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장애인들 광주시청~전남도청 95km `하트바이크’ 완주기

▲ 지난 6일 지적장애인들이 `2013 꿈을 향해 달리는 하트바이크’의 여정을 시작했다.
 지적장애인 12명이 지난 6일 광주시청을 출발, 승촌보~죽산보~무안 몽탄역~전남도청까지 1박2일 자전거 순례를 다녀왔다. `2013 꿈을 향해 달리는 하트바이크’, 그 인간 승리의 현장 체험기를 싣는다.

<편집자주>





 지난 6일 오전 8시 광주시청 문화광장에 도착해 무대 위에 고사를 준비하고 기다리니 친구들이 한 사람, 두 사람 연두색 유니폼을 입고 달려온다. 마치 소풍가는 날처럼 환하게 웃으며 달려오는 친구들. 부모님과 몇몇 분이 참석하신 가운데 고천문을 낭독하고 북어를 박은 쌀됫박에 막걸리를 올려 안전, 무사 기원 고사를 진행했다. 그리고 우리는 며칠 전 닦아 놓은 각자의 자전거 앞에 서서 파이팅을 외치고 시청 광장을 나섰다. 2013 꿈을 향해 달리는 하트바이크의 힘찬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세찬 빗줄기 뚫고 힘찬 페달

 

 평상시 연습처럼 순서에 맞춰 선 친구들은 자전거를 끌고 자전거 도로로 향했다. 길게 늘어선 자전거가 달리기 시작했다. 지난해와 달리 올해 자전거 순례는 첫째 날부터 전체 95km 중 최대한 나가야 하는 부담감이 있었다. 이에 승촌보에서 1차 휴식을 하면서 간식도 먹고 화장실까지 다녀왔다.

 그런데 이정은 씨가 내리막길에서 급브레이크를 밟다가 넘어지고 말았다. 우선 놀란 정은 씨를 진정시키고 자전거는 트럭에, 정은 씨는 차에 태웠다. 말도 못하는 정은 씨가 계속 입과 콧등을 가르키며 다쳤다고 손가락으로 가르켰다. 가슴이 아팠지만 큰 부상은 아닌 게 천만 다행이었다.

 나머지 친구들도 한시름 놓은 뒤 다음 목적지를 향해 출발을 재촉했다. 빗줄기가 제법 굵어 그새 친구들의 신발이 젖어버렸지만, 여정은 계속됐다.

 점심은 영산강 다리 밑에서 먹었다. 자원봉사자와 필자는 영산강에 도착한 일행을 위해 따뜻한 미역국과 준비한 도시락을 나눠주었다. 그 시원한 다리 아래가 얼마나 추운지 우린 비옷을 먼저 입혔다. 조금만 가만히 있어도 체온이 급격하게 떨어질 것 같아 우린 급하게 밥을 먹고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을 찾아 쉬기로 하고 바로 떠났다.

 몸이 추울텐데, 농담도 나누는 친구들. 그 중 가장 걱정을 많이 했던 박덕균 씨가 선전하고 있었다. 늘 속도가 느려 일행에서 뒤쳐졌던 덕균 씨가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고 전혀 지치지 않은 모습을 보고 모두 “덕균 씨의 다른 모습을 봤다”고 놀라워했다.

 그렇게 우린 죽산보에 이르렀다. 빗줄기가 더 굵어져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과연 오늘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계속 내리는 비에 친구들 많이 힘들어하는 모습이었다.

 자전거 순례 중 마주친 사람들이 우리 친구들을 보고 손을 흔들어 줬다. 들녘은 누렇게 익어 고개를 숙이고 있는 벼들과 죽산보에서 만난 개구리들이 우리에게 인사를 하는 것 같았다.

 광주에코바이크 김광훈 사무국장과 선생님들과의 의논 끝에 우리는 동강교를 첫째 날 최종 목적지로 정했다. 동강교에서 간식을 먹기로 했는데 서 있기 힘들 정도로 비도 많이 오고, 바람도 불었다. 입술이 파랗게 변해 추위에 떨고 있는 친구들은 차에 태워서 숙소로 가고 자전거도 트럭에 실었다.

 

 나주 숙소서 `나의 이상형’ 얘기

 

 올해 나주의 목사내야를 숙소로 이용했다. 고된 여정 끝에 도착한 숙소에서 우리는 각자 방 배정을 하고 유니폼을 벗어 세탁기에 돌리고 세신 후 사랑채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친구들 말이 “밥이 꿀맛” 이란다. 우린 숙소에 돌아와 잠시 휴식 후 저녁 8시30분부터 나눔시간(치맥시간 : 치킨과 맥주가 만나는 시간)을 가졌다.

 사실 20세가 넘은 성인들이다. 그 중 35세 친구도 있다. 하지만 이 친구들은 평소에 이런 자리를 가질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었다. 일반 사람이면 금요일 저녁 지인들과 가볍게 맥주 한 잔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인데….

 치맥시간이 시작되었다. 작년엔 `나의 꿈’을 소재로 이야기를 나눴었는데, 이번에는 `나의 이상형’을 소재로 이야기 나눴다. 요즘 부쩍 이성에 관심이 많은 친구들에게 한번쯤 자신이 원하는 이상형을 생각해 보는 기회를 만들어 보고 싶어서였다.

 먼저 용기를 낸 양정요 씨가 “자기만을 바라보고 자기만을 위해 주고 자기만을 사랑하는 사람이 이상형”이라고 말했다. 최숙현 씨의 이상형은 외모를 중심으로 일단 얼굴이 잘생겨야 했다. 윤현숙 씨는 “아빠를 닮은 남자였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역시나 여러 가지 생각들이 나온다. 그런 대화가 오가다 정요 씨가 센터에 다니는 이정현 씨에게 고백을 하게 됐다. 정현 씨 또한 정요 씨와 “교제하고 싶다”고 고백해 뜻밖의 현장 커플이 탄생했다. 김광훈 국장님이 준비하신 티셔츠 두 벌이 주인을 찾았다. 친구들의 축하 박수를 받고 서로를 위해 건배를 외치며 첫째날 저녁이 그렇게 지나갔다.

 

 둘째날 “힘들고 아프다” 쓰러져

 

 둘째 날인 7일 비가 그쳤다.

 빨래대 위해 가지런히 널어 놓은 옷도 마르고 덜 마른 운동화는 선생님들이 드라이어기로 말렸다. 세면 후 짐을 정리해 놓고 아침식사를 한 뒤 우리는 차량으로 동강대교로 갔다. 에너지를 충전한 우리는 다시 힘차게 자전거를 탔다. 그런데 어제부터 감기 기운이 있던 박은진 씨가 갑자기 자전거를 타기 싫다고 했다.

 “아무리 자전거 순례가 중요해도 본인이 원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하는 생각에 은진 씨를 차에 태웠다. 은진 씨도 쑥스러운지 울기 시작했는데, 겨우 진정시키고 회복이 되면 다시 타기로 약속했다.

 동강대교에서 출발해 둘째날 최대고비인 느러지에 도달했다. 친구들은 다시 한번 파이팅을 외치며 달리기 시작한다. 목포에서 광주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선 조금도 속도를 늦출 수 없었다.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바람이 세게 불어 친구들이 자전거 타기가 쉽지 않았다. 이화진 씨는 갈비뼈가 아프다고 눕고, 꿋꿋하게 달리던 덕균 씨도 다리가 아프다고 호소했다. 난 화진씨와 덕균씨에게 다리 맛사지로 응급처치를 했다. 힘이 들었는지 신아영 씨도 울기 시작했다. 그래도 끝까지 탄다는 걸 잠시 쉬었다 타라고 달래서 차에 타게 했다. 이렇게 차에는 은진·아영·화진 씨가 함께 있게 됐다. 역시 쉽지 않은 코스였나 보다. “여기서부터 계속 차도 옆 자전거 도로로 달려야 하는데.” 걱정이 됐다.

 하지만 마지막 3km를 남기고 화진 씨와 은진 씨가 다시 자전거에 올라 달리기 시작했다. 차에 탄 봉사자들은 “힘내라 힘 ! 힘을 내라 힘!”을 외쳤다.

 남악 시내가 보이고 번쩍이는 유리창이 많은 도청도 저 멀리 보이기 시작했다. 앞·뒤로 오는 차들을 막고 도청을 향해 친구들은 달릴 뿐이었다. 2km, 1km… 목적지가 가까워 질수록 가슴이 벅차오르기 시작했다.

 

 “다음에 또 하겠냐?” 일제히 “네!”

 

 도착. 그런데 친구들은 오히려 담담한 모습으로 바닥에 앉아 물을 마셨다. 광주시청에서 전남도청까지 약 95km자전거 순례를 무사히 마친 친구들은 수료증을 받고, 단체 사진도 찍었다.

 목포역으로 갈 준비를 하면서 “이렇게 힘이 드는데 또 하겠냐”고 물었다. 담담했던 표정이 환한 표정으로 바뀌면서 모두 “네!”라고 대답한다.

 다음은 어딜가고 싶냐고 물었다. 제주도, 섬진강 등 많은 곳이 나왔다. 친구들과 가야할 곳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친 모습이지만 모두 웃고 있었다. 누가 질문을 했다. “친구들이 목적지에 도착해도 담담해 한다”고. 하지만 친구들은 목적지를 향해 가는 것보다 그저 어제처럼, 평소처럼 자전거를 탔던 것이다. 단지 친구들과 함께 새로운 곳, 평상 시보다 먼 곳으로 갔을뿐.

 친구들의 “좋았어요” 이 한마디. 좋다면 좋은 것이다 !

 위험과 걱정 그리고 많은 준비와 규칙적인 연습 과정을 감수하면서 이 순례를 고집했던 이유는 친구들이 자신의 의지로 자전거의 패달을 굴려 가을의 풍경을 보고 느끼면서 땀 흘리고 서로 땀을 닦아주면서 뭔가 해냈다는 자부심과 자신감을 갖길 바랐기 때문이다. 장애는 본인의 의지로 생긴 것이 아니다. 장애로 인해 몸은 불편하더라도 그들의 삶은 그 누구보다 건강한 생활이 될 수 있기다는 걸 자전거 순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백순영<광주지적장애인복지협회 광산구지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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