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운동연구소 광주 포함 전국 4곳 실태조사

▲ 집배원들이 살인적인 업무 강도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광주드림 자료사진>
“평소는 8시 출근인데 보통 7시까지 출근해요. 7시에 나와서 전날 못한 일하고 전날 택배분류, 그거 끝나면 10~11시. 그때부터 배달 나가요. 식사는 바쁘면 못 먹고 밤 10-11시까지 일해요. 특별소통기간에도 배달 후 우편분류 작업을 11시에 끝나고 나서 12시까지. 작년은 12시 넘어서 퇴근하기도 했어요. 분류작업은 보통 2시간 걸려요. 택배가 많으면 가능한 많이 싣고 나가고, 자기 중간 저장소가 따로 있거든요. 거기다가 차가 실어다주면, 계속 배달하는 거죠.”

“시쳇말로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근기법대로 칼같이 해주는 것은 아니더라도 사람이 노동을 하려면 어느정도 여유가 있고 쾌적한 공간이 조성이 되어야 하는데. 거의 정신을 못 차릴 정도, 체력에 한계를 느낄 정도다. ‘선거 때 과로사한다’는 말이 이해가 됩니다.”

집배원들의 하소연이다.

▶선거시즌 등 특별기엔 80시간 넘어

몇 몇 집배원들만의 특수한 사정일까? 그렇지 않다.

2일 사회진보연대 부설 노동자운동연구소(이하 연구소)가 광주를 포함해 전국 4개 지역, 8개 우체국 집배원 246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진행한 결과를 발표했다.

결과는 심각했다.

‘집배원 노동자의 노동재해·직업병 실태 및 건강권 확보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집배원노동자는 주당 평균 64.6시간을 일하고 있으며, 비수기에는 하루 평균 10.8시간, 폭주기에는 13.1시간, 특별기에는 15.3시간을 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정규직 평균 근로시간인 42.7시간(2013.3.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을 훨씬 초과하는 것으로, 집배원의 최장시간노동 실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우체국 집배원노동자들은 1년 52주 중 31주 동안은 하루에 평균 10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나머지 21주 동안은 하루에 13~15시간 씩 살인적인 노동시간을 감내하고 있었다.

소통기간에 따른 1일 평균 노동시간의 차이도 많았다.

특히 광주 지역은 ‘폭주기-비수기 차이’가 3.1시간, ‘특별기-폭주기 차이’가 3.3시간으로 평소 비수기와 특별소통기간의 노동시간 차가 6.4시간에 달했다.

특별소통기를 제외하고, 원칙적으로는 주말 근무가 존재하지 않지만 평소 물량이 너무 많기 때문에 토요일까지 나와서 추가 수당없이 무료노동을 해야 하는 사례도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달에 겸배(다른 집배원 물량을 대신 배달)를 하는 횟수가 6일 이상인 경우가 23%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1인당 한달 평균 5.7회의 겸배를 하고 있는 셈이다.

한 달에 겸배를 하는 횟수가 6일 이상인 경우가 광주 지역의 경우 65%, 인천은 41.7%로 높았고, 서울 지역은 6일 이상의 겸배는 많지 않았다.

연구소는 “‘지역 간 겸배 횟수의 차이’가 크다는 것은 ‘소요인력산출기준’에 따른 배치가 되지 않고 있으며, 예비 인력에 대한 대안이 전무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겸배를 하는 것 자체가 엄청난 부담이고, 예정 없이 추가되는 업무인데도 불구하고, 소요되는 노동시간만큼의 임금이 지급되는 것도 아니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겸배를 하더라도 우정본부에서 정해놓은 1시간만큼의 임금만 지급되고 있었다.


▶임금 전체노동자 평균 못 미쳐

일주일에 57.6시간~85.9시간에 달하는 살인적 노동시간에도 불구하고 집배원 노동자의 임금은 전체 노동자의 평균임금에도 못미치는 것으로 드러났다.

기능직 집배원의 단위시간당 평균임금은 전체 평균의 62%에 불과하며 상시위탁 집배원의 경우 전체 평균의 78%밖에 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집배원 노동자의 건강권도 심각하게 침해받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집배원노동자는 물량 및 소통시기에 따라 고무줄처럼 늘어나는 불규칙노동으로 인해 뇌심혈관계질환의 위험을 안고 있으며, 절반에 가까운 집배원들이 당장 치료를 받아야 하는 근골격계질환을 가진 채 일하는 등 건강과 안전의 사각지대에 놓여있었다.

조사결과 한 개 이상의 부위에서 근골격계증상을 가진 ‘증상 호소자’가 74.6%, 당장 의학적 치료가 필요한 ‘질환의심자‘는 43.3%였다.

게다가 집배원 노동자의 탈진 평균 점수도 다른 직업의 탈진 정도보다 심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절반 이상의 집배원이 우체국에서 근무하는 동안 업무수행 중 오토바이 및 차량 사고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결과 사고 발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여러 요인 중 노동시간이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다.

연구소는 집배원에 대한 과도한 물량집중 문제해결을 위해 △겸배줄이기 △시간외노동, 무료노동줄이기 △택배물량 상한선 선정 등을 제언했다. 또한 근본적으로는 인력 충원이 시급하다고 판단했다.

연구소는 “1990년대 초에 비해 1.5배 가량 증가한 우편물량, 배달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등기·소포·택배 물량의 급격한 증가, IMF 이후 이루어진 대규모의 집배원 구조조정 등의 원인으로 인해 집배원노동자의 노동강도는 대폭 증가했다”면서 “우정노조와 우정본부가 매년 수백명에서 천명이 넘는 규모의 집배원 인력 충원에 합의하고 추진해왔지만 실제 인력충원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대규모 인력 충원이 이루어진 시기는 집배원들이 현장에서 집단적으로 인력충원과 정규직화를 요구했던 2002년이 유일했다”고 지적했다.

인력 충원을 통한 노동강도 완화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집배원 노동자들의 희생은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황해윤 기자 nabi@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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