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빙구간 서행’ 명령 대신 “관심·행동 유도”
광주 20여곳에 내걸려…“재밌다, 신선” 반응
“상상력 자극, 되레 안전에 위협도” 우려까지

▲ 광주 광산구 광신대교 진입로 우측 가로수에 게첨된 ‘북극곰도 미끄러지는 곳’ 현수막.
 ‘북극곰도 미끄러지는 곳.’

 광주 광산구 광신대교 주변 가로수에 내걸린 현수막이다.

 ‘아스팔트 도로 위에서 웬 북극곰?’싶다가 빨갛게 강조된 ‘미끄러지는 곳’이라는 문구에서 무릎을 치게 된다.

 얼음 위를 성큼성큼 잘 걷는 북극곰도 미끄러지는 곳이라니…. ‘결빙 구간이니 서행하라’는 경고 문구를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최근 광주지역 육아 관련 카페에는 해당 현수막 사진이 업로드 됐다.

 게시 글을 올린 시민은 ‘광주에선 눈이 많이 오지 않았지만, 문구가 웃겨서 사진을 올렸다’며 현수막 문구를 재미있어했다.

 이 현수막을 본 또 다른 시민도 “그동안 많이 봐온 교통안전 현수막은 보통 ‘사망사고’를 강조한 게 많은데, 문구가 재미있고 눈에 띄어 다른 현수막보다 훨씬 나아 보인다”고 말했다.

 보통 도로에는 ‘결빙구간, 위험’이라거나 ‘졸음운전, 저승으로 가는 지름길’과 같이 직설적·노골적인 경고 문구가 많다. 또 고속도로에선 ‘아빠, 졸음운전 안 돼요’처럼 운전자를 ‘남성 가장’으로 상정한 성차별적 문구도 흔히 볼 수 있다.

 이 현수막을 게첨한 기관은 한국교통안전공단 광주전남본부.
 
▲교통안전공단 ‘블랙아이스’ 경고

 공단은 광주지방경찰청과 협업으로 ‘결빙’으로 도로에 블랙아이스 현상이 발생하기 쉬운 광주지역 20여 곳에 해당 현수막을 부착했다.

 모든 현수막이 동일하게 현수막 상단에 ‘사람이 보이면 일단 멈춤’이라는 문구가 작게 새겨져 있고, 중앙에 ‘북극곰도 미끄러지는 곳’이라는 문구가 눈에 띤다.

 문구 배경으로 눈오는 빙판길에 미끄러져 사고가 나는 차량 두 대가 그림으로 묘사돼 있다.

 산간도로나 교량, 터널 입·출구 등에서 새벽이나 기온이 급격히 떨어질 때 도로 위에 살얼음이 생기면 사고 위험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공단 관계자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갑작스럽게 영하로 떨어지고 비까지 내린 뒤 강원 영서와 경기 지역 곳곳서 교통사고가 발생하고 있어 한국교통안전공단 본사 차원에서 만들어 보내준 문구 시안을 현수막으로 제작해 게첨했다”고 밝혔다.

 내린 비나 눈이 차가운 날씨 탓에 도로에 얼어붙으며 빙판길이 만들어질 수 있는 구간이 현수막 게첨 대상지가 됐다.

 공단 관계자는 “공단 측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실제로 서리가 내리거나 살짝 언 도로에서 발생한 교통사고의 치사율은 마른 도로에 비해 1.5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결빙으로 인한 사고가 사회적 위협이 되고 있는 가운데, 재미도 있으면서 위험성도 인식하고, 시민들이 알기 쉽고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문구를 선정하게 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다른 형식의 현수막 문구는 많이 사용해왔기 때문에 새로운 문구를 처음으로 시도해 본 것이라 기대감이 크다”며 “아직 시범 단계이긴 하지만, 무엇보다 시민들이 문구 내용을 인식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교통안전 인식에 대한 환기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특히 지시나 명령, 감시나 처벌과 같은 ‘외재적 동기’보다는 스스로 문제를 인식하고 행동 변화를 이끌어내는 ‘내재적 동기’를 자극한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광주 광산구 광신대교 진입로 우측 가로수에 게첨된 ‘북극곰도 미끄러지는 곳’ 현수막.|||||
 
▲“결빙·감속 같은 정보 제공 곁들이면”

 조현미 심리상담사는 “사람들은 대개 자신이 경험해 보고 직접 그 상황을 통제하고 싶어 하는 경향이 강하다”며 “그래서 누군가 지시나 명령을 할 경우 이를 그대로 따르기보다 반감을 갖거나 무시하게 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극곰…’ 현수막에 대해 “정보를 주면서 동기유발을 시키는 문구는 ‘미끄럽다고 한다면 조심해야겠네’라고 생각하도록 유도해 자발성을 키우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해당 현수막처럼 에둘러 표현하는 안내 문구의 부작용도 우려된다.

 조현미 심리상담사는 “운전자가 차를 타고 지나가며 현수막 문구를 속독하게 되는데, 문구를 인식한 뒤 내용을 이해해야 하는 경우, 오히려 문구를 생각하게 돼 ‘감속’이라는 궁극적인 행동 목표를 놓칠 수 있다”면서 “긍정적 표현의 단점은 문장독해력에 따라서 효과가 감소될 수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단순히 상상력만 자극하는 긍정 표현만 제시하기 보다는 ‘결빙’이나 ‘감속’과 같은 정보 제공 문구를 함께 적는 편이 행동 유발에 있어 훨씬 효과적이지 않을까 한다”고 제안했다.
김우리 기자 uri@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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