형변화 속에서 자리찾기에도 실패했어요. 이 과정에서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매순간 잃지 말아야 할 스스로 사명감이 있었어요. 80년대 선배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기여하는 삶을 살자.”

 그가 주목한 것이 마을의 풀뿌리 민주주의였다. “여민동락, 더불어락 노인복지관, 투게더광산을 10여 년 넘게 하면서 과거 관치시대와 달리 자치와 협치 시대가 갖는 행정력의 의미가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게 됐어요. 더불어락 노인복지관은 복지가 마을과 공유하고 마을 자치와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실험의 광장이었죠. 대한민국 1호 ‘노인협동조합’을 만들고 어르신들이 십시일반 기금을 마련해 북카페를 열고. 이는 곧 광산의 정형화된 주민총회의 기반이 돼 전국으로 확산되기도 했습니다.”
 
▲“투철한 자부심과 성찰, 반대말 아니다”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지금 이 시기 정치에 도전한 이유가 궁금했다. 이전부터 정치권의 ‘러브콜’이 적지 않았지만 현장을 지켰던 그였다.

 “이전의 정치는 시민권을 확보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어요. 명망있는 변혁가, 운동가들이 평범한 정치인으로 추락하는 것도 봤구요. 그런데 지난 촛불을 거치면서 정치가 시민권을 얻었다고 생각했어요. 행복의 요체가 곧 정치의 정상화다. 이에 그간 마음에 품은 사명감을 바탕으로 욕심을 낸 것입니다.”

 ‘운동권 출신’의 정치인을 향한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지도부 출신의 인사가 주변의 옹립 분위기와 스스로의 자존감에 사로 잡혀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 외골수로 흐를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그런 지적에 동의합니다. 저 역시 가해자이거나 피해자일 수 있죠. 다만, 과거에 그런 한계가 있더라도 성찰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대에 맞는 러더십을 구축해 왔는가, 이게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과거 리더십에 갇혀 있지 않으면서 학생운동 리더십이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바탕을 만들어야 정의로운 신념이 외골수로 전락하지 않고 사회적 힘을 모아가는 유능한 마중물이 될 수 있는 것이죠. 투철한 자부심과 성찰은 결코 반대말이 아닙니다. 성찰력 없인 성숙도 없습니다.”

 농촌·노인·복지·공동체 일꾼이었던 그에게 정치는 낯선 것이었다. 주변 관계가 폭발적으로 확정하더라는 말로 ‘정치신인’의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다.

 차기 광산구청장 선거는 현 민형배 광산구청장의 광주시장 선거 도전으로 매우 치열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특히, 더불어민주당은 입지자들이 몰리면서 당내 경선이 최대 승부처가 될 전망이다.

 그럼에도 그는 “낭만을 잃지 않겠다”는 신념을 강조했다.

 “매일 아침 나설 때마다 생각합니다. 다시 면도날 위에 서있다. 정치가 직업이 되면 안 된다, 이걸 잊으면 안 된다. 시민들을 만나면서도 일시적 이미지로 표를 구걸하거나 이러지 않으려고 애씁니다. 저는 해맑은 아이들, 폐지 줍는 어르신 등 여러 사람을 만나고 직접 현장을 확인하며 뛰려 합니다.”
 
▲“리더란, 잘 흐를 수 있게 물꼬 트는 사람”
 
 광산구는 유독 토착 세력이 기반이 가장 공고한 지역으로 이해된다. 새로운 변화를 시도할 때 기존 세력과의 관계 설정을 어떻게 할지가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

 강 이사는 “그 점은 가장 자신있다”고 단언했다. “더불어락 노인복지관에 있으면서 ‘나는 광산 사람이다’는 5300명의 어르신들과 살았습니다. 관장으로 일을 할 때 13명의 ‘블랙리스트’ 명단도 받았는데, 저는 그게 그 분들의 역사성과 광산에 대한 무한한 애정에 기인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악성 기득권으로 배제하지 않고 그 애정을 잘 활용할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아주려 했죠.”

 사례로 든 것이 복지관 식당 값 인상 문제였다. “비용을 올리려니까 대단히 반대가 심했는데, 그때 저는 식재료 등 모든 정보를 다 드리고 어느 정도 가격이 적정한지를 어르신들이 직접 판단할 수 있도록 했어요. 그랬더니 어르신들이 일주일 만에 밥값을 올리자고 하셨죠.”

 그는 ‘단체장에 필요한 덕목’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강조했다. “리더는 논에 물을 댈 때 이미 흐르는 물이 잘 흐를 수 있도록 물꼬를 잘 트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대부분 본인이 물을 파려고 하는데, 이미 지역 안에 여러 자원들이 넘쳐나고 있거든요. 이걸 어떻게 구슬처럼 꿰고 하나의 비전으로 조정할 건지 물길을 내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정보를 공유하고 주민이 스스로 판단하게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죠.”

 한편, 강위원 상임이사는 내달 4일 오후 3시 광산문화예술회관에서 출판기념회를 열 예정이다.
강경남 기자 kkn@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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