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사-영업소-기사’구조…수수료 장난 많아
첫발땐 터무니없는 금액으로 차량 구입 강제

▲ A대리점 소속 ㄱ씨가 서울 소재 물류회사와 작성한 ‘차량출고 및 물류배송직투입 위탁 계약서’와 영업소와 작성한 소화물 위탁 취급 계약서.
 “택배기사들은 한 달 일한 수수료를 그 다음 달 받는 구조입니다. 이 점을 대리점 소장이 악용해 택배기사들이 그만 두게 될 경우 아예 한 달치 수수료를 지급안하는 겁니다. 이런 식으로 피해를 본 택배기사들이 수두룩합니다. 일단 몇 명 피해기사들의 피해액만 계산해도 5000만 원 정도인데 그 동안 그냥 포기하고 나갔던 사람들까지 하면 더 크죠. 그만 두면 못 받는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심지어 법원에서 지급이행권고를 해도 모르쇠입니다. 본사에 해결을 요구해도 대리점과 알아서 해결하라는 식입니다. 개인사업자 신분이라고 임금체불로 구제받기도 힘들고 ‘민사’로 가야하지만 시간과 비용의 문제로 엄두를 못내요.”

 한진택배 광주 A영업소 소속으로 일했던 택배기사들의 하소연이다.
이들의 피해 내용을 들여다보면 택배시스템의 난맥상이 그대로 드러난다. 택배기사를 그만 두면서 못받은 수수료를 받겠다고 모인 이들이지만 택배기사 첫 유입 경로부터 한진택배를 그만 두게 된 과정과 그 이후 피해까지 첫 단추부터 마지막단추까지 모두 잘못 됐다.
 
▲영업소 횡포에 본사는 팔짱

 여러 난맥상 중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 미지급 수수료 문제마저도 해결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본사인 택배회사-영업소-택배기사로 이어지는 다단계 계약 구조 탓이다. 본사와 영업소가 위수탁 계약을 맺고 다시 영업소와 택배기사들이 위탁계약을 맺는 방식으로 본사가 택배비를 영업소에 지급하면 영업소에서 운영비 명목의 배송, 집하 수수료 등을 제외하고 택배 기사에게 전달한다. 영업소에서 택배기사에게 지급해야 하는 수수료를 지급하지 않거나 해서 문제가 발생해도 본사에선 영업소와 택배기사들의 문제로 선을 긋고 있는 것.

 (주)한진 관계자는 “집배점과 택배기사 당사자간 문제로 하도급법상 본사 관여가 어렵다”면서 “당사자 간 원만하게 해결할 것을 독려하고 있고, 향후 집배점과의 계약에서 불이익을 주는 방안도 있다”고 밝혔다.

 전국택배노조 김인봉 사무처장은 “한진택배 대리점 택배기사들의 수수료 피해 문제 유형은 택배 대리점들이 자주 써먹는 수법으로 실제로 예전 CJ 대한통운 대리점장이 택배기사들의 수수료를 떼먹고 잠적한 적이 있었는데, 택배 본사는 택배기사들의 수수료 문제는 발을 빼고 본사 손해 부분만 수리해가려는 태도를 보여 반발을 샀다”면서 “택배기사들의 수수료는 사실상 임금 성격으로 임금체불로 가면 해결이 쉬운데 개인사업자라는 이유로 문제해결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계약 해지 등 영업소장 갑질도 만연”

 본사가 책임지지 않는 현재의 다단계 구조에선 다양한 적폐들이 발생한다는 목소리다. 택배기사들은 영업소 운영의 불투명함, 제각각인 수수료, 영업소장의 전횡 등을 문제 삼는다.

 “택배 수수료 지급 근거를 줄 것을 수 차례 요구했지만 받지 못했습니다. 내가 몇 건을 배송하고 얼마를 받는지 모른 채 주면 주는대로 받아가는 식이에요. 자료를 요구해도 주지를 않아요.” A대리점 택배기사들의 하소연이다.

 공공운수연맹 전국택배노동조합 송훈종 씨는 지난 2018년 10월17일 있었던 ‘택배기업 원청 교섭의무와 택배노동 환경개선을 위한 국회토론회’에서 영업소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송 씨는 △영업소장의 맘대로 계약 해지 △영업소 소장들의 비리 △택배 집·배송 비용에서 영업소가 자기 수익을 챙기는 구조 등을 문제 삼았다.

 25년 동안 택배기사를 했다는 송 씨는 “지금도 택배현장에서는 ‘너 내일부터 나오지 마’하는 영업소 소장들의 갑질이 종종 벌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또 영업소 소장들의 비리와 관련해서 “이런 일을 방조하는 것이 택배 원청 회사들”이라면서 택배회사들이 택배 노동자들의 수차례 요구에도 불구하고 자체 전산망 (N_PLUS)을 개방하지 않고 있다”면서 “구조적인 부분에서 택배 노동자들이 자신의 집·배송 현황을 알고 본인의 수수료를 정확히 확인할 수 있는 구조로 바꿔야 한다”고 밝혔다.

 송 씨는 “택배원청회사들은 영업소 관리 운영비용과 택배 집·배송 비용을 분리 지급해야 한다”면서 “집·배송 비용에서 영업소 수익을 가져가는 구조여서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영업소 소장들은 최대한 택배 노동자들을 쥐어짤 수밖에 없으며 이런 구조이기에 현장에서는 영업소 소장과 택배 노동자의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모든 책임 전가…불공정 계약 심각”

 영업소와 택배기사들의 불공정 계약 문제도 심각했다. A영업소와 택배기사들의 소화물 위탁 취급 계약서에 따르면 대부분의 책임은 ‘을’인 택배기사가 져야 했다. 업무상 관계에서는 “모든 문제에 독립된 당사자로서 행동하며 어떠한 조건하에서도 ‘갑’과 ‘을’의 관계는 조합, 합자회사 또는 사용주와 사용인의 관계에 있지 않음을 확인한다”고 명시하면서도 “복수 계약 등에 의해 본 업무와 유사한 여타 업무 수행 금지” 배송 시간, 휴일, 분실책임 등 준수해야 할 사항, 민·형사상의 책임 등이 택배기사에게 부여됐다.

 계약의 해지와 관련해서도 을이 계약을 위반하는 경우 최고 없이 즉시 계약해지 가능했으나 을이 업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 60일 이전에 갑에게 통보, 후임자를 모집해 업무 인수인계해야 하며 인수인계는 완벽하게 해야 한다고 적시돼 있다.

 또 업무 인수 인계를 하지 않아 갑에게 업무상 막대한 지장을 초래한 경우 을의 남은 수수료는 집배송 처리비용으로 포함한다고 돼 있다. 또 “이유를 불문하고 을이 2개월 이내 퇴사시 갑은 을의 수수료 전액을 지급하지 않는다(이 때 을의 퇴사시 대체인력 투입 및 배송 지연 패널티, 클레임 변상금으로 사용된다)”고 돼 있다.

 
▲“차량가 1300만 더 붙여 판매 사례도”

 “이게 더 큰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택배기사를 하려고 인터넷을 검색하면 택배 본사나 영업소에서 모집하는 게 아니라 대부분 물류회사가 택배기사 모집 광고를 올려요. 잘 모르는 사람들은 여기로 가서 면접을 보는 건데 여기서 택배기사들에게 차를 구입하게 합니다. 문제는 차량 가격을 터무니 없이 비싸게 올려 구매하게 한다는 거예요. 물류회사가 캐피털 회사하고 차량에 탑을 올리는 업체를 끼고 정가로 구입하면 1500만 원 정도면 살 수 있는 차를 많게는 1300만 원이나 붙여서 구매하게 만드는 거죠. 그렇게 차량을 구매하면 물류회사가 택배회사를 소개해줘요.”

 A대리점 소속 ㄱ씨가 서울 소재 물류회사와 작성한 ‘차량출고 및 물류배송직투입 위탁 계약서’에는 위탁계약금액으로 2730만 원(현대포터2 또는 기아봉고2+냉동탑 구조변경)이 적혀 있었다. ㄱ씨와 같이 물류회사를 통해 차량을 구매해 들어온 노동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전국택배노조 김인봉 사무처장은 “택배기사들에게 택배기사 자리를 소개시켜준다는 명목으로 필요도 없는 냉동탑을 올리는 등 차량 가격을 부불려 구매하게 하는, 일종의 취업사기로 정상적인 택배기사 유입 경로는 아니다”면서 “국토부에 단속을 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택배기사를 시작한 때부터 모든 국면에서 난국이다. 피해는 본사도 아니고 영업소도 아니고 오전 6시부터 밤 12시까지 일하는 택배기사들이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 그 어디에서도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암담한 상황이다.”

 일방적으로 위험을 부담하고, 제도적 안전망에서도 배제돼 있는 택배기사들이 벼랑 끝에 서 있다.
황해윤 기자 nabi@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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