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봉 교수 광주정신포럼서 주장

▲ 16일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 열린 포럼에서 김상봉 교수(오른쪽에서 두번째)가 발제하고 있다,
 “5·18의 세계사적 의미는 5·18이 그 항쟁공동체를 통해 새로운 나라의 이상을 열어보였다는 데 있습니다. 5·18 항쟁 공동체는 이익의 공유를 위해 결속한 단체가 아니었다. 그것은 자기의 이익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 때문에 열린 공동체로, 새로운 자유의 이념을 제시한 세계사적 사건입니다”

 김상봉 교수는 5·18민중항쟁의 철학적 가치모색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타인의 고통으로 열린 공동체, 새로운 자유 이념을 제시했다’는 점을 5·18의 ‘세계사적 의미’로 제시했다.

 5·18민주화운동기록관과 5·18기념재단은 16일 5·18민주화운동기록관 7층 다목적 강당에서 ‘마흔살 5·18의 철학적 담론 -대중적·보편적 의미의 5“18정신’을 주제로 광주정신포럼을 개최했다.

 전남대 철학과 김상봉 교수가 ‘자기의 권리와 타인의 고통 사이에서-5·18의 세계사적 의미에 대하여’를 주제로 강연에 나섰다.

 김 교수는 강연에서, 5·18민중항쟁에 대해 “한국 근·현대 민중항쟁사에서 일어났던 수많은 항쟁이나 봉기들 가운데서도 마치 치솟은 봉우리”라면서도 “한국의 민중항쟁사 속에서 5·18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제대로 물어진 적도 대답된 적도 없다”고 지적했다.

 또한 “근래에 들어서는 도리어 5·18에 대한 진지한 학문적인 관심 자체가 예전에 비해 현저히 줄어든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지난 40년 간 실증적 연구를 진행해온 결과, 발포명령자 등 특별한 문제를 제외하곤 진상이 거의 드러난 상황에서 ‘막다른 골목’에 봉착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같은 결과를 “철학과 과학이 유리된 결과”라고 지적했다. 제시된 예는 프랑스혁명이다. “프랑스대혁명의 내용을 전혀 모르는 사람도 ‘자유, 평등, 박애’라는 가치가 역사를 이끌어왔던 의미를 공감하면서 사건을 이해한다”는 것.
 
▲“철학적 의미 모색 필요한 때”

 그는 “역사적 사건의 뜻이란 단순한 사실 인식의 지평을 뛰어넘는 정신의 도약이 없이는 결코 개방되지 않는다”며 5·18민중항쟁 또한 사실을 가려내는 실증적 연구를 넘어 한국 민중항쟁사적 관점과 함께 ‘세계사적 관점’에서 5·18민중항쟁이 어떤 ‘역사적 의미’를 가지는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늘날 5·18민중항쟁을 두고 주로 통용되고 있는 가치는 ‘민주·인권·평화’다. 하지만 김상봉 교수는 이를 “기존의 서구적 정치 담론에서 유래하는 것으로서 특별히 새로운 이념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것은 세계사의 보편적 흐름에서의 의미가 있지만, “5·18의 역사적 의미는 단순히 그런 방식으로 제시될 것이 아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5·18민중항쟁은 세계사적 관점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먼저 김 교수는 한국 민중항쟁사적 관점에서, 5·18민중항쟁의 의미에 대해 ‘봉우리’를 빗대 설명했다. 그는 한국 민중항쟁사에 세가지 봉우리가 있다고 했다. 첫째는 동학혁명에서 시작돼 의병전쟁, 무장독립투쟁으로 이어지는 ‘무장 항쟁의 능선’. 둘째는 3·1운동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 광주학생운동, 4·19로 이어지는 ‘비폭력 저항의 능선’. 셋째는 전태일에게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 ‘자기 폭력의 능선’이다.

 그는 “5·18은 이 모든 능선이 만나 밀어올린 봉우리다”고 했다. 5·18민중항쟁은 애초 비폭력적 항의로 시작해, 계엄군이 폭력적으로 진압하기 시작하면서 시위가 격렬해지고, 계엄군의 폭력이 더욱 야만적이 되어가고 급기야 비무장 시민들에게 총격을 가하면서, 평화적인 저항은 무장항쟁으로 전환된다. 마지막 날 도청을 지키다 숨져간 사람들은 “총을 들고 있었든 들지 않고 있었든지 간에 전태일의 뒤를 따랐던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를 두고 “5·18의 불꽃을 후세에 전해주기 위해 전태일처럼 자신의 생명을 역사의 제단에 제물로 바치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5·18은 그 진보와 성숙의 끝에서 우리가 만나게 되는 가장 드높은 봉우리”라며 “거기서 항쟁의 역사는 하나의 완성에 도달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이를 두고 역사의 반복이 아닌 ‘세계사적 의미’가 있다고 볼 순 없다. 하지만 김 교수는 이 대목에서 또 하나의 지점을 제시한다. 그는 “간단히 말하자면 5·18이 그 항쟁공동체를 통해 새로운 나라의 이상을 열어보였다는 데 있다”고 말했다.
16일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 열린 광주정신포럼에서 발제를 맡은 김상봉 교수.|||||
 
▲“불가능한 것 가능하다 일깨워줘”
 
 그가 주목한 건 “타인의 고통에 대한 응답”이다. 5·18민중항쟁을 자기의 권리주장이 아닌 타인의 고통에 대한 응답을 통해서, 국가폭력에 대항해 ‘서로주체성’을 확인했던 사건으로 해석했다. 그것을 보여주는 지점은 당시 모두를 평등한 식탁으로 이끌었던 ‘주먹밥 나눔’이다.

 김 교수는 “고통의 원인인 국가 폭력에 대항해 타인의 고통에 대한 참여는 국가 폭력에 대한 적극적 투쟁으로 나아가게 됐다. 자기를 초월하는 것 속에서 서양적 국가의 이념이 전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자유의 이념이 계시됐다”며 “자기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세계를 지배해야 했던 제국주의의 운동 원리의 ‘모순’을 극복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것이 그가 제시한 5·18민중항쟁의 ‘세계사적 의미’다.

 이어 “타인의 고통에 대한 응답, 그 고통을 야기하는 폭력에 대한 공동의 투쟁, 그리고 같이 싸우기 위해 같이 먹고 같이 사는 것, 이것이 5·18 항쟁 공동체의 본질적 진리를 이루는 세 가지 계기”라며 “이것은 폭력이 지배하는 국가가 아니라 사랑이 다스리는 나라의 형성원리이다. 그리고 헌혈의 피와, 총과 수류탄 같은 무기와 주먹밥은 그 사랑이 구체적으로 나타난 형상, (기독교적 표현을 빌리자면)‘성육신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또 “5·18은 자기의 안위와 권리보다 타인의 고통을 먼저 염려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에게 일깨운다”며 “그리고 지금 여기 이렇게 살아 있는 나의 존재는 그 날 그 자리에서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기 위해 자기의 존재를 지키는 것을 포기했던 분들의 결단에 빚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온 세상 모든 인류가 자기의 권리와 이익이 아니라 남의 고통에 먼저 응답하는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것은 지금 여기 살아남은 우리의 사명일 것”이라고 밝혔다.
김현 기자 hyun@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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