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여성단체연합 주관 성평등문화제 강연

▲ 여성학자 정희진 씨가 6일 광주시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2016 성평등문화제 `페미? 케미!’에서 `미소지니, 가장 오래된 문명’이란 주제로 강연했다.
 “미소지니(misogyny)가 ‘여성혐오’로 번역된 것은 유감이다. 이 같은 번역으로 여성운동은 너무 쓸데 없는 곳에 역량을 쏟아야 했다. ‘여성혐오’로 번역되면서 ‘남성혐오’가 등장했다. 여혐과 남혐을 대칭적으로 받아들이는 문제를 불렀다.”

 온라인상에서 가장 ‘핫(hot)’한 단어가 돼버린 ‘여성혐오’. 사회적 맥락을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한국 사회의 민낯이 슬쩍 모습을 드러낸다. 여성학자 정희진 씨가 미소지니와 여성혐오에 대한 생각들을 풀어냈다. 광주시 주최, 광주전남여성단체연합 주관으로 6일 오후 3시 광주시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2016 성평등문화제 ‘페미? 케미!’에서 ‘미소지니, 가장 오래된 문명’이란 주제로 이뤄진 강연에서 정 씨는 뿌리깊은 여성 혐오의 역사와 여성주의가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풀어냈다.

 우선 ‘미소지니’ 즉 ‘여성혐오’에 맞서 등장한 ‘남성혐오’와 이를 둘러싼 격렬한 충돌에 대해 정 씨는 “여성 혐오란 것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대칭적 의미로 ‘남성혐오’가 등장하면서 이를 둘러싼 이분법적 사고와 남성들의 분노에 대응해야 하는 일이 벌어지면서 쓸데없는 시달림을 받았다”고 언급했다.

 

“흑인운동이 ‘백인혐오’는 아니잖는가”  

 “영어 미소지니(misogyny)는 부정적 의미의 접두사 ‘mis~’와 여성을 뜻하는 ‘gyn’의 합성어다. 영어권에서 “싫다”를 뜻하는 다른 표현으로 hate, disgust 등이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여성학자 우에노 지즈코의 책 ‘여성을 싫어하는 일본의 미소지니’가 ‘여성혐오를 혐오한다’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된 것은 유감이다. 일본에서는 영어 그대로 ‘미소지니’라고 쓴다.”

 아쉬움과는 별개로 ‘여혐’vs‘남혐’의 프레임에 대해 정 씨는 “흑인운동은 그럼 ‘백인혐오’인가?” 묻는다. 노동자와 자본가가 대칭적이 아니듯, 흑인과 백인이 대칭적이지 않듯 여혐과 남혐도 그렇다는 것.

 “여성혐오는 늘 있어왔다. 남편의 구타와 폭력으로 살해되는 여성들이 하루에만 10~15명이다. 특히 성산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은 범죄의 타게팅 집단이다. 아주 오래전엔 말할 것도 없다. 플라톤 역시 다양한 여성비하 발언을 했다. 더 거스르면 아담과 이브, 뱀에서도 여성혐오가 나타난다. 여성혐오 없이 오늘날의 문명은 불가능하다. 여성혐오가 새롭게 등장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한국남성 대부분의 사고방식은 남성과 여성이 동등해졌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는 성차별이 없다고 생각하거나 여성이 오히려 상위에 있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메갈리아 같은 예를 들면서 남성들이 오히려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가해자가 피해자인 줄 착각하는 것이다.”

 정 씨는 ‘여성혐오’가 가시적으로 등장한 것은 ‘온라인 산업’의 결과로 본다.

 

 여성혐오 가시적 등장은 ‘온라인’ 환경 

 “여혐은 원래 있었지만 ‘온라인’으로 인해 여성들이 문제제기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만들어졌다. 면대 면이나 공적인 자리에서 ‘혐오’는 등장하기 어렵다. ‘온라인’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일베를 보면, 일베들이 주로 싫어하고 혐오발언을 하는 대상은 우성 여성들이고, 전라도, 장애인, 동성애자, 이주노동자 등이다. 비국민을 솎아내자는 거다. 여기에 대응할 수 있는 당사자들이 어디일까“ 우선 이주노동자들은 여기에 저항하기 어렵다. 사회문화적 조건이 어렵다. 동성애자·장애인 역시 마찬가지다. 가능성은 전라도 사람들인데, 전라도 차별은 복잡한 것들이 얽혀 있어 ‘내전’의 가능성까지 있다. 전라도 사람 본인들이 문제제기 할 수가 없다. 너무 많은 것들을 감수해야한다. 양심적 경상도 지식인들이 제기해야 가능하다. 그렇다면 제일 가능한 집단은 여성이다. 그 규모가 크고 교육 수준도 높다. 그렇게 해서 여성들의 일베에 대한 공격이 등장한다. ‘내가 당하는 건 참을 수 없다’는 새로운 여성 집단들이 등장한 것이다. 80만으로 추정되는 일베에도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여성들도 있다. 3만으로 추정되는 메갈리아도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디지털 원주민들이다. 일베와 메갈이라는 온라인 젠더 전쟁이 벌어졌다. 이를 신문 같은 매체들이 보도하기 시작하면서 ‘미소지니’나 ‘여험’이 전면에 등장한다.”

 정 씨는 한국과 같은 상황에선 여성주의가 ‘양성평등’을 구호로 삼는 것을 반대한다.

 “저의 세대 여성운동은 양성평등을 요구했다. 그러나 양성평등이 여성운동의 구호가 돼선 얻을 것이 없다. 우선 여성과 남성이라는 구분도 옳지 않다. 여성과 남성이 아닌 동성애 같은 다양한 젠더들을 품을 수 없다. 성별들 간의 평등이지 양성평등이 아니다. 여성운동이 진행되는 동안 우리 사회는 군사적·정치적으로 너무 많이 변했다. 원자력발전소나 핵 같은, 인간이 통제하기 어려운 지경이 됐다. 맑시스트들이 묵시론자가 된 상태다. 여성주의 역시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 생태문제나 오늘날의 지나친 발전주의 성장주의 같은 것들을 고민해야 한다. 평화운동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서 모병제 같은 것들로 논쟁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여성주의의 목표는 양성평등이 아니라 책임감으로 전환돼야 한다.”

황해윤 기자 nabi@gjdream.com

[드림 콕!]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광주드림을 구독하세요

저작권자 © 광주드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