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38주년 기념식서 ‘국민과 남편에게 보내는 편지’ 낭독

▲ 18일 광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8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한 고 찰스 헌트리 목사의 부인 마사 헌트리 여사(오른쪽에서 두 번째).
“광주는 이제 정의의 다른 이름이 되었어요.”

5·18민중항쟁 당시 광주시민들을 도우며 계엄군의 만행을 알리기 위해 애썼던 고 찰스 헌트리 목사의 부인 마사 헌트리 여사가 하늘에서 보고 있을 남편에게 전한 말이다.

헌트리 여사는 18일 광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8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해 ‘국민과 남편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했다.

그는 남편에 “우리는 지금 5·18 희생자, 생존자, 영혼들을 가리기 위해 위해 광주 국립5·18민주묘지에 모였다”며 “바로 어제 성스러운 양림동 성교사묘역에 당신의 유골을 안장했다”고 전했다.

헌트리 여사는 “우리 부부는 광주에 살았던 17년 동안, 특히 5·18 후에 광주시민들을 보면서 그들을 사랑했고, 그들에게 배움을 얻었고, 경탄의 마음을 가지게 됐다”며 “사랑하는 남편이 그의 사랑하는 친구, 제자들과 함께 한국 땅에 잠들게 됐다”고 말했다.

헌트리 여사는 “여보, 당신이 사랑한 친구, 제자들이 얼마나 자랑스럽습니까”라면서 “민주주의, 인간의 존엄과 가치, 광주와 대한민국을 위해 고통 받고 피흘리고 목숨을 잃은 제자들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결국 그들의 염원을 이뤄주셨다”고 말했다.

그는 38년 전 헌트리 목사와 광주에 머물며 목격한 참혹한 현장을 떠올리며 “제가 본 광주는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참혹함 그 자체였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광주시민들의 인간애는 너무나도 뜨거웠다”며 “헌헐하러 찾아오는 시민들을 ‘너무 많은 피를 나눠줘서는 안 된다’며 말려야 할 지경이었다”고 당시 추억을 떠올리기도 했다.

미발표된 헌트리 목사의 회고록 중 마지막 부분에 써있는 “한국에서 보낸 20년을 되돌아보며 다른 문화의 사람들과 그들의 언어로 가슴 깊은 대화를 나누고 우리의 사랑을 표현하고 하나님의 사랑도 전할 수 있었던 마법과도 같은 순간들, 절대 잊을 수 없는 순간들이었습니다. 우리는 한국에 대한 사랑, 한국인에 대한 사랑을 항상 간직하고 있습니다”라는 글귀를 기념식에 참석한 이들과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에 전하기도 했다.

헌트리 여사는 “당신(헌트리 목사)은 마지막 순간, ‘광주에 가고 싶다’ ‘광주에 묻히고 싶다’고 했다”며 “그 사랑했던 광주는 이제 정의의 다른 이름이 됐다. 당신의 말이 맞았다”고 편지 낭독을 마무리한 뒤 한국말로 “여러분 너무나 사랑합니다”라고 말했다.

헌트리 목사는 80년 5월 당시 광주기독병원 원목으로 사역하면서 시민들이 죽고, 다친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계엄군의 만행을 세상에 알렸다.

지난해 6월 오월어머니상을 수상한 그는 얼마 뒤인 6월29일 타계했다.

헌트리 목사 유족은 눈을 감기 전 “광주에 묻히고 싶다”고 한 헌트리 목사의 뜻에 따라 그의 유해 일부를 지난 17일 남구 양림동산 선교묘원에서 안장했다.
강경남 기자 kkn@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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