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 명의 대여시 기기당 금액” 변종 대출
청년드림은행 피해 사례 확인…추가 접수

▲ 동구 구시청사거리에 위치한 광주청년드림은행. 최근 지역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부채 상담 과정에서 ‘내구제 대출’ 피해사례를 확인, 추가 피해 사례 접수를 진행할 예정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구직 중이던 김영호(가명) 씨는 지난 1월 각 통신사로부터 ‘미납요금 통지서’를 받았다. 통신사마다 10만~20만 원씩 미납됐다는 통보.

 그중 한 통신사로부터 받은 ‘부채증명서’에 써진 금액은 김 씨를 까무러치게 했다. 2개 전화번호에 총 69만 원이 미납됐다고 나온 것이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김 씨의 이름으로 개통한 4개 핸드폰의 단말기 대금 312만 원이 부과됐던 것. ‘서울보증보험’에서 온 ‘채무변제 안내’엔 이 단말기 대금을 2월6일까지 전액 변제해달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김 씨에게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100만원 빌리려다 400만 원 빚

 생활비가 필요했던 그는 앞서 인터넷에 가능한 대출을 검색했다. 그러다 ‘내구제 대출’이라는 걸 알게 됐다. 검색을 통해 확인한 연락처로 문의하니 얼마 뒤 한 남성이 김 씨를 찾아 왔다.

 이 남성은 김 씨의 개인정보로 핸드폰을 개통하면 기기당 얼마 씩 돈을 입급해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김 씨는 한 커피숍에서 핸드폰 개통을 위한 서류를 작성했다. “이상하다”고 느꼈지만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닌지 물어볼 수 없었다. 당장 생활비가 급한데 꼬치꼬치 캐물었다간 그 남성이 그냥 가버릴 거 같았기 때문이다.

 몇일 뒤 김 씨의 통장엔 36만 원, 20만 원, 30만 원이 차례로 입금됐다.

 100만 원이 채 안 되는 생활비를 얻고자 했던 당시의 일로 김 씨는 400여만 원의 부채(4개 핸드폰 단말기 대금+통신요금)를 떠안게 됐다.

 김 씨의 피해 사례는 광주청년드림은행의 상담 과정에서 확인됐다.

 ‘내구제 대출’은 ‘나를 구제하는 대출’의 줄임말로 핸드폰이나 가전제품 등을 본인 명의로 구매하면 브로커가 이를 다른 곳에 팔아 얻은 판매 수익으로 대출해주는 일종의 ‘변종 대출’이다. 이 브로커는 판매 수익 중 일부를 수수료로 가져간다.

 인터넷에서 ‘내구제 대출’을 검색만하면 관련 정보들이 뜨는데, 기존 은행이나 금융권에서 대출이 어려운 청년들이 급하게 돈이 필요할 때 이를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청년드림은행은 지역 청년들을 대상으로 부채 문제를 상담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내구제 대출’ 피해자가 적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김 씨의 경우 100만 원 더 대출받으려다 “36만 원을 먼저 입금하면 추가 대출을 해주겠다”는 말에 먼저 돈을 입금했는데 돈을 받지 못해 해당 은행을 찾아갔다가 자신과 비슷한 피해자가 20명에 달한다는 걸 알게 됐다.
 
▲브로커 “4대 개통하면 200만 원 주겠다”

 청년드림은행이 확인한 ‘내구제 대출’ 피해자만 5명이 넘는다.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명의를 빌려주면서도 핸드폰 개통으로 인한 요금 부담을 떠안을 수 있다는 걸 알지 못한 상태였다.

 20대 B씨의 경우 자신이 사용하는 핸드폰의 기기값, 소액결제, 요금 연체 등으로 200만 원이 필요해 ‘핸드폰 내구제’를 알아보게 됐다. 인터넷 검색으로 알게 된 연락처로 문의하니 부산에서 브로커가 찾아왔다.

 핸드폰 한 대당 50만 원씩 총 4대를 개통하면 200만 원을 주겠다는 말에 B씨는 브로커의 차에서 약정서를 썼다. 브로커는 B씨에 “신고하지 않겠다”는 계약서도 요구했다.

 이로 인해 B씨가 떠안은 부채만 610만 원에 달한다. 앞으로 갚아야 할 단말기 대금만 370만 원. 그나마 1대는 통신사의 강한 추심으로 B씨의 어머니가 대신 납부했다.

 대학을 다니다 자퇴한 C씨의 경우 2016년 초 급하게 집을 나오면서 생활비가 필요해 핸드폰 2대를 개통하는 조건으로 100만 원을 받았다.

 청년드림은행 박수민 센터장도 ‘내구제 대출’을 문의해봤다. 박 센터장은 “전화를 하면 브로커가 일단 전화를 끊고 문자를 보내 왔다”고 했다.

 이 브로커는 박 센터장에 이른바 ‘문화상품권 깡’을 요구했다. 박 센터장이 핸드폰 소액결제로 모바일 문화상품권을 구매하고 이 정보를 넘기면 결제금액의 70%를 입금해주겠다는 것이었다.

 핸드폰을 이용한 ‘내구제 대출’은 기기값, 통신요금이 부채가 되는데, 박 센터장은 “정말 문제가 되는 것은 통신요금이다”고 말했다.

 기기값은 연체되면 통신사에 보증을 선 서울보증보험이 대금을 변제해 채권자가 된다. 이에 대해선 신용회복위원회의 개인 워크아웃을 신청해 볼 수 있지만 통신요금은 채무조정 대상이 아니어서 달리 손 쓸 방도가 없다.
 
▲문제는 통신요금…개인회생 모색해야
 
 박 센터장은 “통신요금의 경우 별도로 개인회생을 시도해보는 방법 밖엔 없다”고 말했다.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한 청년드림은행은 청년정책네트워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광주전남지부와 함께 ‘내구제 대출’ 피해 사례를 접수하기로 했다.

 청년들의 부주의로만 치부할 수 없다고 판단, 사례를 모으고 대책을 모색하겠다는 것이다.

 박 센터장은 “당장 생활비가 없는 청년들이 갈 수 있는 은행이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제도가 없다보니 ‘내구제’와 같은 범죄에 악용되고 있다”며 “사회안전망 부재가 악순환으로 이어진 것이다”고 지적했다.

 이어 “청년들이 떠안은 빚을 어떻게 할 것인지부터 피해 예방까지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피해사례 접수 문의: 062-434-0010 / 이메일 gwangjusm@gmail.com

강경남 기자 kkn@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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