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공천’ 의미 불구 ‘숙의’는 한계 분명

▲ 지난 18일 오후 7시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진행된 국민의당 북구 갑 경선이 숙의 배심원제로 치러지며 약 4시간 반 동안 이어졌다.

 숙의배심원제 방식을 처음 시도한 국민의당 경선 현장에서 이상과 현실의 부조화라는 민낯이 드러났다. 숙의제를 통해 배심원이 후보자를 판단할 수 있는 토론과 숙의의 자리가 마련되긴 했으나 진행방식·운영상의 미숙함이 본질을 퇴색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4·13 선거 후보등록을 일주일도 채 남기지 않은 18일 오후 7시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는 광주 북구 갑 숙의배심원단 경선이 치러질 예정이었다. 국민의당은 이날을 시작으로 주말까지 3일간 ‘숙의제 경선’ 릴레이 경주에 돌입했다.

 국민의당이 광주 개혁 공천을 목표로 도입한 숙의배심원제는 전문가·시민 등으로 구성된 배심원단 앞에서 후보들이 정견 발표와 질의응답 등의 절차를 거친 뒤 배심원단의 숙의 과정을 통해 투표가 진행되는 방식이다. 이번 경선 결과는 앞으로 숙의제 방식이 자리 잡을 수 있을지 가늠할 수 있는 시험대였다.

 

일반 유권자 46·전문가그룹 49명

 하지만 경선이 시작되기도 전 잡음은 현장 곳곳에서 일어났다. 이날 오후 7시에 시작하기로 한 경선은 배심원단 등록 절차가 지연되면서 20여 분 늦어졌다. 당일 연락을 받은 배심원단이 늦게 도착하거나 연락을 받았음에도 배심원단 명부에서 제외된 시민들이 경선장 입구에서 항의하는 등 소란이 있었던 것이다.

 유야무야 경선장의 문이 닫히고 자리에 앉은 배심원단은 일반 유권자 46명, 시민단체·교수 등 전문가 그룹 49명 등 총 95명이었다. 숙의제 배심원단으로 구성하려던 100~120명보다는 적은 수치다.

 국민의당은 배심원단을 구성할 때, 시민대표 50%·학계 20%·시민사회단체 15%·직능단체 15%를 계획했으나 사실상 경우·규모에 따라 시민단체 및 협회가 추천한 인원을 할당, 경선 스케줄 별로 배분하고 진행해 정확한 할당 비율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더군다나 주최 측은 배심원단 구성 방식과 규모에 대해 일언반구 설명 없이 “국내에서 처음 실시되는 숙의제”만을 강조하며 곧장 후보자의 정견발표를 시작했다. 후보자들은 각자의 이름이 부착된 단상 앞에 서서 당과 자신이 지향하는 비전 및 공약을 설명했다.

 이어 숙의제의 ‘꽃’인 배심원단 토의 시간이 주어졌다. 한 테이블 당 10명의 배심원단이 모여 후보자에 대해 ‘숙의(깊이 생각하여 넉넉히 의논하기)’하는 시간이다. 토의를 진행하고 기록하는 ‘퍼실리테이터’가 배심원단 테이블마다 한 명씩 배치됐다.

 

토의 40분…후보자 대한 질의 25분 고작 

 그러나 토의시간으로 주어진 40여 분 가운데, 배심원단이 후보자에 대한 질의사항을 숙의하는 시간은 25분 정도에 불과했다. 숙의제 자체에 대한 의논 시간이 나머지를 차지했기 때문. 먼저 배심원단은 경선 참여 이유와 숙의제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한 배심원은 “손녀를 돌보고 있는 상황이라 참석하기 어려웠고, 숙의제가 어떤 것인지도 몰라 껄끄러웠다”면서도 “막상 참여하고 보니 주최 측에서 새로운 정치 역사를 도전한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니까 나도 무언가 큰일을 맡게 된 것 같아 책임감이 생긴다”고 말했다.

 또 다른 배심원은 “그동안 배심원제는 많이 들어왔고 그 결과에 대해서 부정적인 여론을 많이 접했다”며 “이번에는 무언가 다를 것 같아 참여하게 됐고, 결과가 얼마만큼 공정성과 객관성을 반영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고 참여 동기를 밝혔다.

 기대심리에 반해 문제점도 지적됐다. 한 배심원은 “오늘 배심원단에 참여해달라는 주최 측의 연락을 받고 아무런 정보도 없이 참여하게 됐다”고 성토했고, 또 다른 이는 “배심원이 100명도 안 되는데 배심원 투표만으로 민의가 반영 되겠냐”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본격적으로 후보자에 대한 공통 질의사항과 특정 후보자에 대한 질의사항 논의가 시작되면서 장내가 비로소 시끌벅쩍 해졌다. 일부 배심원들은 지역의 일꾼으로써의 국회의원과 입헌자로서의 역할에 대해 각자의 의견을 나누며 토론을 풍성하게 만들었다.

 유권자 입장에서 생각해볼만한 다양한 질문들이 나오기도 했다. 해당 선거구 주민인 한 배심원은 “국회의원이라면 대표하는 지역을 잘 알아야 한다”면서 “석곡동이 8개 동이 합쳐진 지역인데 이 중 4개 이상의 동 이름을 말해달라”는 질문을 제안했다.

 또 다른 배심원은 “출마한 후보자 모두 똑똑한 분들인 건 알겠다. 그런데 가슴이 얼마나 따뜻한지는 알 수 없지 않냐. 최근 연말정산에서 기부금 소득공제를 얼마 받았나?”라는 질문을 제안해 모두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연말 소득서 기부금 공제 금액은?” 

 이어 특정 후보자에 대한 질의사항은 이미 발표한 각 후보별 정견발표에 대해 더 구체적인 답변을 요구하는 질문이 대부분이었다. 그만큼 후보자가 제시한 공약과 정견에 대해 충분히 경청하고 검토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특히 세 후보 가운데, 유일한 여성 후보자에게 여성 경력 단절 문제를 해결할 방안 등 같은 여성으로서 사회 문제에 공감해주기를 바라는 요청이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여성 배심원단 비중이 눈에 띄게 적다는 배심원단의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다. 실제 이날 배심원단으로 참여한 남성은 63명, 여성은 32명으로 두 배 차이가 났다.

 한편 배심원단의 숙의와 논의 끝에 완성된 질문지가 모두 전달되지는 못했다. 배심원들의 총의가 모인 질문지 가운데 주최 측이 임의대로 선택해 질의가 이뤄진 것이다. 질문에 대한 후보자들의 답변시간이 짧은 것도 문제였다. 정견발표가 5분에 진행된데 반해 1분씩 배분된 각 후보자별 답변시간은 정견에 대한 더 구체적인 설계안을 제시하기에 턱 없이 모자랐다.

 이날 경선은 4시간 반 만에 결판이 났다. 후보자로 현역의원이 없는 경우 배심원 투표에 여론조사 30%가 반영되는데, 합산 점수만 발표되면서 아쉬움을 낳았다. 밤늦게 끝이 난 이번 경선이 길다면 긴 시간이었겠지만, 4년 임기의 지역 대표를 뽑는 자리라기엔 미흡했다는 평이 나온다.

김우리 기자 uri@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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