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임시 안장
보훈처 5·18묘지 안장 심사
김홍업 “형 고향 돌아와 기뻐…
이제 아버지 만났을 것”

▲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남 고 김홍일 전 의원이 지난 20일 향년 71세로 별세한 가운데, 김 전 의원의 유족이 영정사진을 들고 유해가 안장될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으로 향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장남 고 김홍일 전 의원이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구묘역)에 잠들었다. 국립5·18민주묘지 안장을 위한 국가보훈처 심사까지 임시 안장한 것으로, 유족들은 고 김홍일 전 의원이 고향 땅에서 편안히 지낼 수 있길 바란다는 뜻을 전했다.

23일 오전 영결식, 발인을 마친 뒤 고 김홍일 전 의원의 부인 윤혜라 여사, 김대중 전 대통령 차남 김홍업 전 의원, 삼남 김홍걸 더불어민주당 국민통합위원장 등 유족들은 화장 후 김 전 의원의 유해와 함께 이날 오후 3시쯤 망월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도착했다.

김 전 의원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보기 위해 정치권, 시민사회 등 많은 조문객들도 망월 묘역을 찾았다.

유족들이 김 전 의원의 유골함에 기도와 묵념을 올린 뒤 천주교식 절차로 하관식이 진행됐다.

유골함 위로 흙이 덮어지지자 유족들은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고인의 친구는 “이 친구야 말 한 마디 없이 떠나면 어떡하냐. 얼마나 고통스러웠나. 안 아픈 세상에서 편안하게…”라며 눈물을 흘리며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김 전 의원의 손녀는 하관식 도중 뒤돌아 윤혜라 역사를 안아주기도 했다.

김홍일 전 의원의 유해 안장 전 유족들이 유골함에 묵념을 올리고 있다.

안장 절차가 마무리된 뒤 김홍업 전 의원은 유족 대표로 인사말을 통해 “(형의 파키슨병이)발병한지 20년도 넘었고, 10여 년 전부턴 거동도 못하고 병석에서만 지내 바깥 출입을 못했다”며 “이번에 갑작스럽게 일을 당했지만 놀랍게도 너무 많은 분들이 형 조문에 참여해줬다”고 말했다.

이어 “이것도 광주로 오게 돼 많은 분들이 형을 따뜻하게 맞이해 주셔서 저희 유족으로서는 뭐라 말 할 수 없이 감사하다”고 말했다.

김홍업 전 의원은 “형은 굉장히 고향을 사랑했다. 지역구인 목포뿐 아니라”면서 “다시 형이 고향 땅에 돌아오게 돼 저희들도 한결 마음이 가볍고 기쁘다”고 밝혔다.

평소 병세로 고통을 겪던 형을 떠올리며 그는 “화장을 하면서 보니까 몸에서 쇠덩어리들이 나왔다. 저런 쇠덩어리들을 달고 어떻게 견디고 살았을까라고 생각했다”며 “이제 그 지긋지긋하게 괴롭히던 육신을 버리고 홀가분하게 하나님 품으로 가서 안타깝긴 하지만 차라리 이제는 (형이)고통스럽진 않겠다. 안도의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쯤은 아버지하고 만나지 않을까 그런 마음도 든다”며 “형이 있는 동안 저희들도 (망월묘역을)자주 찾아오겠다. 형이 편안하게 지낼 수 있게 도와주시기를 부탁 드린다. 대단히 감사하다”고 인사를 전했다.

유족들의 장례 절차가 끝난 뒤에는 조문객들의 헌화와 묵념이 이어졌다.

김홍일 전 의원의 유해 안장이 끝난 뒤 유족들이 김 전 의원에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다.

김홍일 전 의원은 당초 국립5·18민주묘지에 안장될 예정이었으나 국가보훈처가 국립묘지 안장 대상 심의위원회를 통해 안장 여부를 결정하기로 하면서 유족들은 김 전 의원을 망월묘역에 임시로 안장키로 했다. 국가보훈처 심의가 한 달 이상 걸릴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이에 광주시는 즉각 심의위원회를 열어 임시 안장을 혀용했다. 김 전 의원이 묻힌 곳은 이한열 열사 묘 아래다.

망월동 구묘역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통일민주당 상임고문이던 1978년 9월8일 직접 묘역을 찾아 오월 영령들을 추모하면서 “한 없이 한 없이 사모하는 영령들이여! 김대중이가 여기 왔다. 꼭 죽게 됐던 내가 하나님과 여러분들의 가호로 죽지 않고 살아서 7년 만에 여기 망월동의 영령 앞에 섰다”며 “광주! 무등산! 망월동!”이라고 오열한 곳이기도 하다.

한편, 김홍일 전 의원은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체포돼 고문을 당했다. 앞서 1971년에도 ‘서울대 내란음모 사건’으로 고초를 겪었던 그는 고문 후유증 앓다 파킨슨병까지 얻게 됐다.

지난 20일 지병이 악화돼 서울 마포구 서교동 자택에서 쓰러진 그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이날 오후 5시4분쯤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향년 71세.

그는 1996년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전남 목포·신안갑 총선에 출마, 15대 국회의원으로 국회에 입성한 뒤 2000년에는 새천년민주당 소속으로 전남 목포 총선에 출마해 16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2004년에는 새천년민주당 비례대표로 출마해 3선에 성공했으나 2006년 나라종금 사장으로부터 인사청탁 대가로 뇌물을 수수한 혐의가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기도 했다.
강경남 기자 kkn@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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