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일 `수완마을 개념수다’ 강사로 나서 `세월호가 남긴 것들 고통과 성장’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는 강용주 광주트라우마센터장.
-3일 수완마을서 `세월호가 남겨준 것들…’ 강연
-“세월호 이후 `총체적 불안사회’…성찰·개조 없이 치유 불가능”

 “세월호 참사로부터 1년이 지났지만, 세월호 유족들은 ‘여전히 트라우마(Intra Trauma)’의 상태입니다. ‘트라우마 이후(Post Trauma)’가 아니라.”

 2014년 4월16일로부터 414일째인 지난 3일 광주 광산구 수완지구 원당산 어울마루에서 진행된 인권토론마당 ‘수완마을 개념수다’의 강사로 나선 강용주 광주트라우마센터장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에게 “대체 국가란 무엇인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내지 못하는 무능한 국가란 존재할 가치가 있는 것인가?”라는 무겁고도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진 세월호 참사였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이 ‘근본적인 물음’의 답을 찾지 못한 상태다.

 강 센터장의 말처럼 세월호 유족들이 ‘인트라 트라우마’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세월호는 여전히 트라우마 상태

 

 이날 ‘세월호가 남겨준 것들 고통과 성장’이라는 주제로 강연에 나선 강 센터장은 본론에 들어가기 전 함께 자리한 주민들에 사진 한 장을 보여줬다.

 “복수초입니다. 가장 먼저 봄을 알리며 피는 꽃. 얼음 속에서 피어나는 복수초는 봄을 준비하는 것이기도 하고, 꺼지지 않는 삶, 생명을 뜻하기도 합니다.”

 그는 트라우마가 치유되는 것은 세 단계를 거친다고 했다. 안전을 확보하고 인식하는 단계, 외상 기억을 자신의 삶으로 통합, 재구성하는 단계, 파괴된 관계를 회복하고 공동체와 연결하는 단계.

 “우리는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이 사회가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고 느끼게 됐어요. 가장 익숙하고 의지하고 믿었던 세상이 나로부터 타자화되는 경험을 하게 된 것이죠. 거꾸로 트라우마를 치유하려면 이 사회가 안전하다, 믿을 수 있다라는 전제가 성립돼야 하는 겁니다.”

 현실은 어땠나? “세월호 1주기가 됐을 때, 세월호 유족들이 영정을 들고 상복을 들고 서울 광화문까지 오셨어요. 1주기라면 슬퍼하고 애도해야 할 때인데, 유족들은 길거리로 나서야 했습니다.”

 세월호 유족들에게 대한민국이란 나라, 국가는 여전히 “신뢰하고 의지할 수 있는 사회”가 아니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강 센터장은 단호히 말했다. 이 단계에서 치유를 이야기하는 건 ‘자기를 속이고 타인을 속이는 것’이라고.

 “어떤 재난이든 여기에 어떻게 대처하고 피해자들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그 사회의 품격이 결정됩니다. 이것은 피해자들의 치유에도 결정적 영향을 주는데, 그런 부분에서 세월호 참사, 5·18은 아쉬운 점이 많죠.”

 일부 정치권, ‘일간베스트(일베)’ 등에서 쏟아진 세월호 유족, 실종자 가족들에 대한 폄훼, 비하 발언들. 돌아오지 못한 가족들을 돌려달라, 진실을 밝혀달라는 절규에 눈을 감고, 귀를 막은 정부의 행태.

 그가 “세월호 유족들은 ‘인트라 트라우마’인 상태”라고 강조하는 이유다.

 

 피해자 대하는 태도가 사회의 품격

 

 “여전히 삭발하고 진상규명을 외치는 세월호 가족들을 돈으로 능멸하고 어묵이라고 하는 이런 상태. 세월호는 여전히 트라우마가 중첩되고 가중되고 있어요. 그만큼 세월호 가족들의 외상이나 상처가 깊을 수밖에 없죠.”

 실제 세월호 1주기에 맞춰 세월호 유가족 304명 가운데 152명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복수응답), 55.3%가 ‘죽고 싶다’, 70~80%가 분노·죄책감·우울증·무기력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떤 재난을 겪으면 심리학적으로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의 다섯 단계를 거치는데, 세월호 가족들은 1년이 지나도 아직 ‘분노’의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수용을 해야 애도하고 슬퍼할 수 있는 거거든요. 저는 이런 상태를 ‘심리적 폐허 상태’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더 큰 문제는 유가족들 대부분이 심리적으로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에요. 세월호 유족들은 슬퍼할 수도, 충분히 슬퍼하지도 못했고, 이 사회도 치유할 수 있는 조건이 안 돼 있는 거죠.”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강 센터장은 ‘고통에 대한 공감, 불행에 대한 연대’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함께 아파하는 것에는 치유적 힘이 있어요.”

 지난해 4월17일 세월호 참사 발생 이후 진도 실내체육관을 찾은 박근혜 대통령 앞 배낭을 메고, 모자를 쓴 채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세월호 가족의 사진을 보며 그는 말을 이었다.

 “우리가 아파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무릎을 꿇는다는 건 가해자가 용서를 비는 것이에요. 그런데 무릎을 꿇은 것은 세월호 가족, 국민이고, 그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이양받은 대통령은 가만히 서있습니다. 상상을 해 봅니다. 이랬을 때(세월호 가족이 무릎을 꿇었을 때), 대통령이 내려와 가족을 껴안아 줬다면, 우리 사회가 이렇게 아프진 않지 않았을까.”

 

 재난·참사 기억하는 건 공동체의 의무

 

 공감·연대와 함께 그가 강조한 세월호 참사로 인한 트라우마 치유의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은 진실규명이었다.

 “인권침해 피해자들은 진실, 정의실현, 배상의 권리를 갖는다고 합니다. 아니 누구한테 뺨을 맞아도 ‘왜 때려’라고, 맞은 이유를 알고 싶은 거 아니에요? 수학여행 갔다온다고 간 아이들이 돌아오지 못했다면, 왜 돌아오지 못했는지 밝혀야 하는 것이죠. ‘왜 죽었을까?’ 이 당연하고도 근본적인 질문이 해결되지 않고는 치유라는 건 불가능합니다.”

 진실이 밝혀지면 끝일까? 그는 “아니다”고 했다. 애초부터 트라우마라는 것은 ‘극복’하는 것이 아닌, 참고 견디며 사는 것이기에. 그는 이를 위해 중요한 것은 비슷한 아픔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 했고, ‘기억하는 것’이 그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어떤 재난·참사를 기억한다는 것은 국가, 그 공동체의 의무입니다. 그래야 되풀이되지 않습니다. ‘그만 잊자, 미래로 나가자’는 것은 가해자의 논리입니다. 기억한다는 건, 고통에 대한 연대고, ‘잊으라’하는 기득권에 대한 저항입니다.”

 그는 특히, 세월호 참사로 인한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문제가 세월호 가족들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실제 1980년 5·18을 겪은 광주에는 ‘오월 증후군’이라는 것이 있기도 하다. 5·18 당사자뿐 아니라 광주에 사는 시민들이 5월만 되면 우울하고, 분노를 느끼는 일종의 ‘기념일 반응’이다.

 “80년 5월 고립된 광주가 겪얻던 트라우마를, 세월호 참사 때는 온 국민이 TV·SNS로 아이들이 물에 잠겨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트라우마를 경함하게 됐습니다.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넘어선 것이죠. 이 집단적 트라우마를 치유하기 위해선 우리 사회 근본적인 혁신과 성찰, 전면적인 개조가 없이는, 어쩌면 한 발도 나아갈 수 없을 겁니다. 미국이 9·11 이전과 이후로 갈라지듯,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2014년 4월16일은 국민 전체 구성원에게 그런 과제를 던져준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가 생각하기에 궁극적으로 세월호 참사를 통해 우리가 해야할 일은 ‘재난으로 인한 수동적 객체’인 피해자를 ‘능동적 주체’로 일으켜 세우는 것이었다. 많은 이들이 생명을 잃었지만, 이를 우리 사회 안전과 존엄을 되돌아보고 바로 잡았다는 의미있는 죽음으로 다시금 위치 지워질 수 있도록 하자는 것. 그는 이것이 어떤 의미에서 ‘명예 회복’이면서 죽음 가운데 공동체가 이뤄낸 ‘외상후 성장’이 될 수 있을 것이라 했다. “사회와 공동체가 참사를 일으킨 구조와 원인들을 제거하고, 공동체 전체의 안전과 공공성을 강화하는 것이 치유의 과정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그가 믿는 ‘세월호 참사’라는 얼음 속에서 복수초를 꽃 피우는 길이었다.

강경남 기자 kkn@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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