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석 난립 특정단체 위세 과시·묵인한 관의 합작물”
시민정서 동떨어진 ‘구시대 유물’ “계속 둬야만 하나”

▲ 광주 광산구 송정고가도로 아래 설치된 ‘바르게 살자’ 비와 바르게살기협의회 깃발들.
 시민들을 위한 공간에 특정단체가 표지석을 세워 자신들의 가치나 이념을 홍보하는 것을 과연 언제까지 ‘방치’해야 할까? 공공기관 새마을기 철거를 비롯해 새마을장학금의 완전 폐지 등 ‘관행’이란 이름으로 지속돼 왔던 ‘과거의 특권’을 청산하는 현 시대 흐름에 맞춰 공공용지가 특정단체의 ‘사유화’되는 문제 역시 해소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21일 광주시에 따르면, 1978년부터 무려 40년이 넘게 지속돼 온 ‘새마을지도자 자녀 장학금’이 지난 2월 관련 조례(광주광역시 새마을장학금 지급 조례) 폐지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광주시 새마을회 지도자 자녀들을 대상으로 한 ‘새마을장학금’은 매년 광주시와 각 구청이 지원한 예산으로 운영돼 왔다.

 지난해까지 광주시와 5개 자치구가 새마을장학금 명목으로 지원한 예산이 2억~2억5000만 원에 달했다.

 특정단체 회원의 자녀들만을 대상으로 한 장학금이 시·구 예산으로 운영돼 “과도한 특혜”라는 지적이 끊이질 않았다. 무엇보다 이 ‘새마을장학금’이 새마을회의 회원 확보의 주요 수단으로 알려져 “왜 시민 혈세로 새마을회 조직 유지를 지원해야 하느냐”는 비판까지 제기됐다.
 
▲새마을장학금 폐지 등 같은 선상서 봐야 

 광주지역 15개 시민사회단체가 ‘새마을장학금 특혜 폐지 시민회의(이하 시민회의)’를 결성, 광주시와 광주시의회에 새마을장학금 폐지를 줄기차게 요구해 온 배경이다.

 새마을장학금은 지난해 8월 광주시 지방보조금심의위원회의 ‘3년 연속 지원(2015~2017) 지방보조금 유지 필요성 평가’에서 새마을장학금에 대한 ‘즉시폐지’라는 평가 결과가 나온 것을 계기로 올해 관련 예산이 전면 철회되고 유일한 지원 근거였던 관련 조례 폐지로 광주에선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됐다.

 광역단위에서 새마을장학금이 폐지된 것은 광주가 처음이다.

 앞서 2017년 초부턴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이 공공청사에 걸려있던 새마을기가 철거되기 시작했다.

 광주시의회를 시작으로 광주시, 광산구청 등이 연달아 게양대에 걸려있던 새마을기를 내리면서 공공청사의 새마을기는 사라졌다.

 하지만 여전히 광주 도심 곳곳에는 특정단체의 표지석이나 깃발이 존재하고 있다.

 상무지구에서 광산구로 넘어가는 극락교에는 새마을기가 펄럭이고 있고, 광주의 관문 중 한 곳인 광주공항으로 들어가는 길의 건너편에는 ‘바르게 살자’표지석과 바르게살기 협의회 깃발이 나부끼고 있다.

 광주의 대표적 명소 중 한 곳인 서구 운천 호수공원의 ‘새마을운동’ 표지석, 농성광장의 ‘바르게 살자’비와 ‘로터리클럽’ 돌조형물들도 마찬가지다.

 이중 일부는 점용허가도 받지 않은 ‘불법시설물’임에도 오랜 기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점용허가를 받은 것이라 하더라도 특정단체 표지석은 ‘영구 점용’ 대상이 될 수 없지만 관할 구청은 ‘사실상 영구 점용물’로 인식하고 있다.

광주 광산구 극락교 인근에 걸려있는 새마을기.|||||
 
▲표지석 문구 시민을 계도 대상으로

 공공용지에 조형물이나 시설물을 설치할 때는 해당 시설물이 공공용지의 본래 취지, 그러니까 공공성, 다수의 시민들에게 유익한지를 따지는 게 가장 ‘기본 원칙’이다.

 시민회의의 이국언 집행위원장은 “공공용지에 특정단체 표지석이나 깃발이 세워지는 것은 시민들이 써야 할 공간을 특정단체가 위세를 과시하는 사적인 용도로 쓰도록 해주는 것이다”고 지적했다.

 이어 “공공의 공간에 설치할 시설이나 표지석이라면 공공성, 다수의 시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서 엄격한 기준이 있어야 했다”며 “설령 점용허가를 받았다 했더라도 특정단체가 일종의 공간 사용료를 내고 곳곳을 독점하듯이 해버리는 게 적절한 것인지 의문이다”고 꼬집었다.

 공공용지가 특정단체의 홍보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는 문제를 이대로 계속 둘 것인지, 표지석 철거 또는 이전 등 이제라도 처리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것.

 불법 또는 ‘합법’으로 오랜 기간 공공장소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특정단체의 표지석을 두고 이 집행위원장은 “일반적으로 누가 공공용지에 감히 그렇게 표지석을 세울 수 있다고 생각하겠나”면서 “관을 등에 지고 힘을 키워온 특정단체와 이들의 눈치를 보면서 묵인하거나 용인해왔던 관과의 합작물이 그 표지석들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특히 “각 단체들의 표지석을 보면 ‘바르게 살자’ 등의 문구가 있는데 이는 시민들을 가르치는, 일종의 계도 대상으로 보는 시각을 드러낸 것이다”며 “근면·자조·협동(새마을운동 기치)이나 바르게 살자라는 문구를 보면서 어떤 시민이 여기에 동의할 수 있겠나? (그 표지석들은)시민의 눈높이나 정서에도 전혀 부합하지 않고 오히려 위화감만 일으키는 것이다”고 비판했다.
강경남 기자 kkn@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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