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드림 주최 치유심리드라마 400여 명과 ‘공감’

▲ 지난 15일 광주문예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치유심리드라마 공감의 한 장면.
 깜깜한 무대 위에 스포트라이트가 의자 하나를 비춘다. 먼저, ‘나를 화나게 하는 사람을 떠올려보라’는 연출가의 안내에 따라 의자를 향해 분노 터뜨리기. 음악과 조명이 요란하게 연출된 틈에 욕을 쏟아내는 이도 있다.

 두 번째 의자엔 고마운 사람을 앉혀보라는 주문이 이어진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귓전을 울린다. 저마다 고마운 사람의 얼굴은 다르겠지만, 고마움과 미안함이 뒤섞일 때 울컥하는 심정은 다르지 않다.

 세 번째로 내 안의 ‘나’를 앉혀본다. 동시에 과거의 기억들이 스친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아픈 기억, 언제고 나를 웃게 하는 추억들이 파노라마가 되어 나타난다.
 
▲ 심리극 주인공이 되고픈 관객들

 광주드림이 2014년부터 선보이고 있는 치유심리드라마 ‘공감’ 콘서트가 지난 15일 오후 3시 광주문예회관 소극장에서 펼쳐졌다. 사이코드라마 수련감독 전문가인 윤우상 정신건강 전문의(남평미래병원 원장)의 연출로 400여 명의 관객이 함께 호흡하는 ‘즉흥극’ 형식으로 진행됐다.

 본래 심리극은 주인공의 관점에서 상처를 재연하고 주인공 스스로 당시의 상황을 변화시켜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 장치다. 윤 원장이 연출한 치유심리드라마는 심리극을 콘서트 형식으로 확장해 주인공과 관객이 즉흥적으로 만들어가는 공연에 가깝다.

 가상이기는 하지만, 관객들은 의자에 ‘나’를 앉히는 과정을 통해 묵혀둔 감정을 꺼내고 마음의 빗장을 열기 시작했다. 이날의 ‘주인공’을 자처한 관객은 무려 다섯 명. 꺼내놓은 기억에 공감 표를 가장 많이 얻는 이가 주인공이 된다.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가진 두 아이의 엄마는 자신의 상처를 아이에게 푸는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며 무대에 나섰다. 20대에 혼자가 되신 시어머니와 30년을 살아왔지만 고마움이 커서 여한이 없다는 이, 70의 나이를 바라보면서 잘 살아온 것 같다가도 이따금 어두움이 올라온다는 이, 60 평생 한 번도 주인공이었던 적이 없었다는 이도 있었다.
 
▲두번의 연애… 그리고 상처뿐인 결말

 그리고 20대 청년 A씨의 사연이 가장 많은 공감을 얻어 주인공이 됐다.

 “저는 지금까지 두 번의 연애를 했는데, 모두 비슷한 이유로 좋지 않은 결말을 맞았습니다. 그로 인해 사람 만나는 것을 피하게 됐어요. 그래서 아까 세 번째 의자에 ‘나’를 앉힐 때 많이 울컥했던 것 같아요.”

 주인공으로 무대에 오른 A씨는 윤 원장의 연출에 따라 보조출연자 가운데 자신의 분신 역할을 할 배우와 첫 번째 연애 상대, 두 번째 연애 상대 대역을 선정했다. 윤 원장이 A의 기억을 끄집어내면, 배역들은 상황에 맞는 대사를 만들어 극으로 재연했다.

 “첫 사랑이었으니 잘 만나고 싶었어요. 정말 대학생의 연애를 했죠. 알바해서 돈 벌어 쓰고 여자 친구 만나는 데 모든 걸 주력했으니까요.”

 보조출연진들이 데이트 장면을 위해 색색이 천을 펼쳐 벚꽃나무처럼 연출했다. A씨는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며 전 여자친구 B씨의 배역과 아름다운 벚꽃놀이 장면 속으로 들어갔다. 직접 싼 도시락을 나눠먹었던 장면도 실감나게 재연했다.

 하지만 처음으로 사귄 여자친구 B씨에겐 군대 간 남자친구가 있었다. 첫 번째 연애의 첫 반전 스토리다. B씨가 군대 간 남자친구와 헤어지겠다고 결정한 뒤 관계를 유지했지만, 1여 년 후 더 큰 문제가 생겼다고. 여자친구 B씨가 아르바이트를 하던 곳에서 바람이 나버린 것이다.
 
▲중학시절 가정의 아픔…상대를 믿지 못하고

 크게 상처를 받고 회복할 수 없는 관계가 돼버린 B씨와 헤어지고 다른 인연을 맺었지만, 비슷한 이유로 헤어짐을 맞았다.

 “그 때 기분이 어땠어요? 크게 상처가 됐을 것 같은데요. 묻어두지 말고 쏟아내 봐요.”

 한 편의 ‘새드 엔딩’ 연극이 끝나고, 윤 원장은 A씨의 감정을 이끌어냈다. 머뭇거리던 A씨는 관객들의 박수와 응원에 힘입어 차차 끓어오르는 분노를 표출했다. 미리 준비된 의자 위에 자신에게 상처를 준 대상과 상황들을 놓고 스펀지 막대기로 마구 내리쳤다.

 그 과정에서 A씨의 더 깊은 내면의 상처도 떠올랐다. 중학생 시절 어머니의 수술 소식을 온 가족이 숨기고 A씨에게 말하지 않았던 기억이었다. 그가 연애를 하면서 상대를 믿지 못하고 의심을 품으면서도 관계의 끈을 쉽게 놓지 못했던 것에도 영향을 줬던 기억이다.

 윤 원장은 즉흥적으로 어머니 배역을 무대에 올려 A씨가 그 기억과도 대면하게 했다.

 이제는 관객들이 A씨를 위로할 차례였다. A씨의 무대와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한 관객들은 자신의 일처럼 ‘공감’하며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넸다. 관객들 역시 A씨를 거울삼아 자신의 기억을 들여다봤던 것이다. ‘나누기’ 시간에 자신도 비슷한 상황을 겪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상처가 치유됐다는 사람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관객들은 휴대폰 라이트를 켜서 주인공의 미래를 축복해 주었다. “사랑하기 때문에 상처도 받는다는 걸 알게 된 것만으로 당신은 성장했다”고 “상처를 받아도 좋을 만큼 사랑할 사람을 반드시 만날 것”이라는 진심어린 기원이었다.
김우리 기자 uri@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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