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무지구 차스타워에 이동노동자쉼터
대부분 새벽 방문…“몸녹이고 수면도”

▲ 지난 2월1일 개소한 달빛쉼터 내부 전경.
 “정말 우릴 위한 공간이라고요? 광주시가 어째서 대리기사를 위해 이렇게나 좋은 공간을….”

 최근 광주시가 문을 연 ‘이동노동자 쉼터’ 이용자들은 말문이 막혔다. 아늑하고 편안한 쉼터를 두 눈으로 보고 벅차오르는 심정을 표현할 길이 없어서다.

 혹한의 대기시간, 마땅히 쉴 곳이 없어 은행 365코너에서 추위를 피해온 대리기사들. 하루 8km이상 뛰면서도 제대로 된 ‘쉼’을 보장받지 못했기에 쉼터에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이동노동자 쉼터가 문을 연지 이틀째 되는 지난 2일 오후 11시30분, 아직까지 입소문이 뻗치지 않은 탓에 내부는 한산했다. 이 시각이 대리 요청이 많은 금요일 저녁이라는 이유도 있었다.

 광주 상무지구에 자리 잡은 쉼터 이름은 ‘달빛 쉼터’로 차스타워 신관 빌딩 8층(132㎡)의 불을 환히 밝혔다. 야간 노동에 치이는 대리기사들에게 ‘달빛’ 같은 쉼터가 되는 것이 목표다. 쉼터는 주간에도 문을 열기 때문에 모든 이동노동자에게도 열려 있다.
 
▲“우리 공간, 그냥 좋아, 추후 역할 기대”

 광주시는 쉼터 운영에 앞서 지난해 실태조사, 현장체험, 토론회 등을 진행했다.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광주지역 대리운전기사는 약 4000명으로 평균 연령은 51세, 전업 종사자는 81%다.

 하지만 대리운전기사 등 이동노동자들은 대기 중에는 추위와 더위는 물론 생리적인 현상조차 해결할 수 있는 곳이 없어 쉼터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달빛 쉼터의 문을 열자마자 훈기가 가득했다. 난방기에 표시된 온도를 보니 24도. 은은한 조명과 편안한 소파는 아늑한 카페에 온 것처럼 마음까지 훈훈하게 데웠다.

 쉼터가 비치해 놓은 방문록엔 앞서 다녀간 이동노동자들의 이름과 직업, 방문시간 등이 적혀 있었다.

 이날 오후 2시에 보험설계사 두 명의 방문이 있었고, 오후 6시경엔 배달노동자가 9시엔 대리기사가 찾았다.

 쉼터를 지키고 있는 ‘달빛 지기’가 “이용 첫날엔 6명의 대리기사님이 방문했다”고 했다. 본보가 방문 후 추가로 확인 결과, 이날은 동이 틀 때까지 총 14명이 방문했다. 5일부터 6일 새벽까진 8명이 찾았다.

 달빛 쉼터는 월요일부터 토요일(새벽), 오전9시부터 다음날 오전 5시까지 운영된다. 주말(토~일) 이틀을 빼고 하루 20시간 개방되고 있다. 쉼터 위탁운영을 맡은 광주 노동센터 소속의 달빛 지기 두 명이 1일 2교대로 근무 중이다.
 
▲전신안마기·수면실·회의실 등

 쉼터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전신 안마기 3대였다. 무리한 도보 이동이 잦은 이동노동자들의 피로 해소에 맞춤 시설로 보였다. 광주노동센터에 따르면, 대리기사들의 평균 업무 시간은 9시간이며, 운행시간은 4.78시간이고 대기시간은 3.42시간이다.

 쉼터 한켠엔 휴게실(수면실) 두 곳(남성·여성)과 회의실이 마련돼 있었다. 휴게실 내부는 와상 의자들이 나란히 놓여 있어 잠깐이라도 몸을 누이고 수면을 취할 수 있도록 했다.

 이밖에 널찍한 테이블과 의자, 컴퓨터 세 대, 냉장고 등의 시설과 정수기 및 음료가 구비돼 있었다. 쉼터는 전신 안마기에 이어 발마사지기도 추가 도입할 예정이다.

 쉼터 내부 설계는 2년 앞서 이동노동자 쉼터를 운영하고 있는 서울시의 모델을 차용했다. 서울시는 2016년부터 이동노동자 쉼터 3곳의 문을 열고 작년에만 이용자가 2만 명이 넘는 등 호응을 얻고 있다.

 광주는 전국에서 두 번째로 이동노동자 쉼터를 추진하면서 이제 막 시동을 건 셈이다.

 야간 근무를 맡은 달빛 지기 황인용 씨는 “한 대리기사님이 ‘광주시가 왜 이런 공간을 우리에게 제공하는 건가’라고 의아해하면서도 정말 좋아 하시더라”며 “다른 동료들에게 전화를 걸어 쉼터를 홍보하셨고 그날로 두 세 분이 더 방문했다”고 말했다.

 달빛 지기들은 휴게공간 제공뿐 아니라 각종 상담과 정보제공을 위해 메신저 역할을 할 예정이다. 달빛 쉼터 개소를 앞두고 쉼터와 같은 빌딩, 같은 층으로 이전한 광주노동센터는 각종 노동·법률상담을 맡는다. 광주 근로자건강센터 등과도 협조해 건강 관련 프로그램도 운영할 계획이다.

 하지만 이동노동자쉼터 ‘1호’가 이제 막 문을 열고 운영을 시작한 만큼 아직은 보완해야 할 점도 남아있다. 기본적인 노동권도 보장받지 못하는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에게 “최소한의 인권보호 시설”로서 기능할 수 있는 여건 마련이다.
 
▲‘주말 이용 제한’ 등 보완점도

 쉼터 개소 소식을 들었지만, “8층이라는 거리감 때문에 아직 방문이 꺼려진다”는 대리기사 A씨는 “눈치 보지 않고 쉴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는 점에서 이루 말할 수 없이 좋다”면서도 “상무지구 중심가 1층에 있다면 자주 들락날락 할 텐데, 퀵보드를 들고 방문하기엔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또 A씨는 “주말에도 많은 기사들이 근무를 하기 때문에 쉼터가 24시간 개방되면 좋겠다”면서 “무엇보다 시급한 건 업체로부터 부당하게 수수료를 떼이고 손님으로부터 갑질을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부터 바뀌어야 하지 않겠냐”고 덧붙였다.

 실태조사에 따르면, 대리기사의 33%가 주말 근무를 한다.

 이와 관련해 광주노동센터 신명근 센터장은 “인력과 예산 부족으로 연중무휴 개방이 어려운 점은 아쉽게 생각한다”며 “일차적으로 따듯하고 안전한 공간 제공, 이동노동자들을 위한 기초적 서비스 제공, 나아가 노동 취약계층의 조직과 연대를 목표로 운영하겠다”고 말했다.

 오는 19일 이동노동자 쉼터 개소식이 열릴 예정이다.

 한편 지난해 광주시가 실시한 실태조사에서 대리기사의 94%가 최소한의 인권보호시설로 이동노동자 쉼터가 필요하다고 응답했으며, 퀵서비스 종사자도 90% 이상 쉼터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김우리 기자 uri@gjdream.com

[드림 콕!]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광주드림을 구독하세요

저작권자 © 광주드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