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14일 각 구별 기념행사 ‘소녀상 건립 1주년’ 명칭 달아
“일본군 성노예 문제 기억 상징물이 기념 대상으로 부각” 우려
이국언 대표 “지역 내 관련 역사 발굴, 의미있는 행사 고민해야”

▲ 남구 양림동 팽귄마을 입구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
“O구 평화의 소녀상 건립 1주년 기념행사.”

일본군 ‘위안부(성노예)’ 기림의 날인 8월14일 광주에서도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진 자치구마다 관련 행사들이 열렸다. 그런데 대부분 행사 명칭에 “소녀상 건립 1주년”이란 문구가 강조돼 아쉬움을 남겼다.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들의 용기를 기억하고, 문제 해결에 힘을 모으자는 취지로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이지만, 정작 일본군 ‘위안부’ 기림의 날에 소녀상 건립을 기념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날 광주에선 동구를 제외한 모든 자치구에선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 관련 기념행사가 열렸다.

대부분 지난해 소녀상 건립을 추진한 주민들이 주최가 돼 행사를 준비했고, 서구만 구청이 나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기념행사’를 열었다.

각 구별 행사 명칭을 보면 남구는 ‘제6차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 맞이 및 남구 평화의 소녀상 건립 1주년 평화문화제’, 북구는 ‘소녀상 건립 1주년 기념 기자회견 및 퍼포먼스’, 광산구는 ‘광산구 평화의 소녀상 건립 1주년 행사’로 안내됐다.

이중 일부는 행사를 안내하는 현수막이나 온라인 포스터에 ‘소녀상 건립 1주년’을 크게 강조하기도 했다.

지난해 전국적으로 소녀상 건립 ‘열풍’이 불면서 광주도 각 자치구별로 경쟁하듯 소녀상 건립이 추진됐다.

각기 다른 형태의 각 구별 소녀상이 지난해 14일 일제히 제막식을 가진 배경이다.

올해 기념행사를 준비한 각 구별 단체들은 ‘건립 1주년’을 내세운 것에 대해 소녀상 건립에 동참한 시민들, 소녀상 건립 취지를 다시 한 번 되새기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광산구 평화의 소녀상 1주년 기념행사 안내 웹포스터.

8월14일은 지난해 우리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이란 명칭의 국가기념일로 지정했고, 앞서 지난 2012년 대만에서 개최된 제11차 ‘일본군‘위안부’문제해결을 위한 아시아연대회의’가 세계일본군‘위안부’기림일로 지정했다.

1991년 최조 공개 증언을 통해 일본군 성노예 문제를 세상에 알린 김학순 할머니의 용기와 정신을 기억하고 기리자는 의미였다.

이러한 날 광주의 각 자치구에선 ‘소녀상 건립 1주년’이란 명칭을 단 기념행사들이 열린 것이다. 소녀상을 통해 세상에 전달하려던 ‘메시지’보다 소녀상을 건립한 행위 자체를 기념한듯한 인상이 남을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8월14일 우리가 정작 기억하고 기념해야 하는 것은 소녀상 건립이 아니지 않냐”는 지적이 나온다.

행사를 준비하는 측에서도 나름 고민이 많았다고.

북구 행사를 준비한 북구평화인권협의회(이전 북구 평화의 소녀상 건립추진위원회) 관계자는 “‘소녀상 건립 1주년’을 앞세우다보니 행사를 앞두고 소녀상 건립을 자축하는 것으로 보여질 수 있다는 점을 고민한 것은 사실이다”며 “이에 실제 행사에선 이보단 소녀상 건립 정신과 의미를 강조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소녀상이 단순히 매년 행사를 열기 위한 장소로 전락하지 않기 위한 고민도 필요한 시점이다. 최근 한 자치구에선 마을 해설 도중 소녀상에 언급된 피해 할머니에 대해 방문객이 묻자 마을 해설사가 내용을 몰라 대답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소녀상 건립과 관련해 의미나 사후 관리 등에 대한 깊은 고민이 부족하다는 우려가 많았는데, 소녀상 의미 자체도 제대로 공유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특히, 동구의 경우 소녀상 건립 이후 관련 활동을 추진해 나갈 동력을 잃으면서 5개 자치구 중 유일하게 행사를 열지 못했다.
북구청 앞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

무엇보다 소녀상을 세우는데 그토록 적극적이었던 지자체들 모두 정작 일제강점기 당시 해당 지역 내 강제동원 피해자 현황이나 관련한 역사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이국언 대표는 이날 오전 서구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기념행사’에서 추모발언을 통해 이러한 문제를 강하게 꼬집었다.

이 대표는 “일본군 성노예 문제는 단순히 일본 정부를 규탄하는 것으로 우리의 어깨가 가벼워지는 것이 아니다”며 “그냥 손 놓고 있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일제강점기 당시 끌려간 사람만 8만~20만 명이라는데 정부에 신고한 숫자는 고작 240명밖에 되지 않는다”며 “광주·전남에도 피해자가 왜 없었겠냐”고 지적했다.

“광주에 피해자들을 기리는 소녀상이 6곳에 건립됐지만 정작 우리는 우리지역에서 강제동원된 피해자 중 과연 누구를 기억하고 있냐”는 것이 이 대표의 성토였다.

이 대표가 각종 자료를 뒤져 파악한 광주·전남에 연고를 둔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는 8명이다. 곽예남·여복실·박넵데기·진화순·신쌍심·김복선·황선순·공정엽 할머니 등이다. 이중 현재까지 생존한 피해자는 곽예남 할머니뿐이다.

이 대표는 “아직까지 파악되지 않은 피해자들이 더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각 지역별 일제강점기 당시 역사를 찾아내고 복원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강경남 기자 kkn@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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