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단 기간 최대 피해…닭·오리 씨 말리고도 종식 못시켜
“쉽다고 살처분…한국 축산선진국 아냐, 백신 등 고민해야”

▲ 광주 북구 생용동에 설치된 AI·구제역 거점 방제초소.
 “충분한 조건만 갖춰진다면 살처분이 전염병 차단의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현실을 보라. AI가 어디서 어떻게 생겨났는지 역학조사를 통해 제대로 규명도 못했고, 방역에 필요한 예산·인력도 충분히 뒷받침이 안 된다. ‘선진국 정책’이라고 살처분을 하는데도 미국, 유렵과 달리 AI를 초기에 잡지 못하는 이유다. 더 망설일 이유도 없다. 이번 최악의 AI사태로 드러나지 않았나. 관습화된 살처분 만으론 안 된다. AI백신 등 대안을 당장 도입해야 한다.”

 지난해 11월16일부터 시작된 AI(조류인플루엔자·Avian Influenza)사태가 아직도 종식되지 않고 있다. AI발생 밀집도가 높은 수도권은 의심신고가 줄어들며 어느 정도 진정세를 보이고 있으나 전남·전북 등에선 아직도 AI와의 전쟁이 한창이다.

 4일 나주·영암지역 닭·오리 농가 전수조사 결과 나주 한 육용오리 농장에서 추가로 AI가 확인돼 방영당국에 비상이 걸린 것. 전남도는 이날 이 농장에서 사육 중인 오리 2만6300만 마리를 살처분했다.

 

▲동시 다발 땐 살처분만으론 의미없어

 5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4일 자정 기준으로 살처분 된 닭·오리 숫자는 3054만 마리에 달한다.

 AI가 처음으로 발생한 2003년 이후 가장 큰 피해 규모다. 이전에는 2014~2015년 살처분 수가 1397만 마리로 가장 많았다. 이때 AI 발생 기간은 669일로, 가장 AI 확산이 활발한 200여 일 동안 대부분이 살처분됐다.

 그런데 이번에는 60여 일도 안 돼 3000만 마리 이상을 살처분했다. 최단기간, 최대 피해를 기록한 ‘최악의 AI’다.

 발생 초기 정부의 늑장 대응이 화를 키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히지만, 이미 AI가 확산 일로에 접어든 상황에서 ‘뒤늦은 살처분’만 고집하는 정부의 대응 방침에 대한 문제제기가 잇따르고 있다.

 수의사 A씨는 “지금 정부의 조치 방식은 AI 발생 지역에 ‘폭탄’ 하나를 떨어뜨려 ‘싹쓸이’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며 “이미 동시 다발적으로 AI가 발생했다면 살처분만으론 의미가 없음에도 정부가 다른 대안을 가지고 있지 못한 탓에 너무나 많은 수의 닭, 오리를 죽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AI 발생 장소로부터 반경 500m는 ‘관리’구역, 반경 3km는 ‘보호’구역, 반경 10km는 ‘예찰’구역으로 지정해 대응토록 하고 있다.

 A씨는 “대부분 지역에서 관리구역은 물론 보호구역까지 예방적 살처분이 아무렇지도 않게 이뤄지고 있다”며 “이는 닭·오리의 생명권을 무시한 매우 잔인한 방법이다”고 꼬집었다.

 이에 맹목적인 살처분에서 벗어나 AI백신 도입 등 다른 대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국도 살처분, 그러나 사육 환경이 달라

 미국·유럽·일본 등 소위 ‘선진국’에선 AI가 발생하면 살처분을 원칙으로 대응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를 따라가는 건데, 차이가 있다. 전남대 수의과학대학의 한 교수는 “밀실, 공장식 사육이 주를 이루는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유럽 등은 사육환경이 좋고, 전문 인력이나 관련 예산 지원이 적극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이에 미국 등에선 대부분 초기에 확산을 차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모든 면에서 조건이 열악하다”고 지적했다.

 다른 수의사 B씨는 “대응 원칙은 선진국인데 실제 시스템은 ‘후진국’이다”고 말했다. 그는 “살처분이 전염병을 막는데 가장 확실한 방법이긴 한데, 이게 효과를 보려면 발빠른 대응을 위한 체계가 잡혀 있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그렇지도 않고 대부분 밀집 사육을 하다보니 병이 퍼지는 것을 살처분이 따라가지 못하는 형국이다”며 “AI바이러스 감염 경로도 철새냐 아니냐를 놓고 추정만 하고 있을뿐 역학조사 하나 제대로 된 게 없다”고 꼬집었다.

 이어 “13년 넘는 AI와의 사투 끝, ‘온리(유일한) 살처분 정책’의 한계와 실패를 경험하고도 정부는 가장 손 쉽다는 이유로 또는 습관화로 인해 살처분만 고집하고 있다”며 “이제는 한계를 인정하고 다른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국내에서 가장 먼저 AI 연구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 충남대 서상희 교수는 “우리나라도 이제 AI 상시 발생국”임을 전제로 AI백신 도입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AI가 발생하더라도 확산되지 않도록 미리 ‘성벽’을 쌓자는 개념이다.

 중국, 베트남 등이 AI백신을 사용하고 있는 대표적인 국가인데, 일부에선 매년 발생하는 AI바이러스 유형이 다양하고, 백신으로 인해 오히려 바이러스 변이를 부추기거나 ‘토착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죽이지 않는 방법 있는데 다 죽이려고만 하나?

 이와 더불어 정부는 ‘AI청정국’ 지위 상실을 이유로 백신 사용을 망설이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닭·오리 등 가금류 수출국가가 아닌 수입국가다. ‘AI청정국’ 지위가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서 교수는 최근 ‘YTN 수도권 투데이’ 인터뷰에서 “백신을 아주 잘못된 것처럼 이야기하는데 지금 국내에서 백신 개발이 너무 쉽고, 중국이나 베트남에서 백신으로 인한 인체감염이 가능한 변종이 생긴 적이 없다”며 “백신을 제대로 접종만 하면 AI방어력을 상당한 수준으로 높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가금수의사회에서도 백신투입보다 살처분이 오히려 ‘비싼’ 정책임을 지적하며 살처분 외 다른 대안을 요구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윤종웅 한국가금수의사회 회장은 최근 ‘데일리벳’에 ‘AI특별기고’를 통해 “산란계는 단순한 살처분 보상금만 마리당 최소 1만 원 이상 소요되고, 백신은 마리당 200원이면 2회 이상 접종 가능하다”며 “죽이지 않고 닭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반드시 모두 죽여야 할까”라고 정부 대응 방침에 문제를 제기했다.

 A수의사도 “모든 가금류에 백신 투입이 어렵다면 비교적 확산이 잘 되는 오리나 산란계에만 백신을 사용해도 ‘폭발적인 반응’을 억눌러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면서 “앞으로도 AI때마다 수천만 마리의 닭, 오리를 죽일 게 아니라면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경남 기자 kkn@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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