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외국인, 이주노동자들과 돕고 살아요”
청년일경험드림 사업 참여 후
스리랑카 쓰나미 피해지역 활동

▲ 스리랑카 청소년과 이난희 청년(오른쪽).
 청년드림사업, 광주에서 시작해 정부의 지역주도형 청년사업으로 확대되고 있는 우리 지역 대표 청년정책이다. 2018년 하반기, 어느덧 4기 청년들의 일 경험도 무르익고 있는데, 그간 드림사업을 통해서 자기 모색과 진로 탐색의 시간을 보낸 청년들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자기 소개를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작년 9월부터 12월까지 청년일경험드림 2기 청년활동형에서 일경험을 한 이난희입니다. 일경험이 끝난 후, 지금은 월드프렌즈 NGO봉사단을 통해 스리랑카 모라투와 YMCA에서 국제자원활동울 하고 있는데요. 짧았지만 아직도 생생한 저의 경험이 어떠했고, 또 그 후 스리랑카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짧게나마 나눠보려고 합니다.
 
 -청년드림을 통해서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만나게 되었다구요?

 △네. 제가 근무했던 유니버설 문화원은 이주노동자, 이주민, 유학생들을 위한, 비교적 규모가 작은 비영리 단체였습니다. 인도 출신 원장님과, 사무국장님 두 분이서 운영하고 계셨기에 인턴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비교적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문화교류 프로그램 행사 보조, 문화원 홍포 팜플렛 영문판 제작, 영어교실 운영 등의 일을 하면서 문서 작업부터 외국인들과 직접 연락하고 행사를 준비하는 일까지 다방면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평소 국제개발협력에 관심이 많았고, 그 분야로 진로를 알아보고 있었기에 문화원에서의 일 경험은 특별했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이 무엇보다도 큰 장점이었습니다.
 
 -특히 일경험 중에 기억에 남는 일들이 있나요?

 △동·서남아시아 나라 사람 등 평소 생활 반경에서 마주칠 수 없었던 이주노동자분들과 유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다는 점. 외롭고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외국인들에게 여러 방면으로 도움을 주시는 분들 또한 만날 수 있었던 점이 기억에 남습니다. 특히 병원에 갈 수 없어 아픈 것을 꾹 참고 있는 사람들을 무료로 진료해주시는 의사선생님, 법률관련 문제를 상담해주시는 선생님, 이주민의 삶에 관심을 가져주신 기자님, 음식을 후원해주셨던 분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분들은 평범한 동네 아주머니들이셨는데요,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부분에서 알게 모르게 도움을 주시고 사라지시는 분들을 보며 스스로 반성도 많이 했었습니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데 일조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그래서 국제개발협력분야에서 일할 것이라며 큰소리만 떵떵 쳤던 제 자신이 부끄러웠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개발프로젝트와 같은 거창한 일로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순수한 마음들이 모여 나아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어떤 큰 일이 아니라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작은 손길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관심을 가지는 것부터가 먼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세상은 평범한 사람들의 순수한 열정으로 진보”
 
 -난희 씨처럼 일경험을 마치고 바로 자신의 적성을 찾아 먼 곳으로 떠날 계획까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문화원 행사에 자주 참여했던 인도, 방글라데시·파키스탄에서 온 언니들을 만났던 것이 제겐 큰 즐거움이고 고민과 결심을 하는데 도움을 주었어요. 삼십을 바라보는 그녀들은 대학원에서 IT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한국보다 경직된 각국의 사회 분위기 속에서 자기의 꿈을 위해 남들과는 다른 삶을 개척하고 있는 언니들을 보고 자극을 받은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외국인들과 이야기 하다보면 이십대 중반이라는 나이가 여전히 젊고 가능성이 많은 나이, 이것저것 해 볼 수 있는 시기라는 것을 느꼈기에 당시에는 새로운 무언가를 향해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일경험 사업을 한 달가량 남겨두고 2018년 계획을 그리던 중, 도전하기에 충분히 젊은 나이다, 감수성을 키워오자, 시야를 넓히고 오자 해서 선택한 길이 1년 장기 국제자원활동이었습니다. 이런 큰 결정을 하게 된 데에는 드림사업이 큰 계기가 되었어요. 올해 3월에 입국해서 벌써 이곳에 11월을 맞이했는데요. 이제는 손으로 밥 먹는 것이 더 익숙하고, 스리랑카어도 곧 잘해 현지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기도 하지만 여전히 더위에는 영 익숙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하하)

 
 -스리랑카 생활 어떻게 보내고 있어요?

 △저는 지금 다른 한 명의 여자단원과 함께 살며, 그 동안 모라투와 YMCA에서 쓰나미 피해를 입은 지역 아이들을 포함해 다양한 아이들을 만나며 활동하고 있습니다. 스리랑카는 믿기지 않으시겠지만 한국보다 더한 사교육 열풍이 불고 있는 나라입니다. 일반 중산층 아이들은 보통 3~4개의 사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자기 몸보다 더 큰 책가방을 메고 다니는 꼬마아이들을 보면 여기가 한국인지 스리랑카인지 헷갈릴 정도입니다.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학교에 들어가 (돈을 많이 주는) 좋은 직장에서 일을 해라’ 라는 정형화된 인생 설계도 한국과 비슷합니다. 한편으론 경제적 빈부격차가 굉장히 큰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바다와 강 근처엔 판잣집들이 빽빽이 들어서있는데, 여기엔 내륙 쪽으로 갈수록 비싼 집값을 감당하지 못해 바다 근처로 밀려난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2004년 큰 쓰나미가 스리랑카를 덮쳤을 때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지역도 이 곳이었습니다. 어른들은 현실이 너무 버거워 마약과 술에 의존하고, 그 곁의 아이들은 부모님의 무관심 속에 방치되어, 학교도 잘 결석하며 살고 있는 안타까운 실정입니다.
 
 -그곳도 그곳 사회 나름의 모순과 문제를 가지고 있겠죠. 아이들을 만나면서 난희 씨의 고민들도 커져가고 있겠어요?

 △네, 아무래도 한 지역 안의 부유한 아이들, 빈곤한 아이들을 모두 만나며, 말도 서투른 외국인일 뿐인 내가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좋은 영향력을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이 들 때가 많습니다. 모라투와의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길 바라는데, 행복한 삶은 어떤 것인가. 단순히 경제적인 부분으로 재단하듯이 선 그을 수 있는 행복이 아니라, 다양한 각자의 꿈을 그릴 수 있고, 이룰 수 있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질문도 많이 듭니다. 때로는 하루하루 현실에 온몸으로 부딪히고 있는 그들에게 가능성과 기회를 이야기 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어쩌면 저에게 있어서도 도전이고 생각보다 큰 용기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스스로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볼 때면, 기대되고 설레는 마음이 아니라 두렵고 막막한 것이 더 크고, 현실이 그러니까, 현실적으로 불가능 하니까… 하는 말도 많이 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살다가 왔는데 이곳에서 아이들을 보니 머리가 잠시 멍해졌달까요. 꿈꾸기 어려울 거라고, 불가능 할 거라고 스스로에게 말해왔었던 그 모진 말들을 어떻게 아이들에게 할 수 있을까 하구요. 아이들이 저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한 명, 한 명 소중한 아이들이, 각자의 삶을 열심히 또 멋있게 살아가길 도와주고 싶습니다.

 
▲“부족하지만 하루하루 점, 근사한 그림 꿈꿔” 
 
 -정말 고민 많은 시간 보내고 있네요.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하고 있어요?

 △지난 3개월 동안 아이들과, 지역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스리랑카어를 익힌 것을 바탕으로 6월부터는 자그마한 수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아이들과 함께 자신의 꿈을 찾아보고, 서로를 응원하고 격려하며,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넓혀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고 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힘이 될 자양분을 함께 키워보고 아이들과 함께 답을 찾아가려 합니다. 아직 부족한 점이 많지만 하루하루 점을 찍어 나가보면 근사한 그림이 그려지리라 소망하면서요.
 
 -끝으로 광주청년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 있나요?

 △제가 이렇게 말해도 되나 싶지만,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이주노동자분들을 보신다면 잘 대해주시길 부탁드린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스리랑카에서 외국인으로 살고 있으니 가족·친구들이 보고 싶고 한국음식도 그립고, 외로울 때가 많은데요, 저는 고작 이제 막 몇 개월을 살고 있고 봉사자의 신분으로 살고 있어 비교적 덜 힘들지만 광주에 사는 외국인들, 특히 이주노동자분들은 말도 못하게 외롭고 고단할 것 같습니다. 겉모습이 우리와 다르기 때문에 괜한 편견에 무섭다 생각들 수 있지만, 실은 다들 고향에 있는 부모님들과 동생들을 위해, 배우기도 어려운 한국어 공부해서 어렵사리 여러 시험에 통과한 끝에 한국에 온 대단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일이란 게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고, 갑자기 어디서 살게 될 줄 모르니(저처럼) 서로 돕고 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나중엔 생각지도 못하던 상황에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정말 정말 마지막으로 광주에 있는 청년 여러분들 모두 힘내시길 바랍니다!
 우린 다 예쁘고 잘생겼으니까 잘 될거에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스리랑카에서 띄운 글. 끝!
 
▶이난희 청년을 만나는 방법

이메일 happ123@naver.com

카카오톡 아이디 happ123@naver.com

문정은 <광주청년센터 더숲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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