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여성’ 1980년 5월23일 작성, 외신 기자 통해 세계로 전파
“너무 고립됨 느껴” 절박함 호소, 5·18기록관 작성자 제보 접수

▲ 1980년 5·18민중항쟁 당시 광주에서 벌어진 참상을 알리기 위해 작성된 ‘영문편지’의 첫 장. 원본의 작성시기는 1980년 5월23일 오후 6시, 작성자는 자신을 광주에 사는 여성이라고 소개했다.<5·18기념재단 최용주 비상임연구원 제공>
“(1980년 5월)21일 오후 1시쯤, 발포가 시작됐고 10살쯤으로 보이는 아이가 총에 맞아 죽는 걸 목격했다.”

1980년 5·18민중항쟁 당시 광주에서 벌어진 참상을 알리기 위해 작성된 ‘영문편지’가 공개됐다.

이는 5·18기념재단 최용주 비상임연구원이 미국 UCLA동아시아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5·18 관련 문서를 연구, 분석하는 과정에서 발견됐다.

16일 최용주 비상임연구원으로부터 제공 받은 문서를 살펴보면, 편지의 작성시기는 1980년 5월23일 오후 6시로 기록돼 있다.

형식은 텔렉스(인쇄 전신기) 문서, 5월23일 육필로 작성된 원본을 해외에 전달하기 위해 다시 타이핑을 해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

원본 작성자는 광주에 사는 여성이라고만 자신을 소개하면서 자신에 대한 신변 보장, 가족의 안위를 걱정하는 심경을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물리적인 증거를 제시할 수 없지만, 편지에 적은 내용을 믿어달라는 호소도 적었다.

편지엔 5월18일, 19일, 20일 직접 목격한 계엄군의 만행이 상세히 담겨있다.


대학 교수인 자신의 아버지가 19일 오전 충장로의 한 2충 건물에서 계엄군이 부상당한 시민을 떨어뜨려 죽게 만드는 장면을 목격했고, 자신의 어머니 역시 비슷한 시기 중흥 은행 근처에서 젊은 시위대가 머리를 맞아 심각한 부상을 입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전했다.

특히, 계엄군의 총에 의해 시민들이 목숨을 잃었다고 증언했는데, 21일 오후 1시엔 계엄군의 집단 발포로 경찰서로 향하는 길목에서 10살로 보이는 아이와 호텔에서 일하고 있던 요리사가 죽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고 밝혔다.

22일 저녁 도청 앞 광장에서 시민들의 시위 행렬에 참여했다면서 시위를 질서 정연하게 이끄는 학생들의 모습에 감탄했고, 이를 통해 자유와 민주주의가 구체화되고 있응메 자랑스러웠다고 심경을 밝혔다.

광주MBC건물이 불에 탈 때 학생들이 이를 진화하는 것을 자신의 자매가 목격했다는 내용도 담겨 있었다.

작성자는 광주시민들이 너무 자랑스럽지만, 너무나 고립됐음을 느낀다면서 “우리 자유는 우리 몫임을 알지만 도움이 필요하다”는 절박함을 호소했다.

그는 광주의 참상이 정권을 취하려는 신군부에 의해 일어난 ‘끔찍한 비극’임을 강조했다.


이 편지는 외신 기자를 통해 5월24~25일 전달됐고, 5월26일엔 일본 ‘NHK’를 통해 보도되기도 했다.

문서 제일 윗 부분에 적힌 수신처는 ‘North American Coalition for Human Rights in KOREA’라고 적혀 있다. 이는 ‘한국 인권을 위한 북미연맹’이란 단체의 영문명으로, 이 단체는 미국 워싱턴DC에 본부를 두고 있어, 이 편지 내용이 북미지역에도 전파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은 해당 편지를 작성한 시민을 찾기 위해 관련 제보를 접수하기로 했다.

현재 편지 내용에 나온 단서는 ‘광주에 사는 여성’으로, 5·18 몇 해 전 대학을 졸업했고, 작성자의 아버지가 대학교수라는 것뿐이다.
강경남 기자 kkn@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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