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민우회, 남성의 고소·협박 상담 늘어

 # 30대 여성 A씨는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됐다. 여러 고민 끝에 중절수술을 결정했고, 남자친구에게는 알리지 않았다. 이후 남자친구와 헤어지는 과정에서 남자친구가 임신중절 사실을 알게 됐다. 남자친구는 A씨의 헤어지자는 요구를 거부하며 만나주지 않을 경우 경찰에 낙태죄로 고소하겠다고 A씨를 협박했다.

 

 #20대 여성인 B씨 역시 덜컥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됐다. 남자친구인 C씨는 술을 마시면 폭언과 기물파손을 일삼았지만 아이를 잘 키워보자는 결심을 하고 결혼식을 올렸다. 하지만 반복되는 폭언과 폭행을 견딜 수 없었다. B씨는 결국 임신중절을 결정하고, 이에 대한 동의 각서를 C씨에게 받았다. B씨는 임신중절과 함께 C씨와 이혼했다. 결혼 준비과정에서 든 비용에 대한 금전적인 법적 다툼이 시작되자 C씨는 B씨를 낙태로 고소했다. 재판결과 법원은 수술을 받은 B씨에게 벌금 200만 원을, 수술을 한 의사에게 징역 6개월·집행유예 1년에 자격정지 1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낙태를 방조한 혐의로 기소됐던 남자친구 C씨는 낙태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여성민우회가 올 한해 동안 낙태와 관련해 받은 상담내용들이다. 낙태를 엄격하게 금하고 처벌하게 되어 있는 현행법 아래에서 여성들의 고통은 가중된다. 낙태죄가 현실적으로 낙태를 줄이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여성을 협박하는 빌미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여성민우회는 올 한 해 들어온 낙태 상담 12건 가운데 10건이 남성의 고소 협박 관련 건이라고 밝혔다. 현재 형법 269조는 낙태를 한 여성은 1년 이하 징역이나 200만 원의 벌금형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여성민우회와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은 지난 7일 ‘낙태죄, 법 개정을 위한 포럼’을 열고, 여성만 처벌하는 낙태죄에 대한 문제를 지적했다.

 한국여성민우회 여성건강팀 활동가 정슬아 씨는 “최근 들어 더욱 증가한 ‘낙태’에 대한 남성의 협박과 관련한 상담을 볼 때 남녀 간의 ‘이별’은 지극히 개인적 감정의 문제에 머물지 않고 어느새 다시 ‘사건’이 되어 있었다”며 “남성들에게는 인공유산이 관계 유지를 위한, 또는 금전적 요구를 위한 협박과 보복의 도구가 되고 있다”고 밝혔다.

 법원도 이러한 남성들의 협박에 손을 들어주는 모양새다. 지난 8월, 의정부지방법원은 “낙태행위는 태아의 생명권을 침해하는 중대한 범죄”라는 이유로 여성에게 벌금형 200만 원을 선고했지만 남성에게는 동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지난 9월 대법원은 임신한 여자 친구에게 낙태를 교사한 혐의로 기소된 남성에 대한 상고심에서 벌금 200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은 여자 친구에게 직접 낙태를 권유할 당시뿐만 아니라 출산 여부는 알아서 하라고 통보한 이후에도 계속 낙태를 교사했고, 여자 친구는 이로 인해 낙태를 결의·실행하게 되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정슬아 씨는 “이 두 가지 최근판례는, 여성이 자신의 임신을 유지하거나 종결할 권리를 갖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생각하게 됨과 동시에 법에서 ‘남성’의 위치는 어디에 있는지 보여주기도 한다”면서 “남성은 태아와 여성 모두 생명에 위협을 주는 폭력을 행사했지만 낙태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죄’이고 또 한 사례는 남성은 임신을 유지하려는 여성에게 임신중절을 강요한 ‘말’들을 했다는 이유로 ‘유죄’로 법은 남성의 ‘동의’여부를 두고만 법적 처벌을 할 뿐 남성이 여성의 임신유지에 어떠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지는 보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예외적으로 낙태를 허용하는 모자보건법상 ‘배우자 동의’ 조항도 삭제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모자보건법 14조는 강간이나 인척에 의한 임신 등의 경우라도 배우자의 동의를 얻어야만 낙태가 가능하도록 되어 있다. 정슬아 씨는 “이 조항의 목표는 배우자의 동의가 아니라 ‘허락’을 거친 낙태이며, 이것은 형법269조인 ‘낙태죄’가 목표하는 국가의 형벌권이 여성의 몸을 통제하는 ‘허락’과 같은 것이기도 하다”며 “더욱이 배우자 동의 항목은 폭력이 있던 상황에서도 병원에 남성과 동행하지 않았다는 것을 문제 삼고 있다”고 지적했다.

 여성단체들은 궁극적으로 낙태 비범죄화를 요구하고 있다.

황해윤 기자 nabi@gjdream.com

[드림 콕!]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광주드림을 구독하세요

저작권자 © 광주드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