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의장측 서둘러 “연내 처리 목표”
피해자·지원단체들 “즉각 폐기해야”

▲ 지난해 11월29일 대법원의 최종 판결 직후 법정을 빠져나온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피해자 김성주 할머니가 이날 판결에 대한 소회를 밝히고 있다.<광주드림 자료사진>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와 지원단체들의 반대 목소리가 커지고 있음에도 문희상 국회의장이 강제동원 ‘해법안’을 위한 법 개정안 발의를 예고해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일본 정부와 전범기업들의 진정어린 사죄와 반성이라는 핵심이 빠진 ‘문희상안’이 이대로 강행될 경우 피해자들의 명예회복은 더 멀고,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8일 일제 강제동원 소송 대리인단, 각 지원단체 등에 따르면, 문 의장이 구상한 강제동원 해법안을 담은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이 이르면 다음 주에 발의될 예정이다.

 이와 관련, 최광필 국회 정책수석은 지난 5일 ‘강제징용 동원 해법 관련 문희상 국회의장 구상 언론설명회’에서 발의 시점을 ‘다음 주(9~15일)’로 제시하면서 “가능하면 연내 (통과)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 의장의 안은 일제 강제동원 관련 일본 기업들(전범기업)과 한국 기업(65년 한일청구권협정 수혜기업)들의 자발적 기부금, 강제동원 문제와 이해관계가 없는 한일 양국 민간인들의 자발적 기부로 기금을 조성, 현재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990여 명과 소송이 예상되는 이들을 대상으로 ‘위자료’를 지급하는 것이 골자다.
 
▲전범기업·수혜기업·민간 3자 출연
 
 법이 개정되면 가칭 ‘기억화해미래재단’(당초 기억화해재단에서 수정)을 설립, 모금 등을 진행하겠다는 구상이다.

 당초 화해치유재단 잔액 60억 원을 기금 조성에 반영하려 했으나 의견수렴 과정에서 이는 법안에 포함하지 않기로 했다.

 기금 규모는 3000억 원, 위자료 지급 대상은 1500여 명(소송 예상 인원 500명 전제 시)으로 제시했었는데 이 역시 구체적 근거를 놓고 비판이 일면서 “재판 설립 후 심의위서 결정한다”는 것으로 한 발 물렀다.

 하지만 ‘문희상안’에 대한 철회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다.

 모금 방식과 규모를 떠나 일제 강제동원 문제 해법을 고민하는데 있어 피해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배제되고, 가장 우선시 해야 될 것들이 빠져 있다는 이유다.

 최근 ‘문희상안’ 폐기·중단을 촉구하는 전국 시민사회의 성명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지난 6일 국회에서 ‘강제동원 문제 해결방안’을 주제로 열린 정책토론회에서도 ‘문희상안’에 대한 비판과 우려가 쏟아졌다.

 미쓰비시중공업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의 소송을 대리하고 있는 이상갑 변호사는 “‘문희상안’은 일제 강제동원 해결원칙인 역사적 진실기록, 가해자의 사과를 사실상 포기한 해법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강제동원 사실 자체를 부인하며 한국이 해결책을 마련하라는 일본 측 주장을 대부분 반영한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일본 정부와 전범기업들의 ‘직접’ 사과와 배상을 받기 위한 피해자들의 20년 이상 투쟁 성과와 역사적 한국 대법원의 승소 판결을 “무력화하는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지난 11월27일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미쓰비시중공업 근로정신대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 등이 광주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일본 정부와 전범기업들에 사죄·배상을 촉구하는 한편, 문희상 의장이 제시한 해법안에 대해선 철회를 촉구했다.<광주드림 자료사진>
 
▲“사과” 피해자들 20년 투쟁 무력화”
 
 이 변호사는 독일이 나치 피해자들 문제를 해결한 사례를 들어 “독일은 기금의 성격, 규모, 출연자, 총액, 배분방법 등에 대한 사전 논의와 합의 후 재단 설립 법안을 제정했다”며 “그렇지 않고 문희상안과 같은 개정법률안을 추진하는 것은 혼선과 국내적 갈등, 한국정부 책임만 발생시킬 위험이 높다. 내용적으로 옳지도 않고 시기상 적절하지도 않다”고 강조했다.

 ‘문희상안’이 안고 있는 위험성이 큰 탓에 발의 자체를 반대하는 주장도 제기됐다.

 김창록 정의기억연대 법률자문위원은 “‘문희상 구상’은 한국 정부, 한국 기업은 물론이고 한국 국민에게까지 책임을 떠넘기며 일본 기업과 정부의 책임을 면탈하게 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최악이다”며 ‘문희상안’을 ‘일본 책임 세탁법’으로 꼬집었다.

 특히, 김창록 위원은 “‘문희상 구상’은 실체가 명확하지도 않고 아직 구체적인 법안도 제시되지 않았는데 ‘다음 주’ 발의해 연내 통과시키려 하고 있다”고 무리한 추진을 지적하면서 “‘문희상 구상’은 즉각 폐기하는 것 이외에 달리 길이 없다”고 말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송기호 변호사도 “문 의장의 안은 모순에 빠진 아베를 풀어주는 결과가 될 수 있다. 아베 총리에게는 역사적 승리가 될 수 있다”며 “문 의장 안은 발의조차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회에 증언자로 나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도 ‘문희상안’에 대해 “어처구니 없다”며 “집어 치우라”고 비판했다. 이용수 할머니는 “일본한테 사죄를 받아야 한다. 명예회복을 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지난 6일 국회에서 ‘강제동원 문제 해결방안’을 주제로 열린 정책토론회.<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제공>
 
▲이용수 할머니 “집어 치우라”
 
 앞서 지난 5일 전국 70여 개 시민사회단체들은 국회 정문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강제동원 피해자를 지워버리고 아베에 면죄부 주는 문희상안을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 의장이 특별법 개정안 발의를 밀어붙일 경우 강제동원 피해자들과 시민사회의 반발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이국언 대표는 “(문 의장이)이 문제 해결을 위해 74년간 고통 속에 싸워 온 피해자들에게 한 번이라도 의견을 물어봤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문희상안’은)피해자를 우롱하고 국민을 모독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한일관계를 정상화하고 새로운 한일관계를 설정하려면 가해자의 책임 인정과 사죄 없이는 불가능하다”며 “이것이 빠진 ‘문희상안’을 당장 철회해야 한다”고 밝혔다.
강경남 기자 kkn@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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