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근로정신대 현장 답사 참가
송희원군 “홍보 캠페인 나서겠다” 기고

▲ 각왕산 일태사 순난동포위령비 참배 사진.<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제공>
 광주지역 고등학생 20명이 지난 7월27일부터 8월3일까지 일본 도야마와 나고야의 일제강점기 여자근로정신대 역사 현장을 답사했다. 청소년들은 도야마의 후지코시와 미쓰비시의 지하 군수공장 터널, 윤봉길 의사 암매장지 터를 비롯해 나고야의 미쓰비시 항공기 제작소 옛 공장터, 도난카이(동남해) 지진 희생자 추도비 등을 다니며 일제의 고난과 아픔을 직접 체험할뿐 아니라 일본 시민들과 만나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는 시간을 갖고 돌아왔다.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으로부터 이번 9기 한·일청소년평화교류단에 참여한 송희원 군이 답사를 통해 느끼고 생각한 바를 정리한 글을 지면을 통해 소개한다. 송군은 7박8일간 보고 들은 것을 알리고 싶다고 했다. 근로정신대 문제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변화를 이끌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편집자 주>
  
 7박8일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한일청소년평화교류단에 참여하면서 나는 근로정신대 할머니 권리 증진 등 과거사 청산과 평화를 위해 일본정부와 전범기업을 상대로 투쟁했던, 그리고 투쟁하고 있는 현장을 직접 목격하였다. 현재 그 투쟁을 이어가는 양심 있는 일본인들을 보며 나의 역사의식과 태도를 반성하게 되었고, 투쟁의 세대교체를 이루기 위한 계획을 고민해보게 되었다.

 먼저 미쓰비시 지하터널 및 후지코시 지하터널을 비롯한 조선인들이 강제징용 당했던 장소를 다녀왔다. 모두 일제의 만행에 의한 것이었다. 특히 지하터널 같은 경우에는 패망 직전인 1943~1945년 징용의 강도가 극치였다고 들었다. 그 지하터널에서 무기를 제작하려 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경악을 금치 못했다. 너무 비인간적이었고, 터무니없는 계획이었다.

 터널에서는 조선인들이 강제로 노동한 모습을 생생히 상상할 수 있었다. 터널로 가는 길은 보통 우리가 걷는 길이 아닌 수풀 길에 진흙 범벅이었다. 그 당시 정글이었다는 것이 느껴졌다. 특히 카마도 터널 안에 직접 들어갔을 때 그 웅장한 크기에 놀랐고, 강제노동의 강도가 느껴져서 아찔했다. 동굴 안은 내가 배웠던 매끄러운 곡선과 종유석이 아니라, 곡괭이 자국이 그대로 남아있어서 가슴이 아팠다. 그리고 그곳에는 우리나라의 성씨가 새겨져 있었다.

당시 어떤 마음으로 그 성씨를 동굴 안에 새겼을까? 아마 그분들은 전쟁을 위해 무기를 만드는 자신들의 상황에 좌절했을 것이다. 식민지의 백성으로서 즉 침략의 피해자로서, 일본의 전쟁을 위해 무기를 만드는 상황이 납득이 갔을까? 나는 그러한 ‘패닉’의 순간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조선인임을 잊지 않기 위해 글자를 새겼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동굴 안은 물이 많았고 시원했지만, 나에게는 생명력이 없는 한없이 건조하고 삭막한 공간으로 느껴졌다.
 
▲“후지코시 배상” 시위대 대부분 노령
 
 그리고 후지코시 문전행동을 참관했을 때를 잊을 수 없다. 후지코시는 미쓰비시처럼 조선인들을 강제징용한 전범기업이다. 그러나 한일청구권협정을 거론하며 당시 피해자들에 대한 손해배상은 물론 사과도 거부하고 있다. 이에 ‘호쿠리쿠 연락회’에서는 꾸준히 후지코시에 사과를 요구하는 시위를 펼치고 있다.

 우리 교류단이 참관했을 때는 ‘호쿠리쿠 연락회’ 회원들과 연대하러 온 분들이 후지코시 정문 앞에서 투쟁하고 계셨다. 시위의 주 구호는 “후지코시는 사죄하고 배상하라!”였다. 시위 참가자들은 맹렬히 구호를 외쳤지만 우리는 참관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소극적으로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 죄송한 마음에 구호를 외칠 때 힘껏 따라 외치려고 노력했다. 시위 참가자들이 소수였고, 대부분 노령이어서 마음이 아팠다.

 우익세력들이 고성능 스피커를 이용한 ‘헤이트 스피치’로 시위를 방해하기도 했다. 그들은 우리를 비판이 아니라 비난으로 대했고, 무시하는 발언을 일삼았다. 순간 너무 화가 났고, 무어라고 대응하고 싶었다.

 그 때 내 마음속의 뜨거운 무언가를 간직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었다. 먼저 돌아가신 피해자 할머니 분들의 영정사진을 보며 한일청소년평화교류단 활동의 동기를 부여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후지코시 회사 직원들이나 지나가는 시민들의 무관심이었다. 시위의 노력이 무시당하는 느낌이었다. 그곳에서 시민들의 관심의 필요성에 대한 절박함을 느꼈다. “어떻게 후지코시가 피해자들에게 뻔뻔한 태도를 취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도 시위 도중에 품어 보았다. 내 생각은 일본 국민들이 관심이 없으므로, 사과를 하지 않는 것이 기업 이미지에 손상이 가지 않으므로 후지코시를 포함한 전범기업들이 적절한 사과 및 손해배상을 거부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 때 전범기업들의 기업이미지를 실추시켜 협상테이블로 끌어들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도난카이 지진 희생자 이름 찾아준 일본인들
 
 미쓰비시 순직비 및 도난카이지진 희생자 추모비를 방문했을 때는 일본 분들이 너무 고마웠고, 내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특히 미쓰비시의 순직비 역사는 너무 특별했다. 다카하시 상을 비롯한 역사 선생님 분들이 도난카이 대지진 피해자들을 조사하다가 강제징용 된 조선인 장부를 발견한 과정은 한 편의 영화를 본 것 같았다. 정말 ‘20세기의 대발견’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찾지 못한 이름 하나를 고려하여 세심하게 이름을 새긴 비석이 그분들을 대표할 수 있을 것 같다. 또 병원의 벽과 햇빛의 각도를 고려하여 피해를 입은 당시에 해가 비추도록 한 추모비도 감탄을 자아냈다. 추모비의 “이 슬픔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진실을 여기에 새긴다.” 는 문구는 내 가슴 속에 아직 남아 있다.

 또한 비석에 새겨진 이름을 보며 안타까웠다. 13~15살이라는 꽃다운 나이는 절대 비석에 새겨질 나이가 아니었다. 이 비석을 보며 ‘죽는 순간까지 증산 당부’ 라는 일본의 주장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느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추모비가 있다는 것을 알도록 노력해야겠다.
도난카이지진 희생자 추모비에서.<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제공>

 7박8일 동안 강의와 토론도 매우 유익했다. ‘호쿠리쿠 연락회’ 무라야마 대표님의 말씀을 통해 전쟁의 비극과 그분의 ‘정의’를 향한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일본이 전쟁에서 패배한 이후 어떻게 경제대국이 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한국전쟁 및 월남전에서 무기를 팔아 돈을 벌었다는 것을 듣고, 분했다. 일본의 식민지 근대화론이 오히려 반대임을 생각해보게 되었고, 패전국 전후 처리에 대한 아쉬움을 크게 느끼게 되었다.

 사법 개혁 이야기도 기억에 남는데, 대한민국의 권력 유착 및 비리의 정도에 충격을 받게 되었다. 나는 이러한 적폐를 개혁하는 것이 꿈이었는데, 꿈에 동기부여를 받은 것 같다. 근로정신대 대법원 상고 판결이 이제 속도를 낼 것이라는 말에 희망을 얻었고, 판결이 승소한다면 이를 통해 새로운 합의의 장을 열어야 한다는 말에 공감하게 되었다. 몰랐던 근로정신대의 정의 및 역사, 관련 소송들과 장소들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점점 이 근로정신대 투쟁의 미래가 되어가고 있었다.
 
▲“양심적 시민들 모델삼아 미래 위한 투쟁”

 나는 7박8일 동안의 경험을 근로정신대 관련 ‘홍보’에 사용하고 싶다. 이 홍보를 통한 국민들의 관심이 변화를 이끌 수 있는 움직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고야 피스아이치전시관.

 또한 여러 장소를 방문하며 근로정신대 투쟁의 세대교체의 필요성을 느끼기도 했다. 그래서 학교 친구들을 대상으로 홍보 캠페인을 시작하려고 한다.

 사실 이 의지가 실천되지 않으면 아무 쓸모가 없을 것이다. 꼭 실천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며, 이미 페이스북 근로정신대 홍보 손글씨 캠페인에 참여해서 뿌듯하다.

 이에 더하여, 나는 학생으로서 노력에 그치지 않고 청년이 되어서도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을 위해 싸울 수 있도록 방법을 찾을 것이다. 근로정신대 피해자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는 가려진 약자들이 많다. 나는 이러한 사람들을 위해 싸울 것이라고 이번 교류단 활동을 통해 다시 한 번 다짐하게 되었다. 이번에 만났던 양심적인 시민들을 모델로 삼고, 투쟁의 미래를 현재로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송희원 <광주제일고등학교 2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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