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5·18기념재단서 입국 기자회견
“전두환 집권 위해 5·18일으켰다”

▲ 5·18민중항쟁의 진실을 세상에 알린 고 아널드 피터슨 목사의 부인 바바라 피터슨 여사(왼쪽)와 고 찰스 헌트리 목사의 부인 마사 헌트리 여사가 15일 입국해 5·18기념재단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저는 기억합니다. 헬리콥터에서 비처럼 쏟아져 내리던 화염과 그 결과를.”

5·18민중항쟁의 진실을 세상에 알린 고 찰스 헌트리 목사와 고 아널드 피터슨 목사의 부인들은 여전히 38년 전 끔직한 광주의 현장을 잊지 않고 있었다.

고 헌트리 목사의 부인 마사 헌트리 여사와 피터슨 목사의 부인 바바라 피터슨 여사가 15일 광주를 찾아 5·18기념재단에서 입국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를 통해 두 사람은 5·18 당시 활동가 목격한 진실을 상세히 설명했다.
피터슨 여사는 “5·18은 전두환이 집권을 하기 집권을 하기 위해 쿠데타를 이용해 광주 학생들과 시민들을 무력으로 진압했다”며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고 말했다.

고 아널드 피터슨 목사의 부인 바바라 피터슨 여사가 80년 광주 증언록인 ‘5·18 광주사태’ 책의 표지에 실린 헬기 사진을 보며 5·18 당시 목격한 계엄군의 헬기 기총 소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기자로 일했던 헌트리 여사는 “당시 너무 많은 젊은이들이 군인들로부터 공격을 받아 다시 부상을 당했다”며 “특히 한 여고생이 머리에 총상을 입고 병원에 실려와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헌혈을 위해 몰려들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헌트리 여사는 “너무 많은 사람이 몰려들어 오히려 제가 ‘당신들도 심장이 있으니 피가 있어야 하지 않냐’고 말릴 정도였다” 회상했다.

그의 남편 고 헌트리 목사는 광주 기독병원 원목으로 재직하면서 부상자들의 사진을 찍어 5·18의 진실이 세상에 알려질 수 있도록 했다. 영화 ‘택시운전사’의 실제 주인공인 고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와 사택에서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전두환 집권 위해 5·18일으켰다

헌트리 여사는 “그때 전화가 끊겨 다른 곳에 사진을 보내는 게 어려웠는데, 독일, 영국, 캐나다 등 외신기자들과 피터슨 목사, 언더우드 목사 등의 도움으로 사진을 세계에 알릴 수 있었다”며 “한국 기자들도 많은 도움을 줬다”고 말했다.

특히, “‘타임 매거진’이란 잡지에 학생들이 트럭에 환자를 실어 이송하는 사진이 실렸는데, 빨간색 깃발이 펄럭이는 걸 보고 어떤 사람이 ‘빨간 깃발이니까 공산주의자 아니냐’는 글을 신문에 실어 너무 화가나 그 잡지사에 편지를 보냈다”며 “이를 통해 해당 사진은 군인들이 무차별 사격해 다친 다친 시민들을 학생들이 옮기는 장면이고, 빨간 깃발은 적십자 차량이다, 공산주의와 전혀 관계 없다고 밝혔었다”고 떠올렸다.

그는 “전두환 정권이 김대중을 공산주의자로 몰고, ‘김대중이 선통을 해서 광주 민주화사태를 일으켰다’고 선전하면서 5·18의 기폭제가 됐다고 생각한다”면서 “생전에 남편이 항상 했던 말이 ‘빛과 진실은 어둠을 이긴다였다”고 말했다.

헌트리·피터슨 여사는 5·18 당시 계엄군에 쫓기는 시민들을 집에 숨겨주기도 했었다.

헌트리 여사는 “5월17일부터 26일까지 10일간 총 22명의 사람들을 집에 데리고 있었다”며 “특히,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 역시 광주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보기 위해 우리집으로 전화를 걸어 ‘미스 김(최규하 대통령 친척, 실제 성 씨가 최 씨일 것으로 추정)’을 보내왔는데, 그 사람을 기독병원에 데려가 진실이 뭔지 볼 수 있게 했다”고 밝혔다.

피터슨 여사는 “정확한 날짜는 기억나지 않지만 헬리콥터들이 시내 군중을 향해 발포하던 그 날을 기억한다”며 “당시 제 남편과 저는 헬리콥터 사격 소리를 듣자 두 아들을 지하로 숨겼고, 남편은 재빨리 카메라를 사지고 와 그 장면을 사진으로 찍었다”고 말했다.

1995년 광주 망월 구묘역을 찾은 고 아널드 피터슨 목사와 바바라 피터슨 여사의 모습을 담은 사진과 80년 광주 증언록인 ‘5·18 광주사태’ 원본. 피터슨 여사의 기자회견을 맞아 5·18기념재단 서채원 이사가 가지고 온 것이다.

해당 사진은 1995년 서채원 씨(현재 5·18기념재단 이사)에 전달돼 80년 광주 증언록인 ‘5·18 광주사태’ 책의 표지에 실렸다.

피터슨 여사는 “선명하게 헬기 기총소사를 봤다”고 거듭 강조했다.

▲ 항쟁 10일간 총 22명 시민 숨겨줘

‘5·18 광주사태’에서 피터슨 목사는 “한국 공군이 공격의 일환으로 도시(광주)에 폭탄을 떨어뜨릴 계획을 세웠다는 것을 들었다”고 기록했는데, 이와 관련해 헌트리 여사도 “광주가 폭격 당할 것이라는 소문을 듣고 나중에 미공군에 근무하던 제 친구들이 그런 일이 일어날 걱정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지난해 타계한 헌트리 목사는 생전 ‘광주에 묻히고 싶다’는 말을 남겼다. 이에 유족들은 고인의 뜻에 따라 헌트리 목사의 유골 일부를 광주 남구 양림동 선교사 묘지에 안장하기로 했다. 안장식은 17일 오전 10시에 진행될 예정이다.

15일 5·18기념재단에서 고 찰스 헌트리 목사와 아널드 피터슨 목사의 유족들이 기자회견을 가졌다.

기자회견에서 헌트리 여사는 “광주에 20년간 살면서 광주시민들을 항상 사랑했다”는 고 헌트리 목사의 비망록의 일부 내용을 공개하기도 했다.

피터슨 여사도 2015년 남편이 죽기 직전까지 광주를 생각하고 그리워했다고 전했다.

피터슨 여사는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던 남편이 어느날 저녁 집 안에 광주사람들을 숨겨줘야 한다고 모시고 들어오라고 했던 적이 있다. 남편은 계속해서 ‘아이들을 구해야 한다’고 말을 했다”며 “그 아이들은 광주의 아이들, 젊은이었다. 제 눈에 보이지 않았지만 제 남편은 여전히 광주 시민들을 보고 있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16일 오전 10시 열리는 ‘2018광주아시아포럼’ 개막식에 초청자로 참석해, 1980년 5월 당시 광주의 기억을 생생하게 전달할 예정이다.

이날 오후에는 오월어머니집을 찾아 간담회를 가진 뒤 조대여고 인권동아리 전시회에 참석한다.

18일 광주인권상 시상식에도 참석한 뒤 19일 귀국할 예정이다.
강경남 기자 kkn@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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