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아인협회 지난달 21년만에 폐쇄 결정
통역서비스 공백, 통역사들 고용승계 대두

▲ 서구 양동에 있는 한국농아인협회 광주시협회 부설 광주시 수어통역센터. 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한국농아인협회가 지난 10월15일 폐쇄를 의결, 설립 21년 만에 문을 닫게 됐다.
 청각장애인과 언어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통역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광주시 수어통역센터(광주수어통역센터)가 문을 닫게 됐다. 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사단법인 한국농아인협회가 내부 갈등으로 정상적인 운영이 어렵다고 판단, 폐쇄를 결정한 것. 이에 따라 수어통역서비스 공백이 우려되고 있는 가운데, 센터에서 일해온 수어통역사들도 일자리를 잃게될 처지다.

 12일 광주시·사단법인 한국농아인협회 광주시협회에 따르면, 지난 10월15일 한국농아인협회가 광주수어통역센터(서구 양동) 폐쇄를 의결했다.

 광주수어통역센터는 1998년 광주시협회 부설로 설립돼 지역 청각장애인, 언어장애인들에게 필요한 수어통역서비스를 제공해 왔다.

 일상 생활은 물론 경찰 조사나 재판, 각종 행사나 토론회 등 농아인들의 의사소통을 위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찾아가 도움을 줬다.

 광주에서 이런 기능을 하는 곳은 광주수어통역센터가 사실상 유일했는데, 폐쇄가 결정되면서 농아인들을 위한 통역서비스도 중단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센터에서 일해온 수어통역사들도 갑자기 설 곳을 잃을 상황이다.

 광주수어통역센터는 총 정원이 21명인데, 청각장애인 통역사 4명, 수어통역사 10명 등 14명이 일하고 있다. 센터장을 포함한 7명이 결원 상태다.

 센터가 갑자기 폐쇄되는 이유는 내부 갈등이 가장 큰 이유다.
 
▲농아인협회-노조 갈등서 촉발
 
 지난해 광주수어통역센터 내에서 집단폭행 사건이 불거지면서 9명의 센터 수어통역사들이 소속된 민주노총 공공연대 광주수어통역센터분회(이하 수어통역센터 노조)는 센터장을 비롯한 현 집행부 파면을 요구하는 대응에 나섰다.

 광주시 장애인복지과는 시 감사위원회에 비위 여부에 대한 감사를 의뢰, 시 감사위원회는 지난해 11월28일부터 12월7일까지 협회와 광주수어통역센터에 대한 특정감사를 실시했다.

 이를 통해 지난 1월 센터장과 사무처장 채용 부적정 등 11건의 위반사항을 적발, 채용 시 자격기준에 미달한 자는 해임 조치토록하고, 부당하게 수령한 수당 등 995만6000원은 환수토록 통보했다.

 그러자 한국농아인협회 광주시협회가 ‘편파 감사’라고 강력 반발, 광주시청 앞에서 장기간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이후로도 센터 운영주체인 광주시협회와 노조간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그리고 이게 21년만에 광주수어통역센터를 폐쇄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말았다.
광주수어통역센터 노조가 지난해 발생한 집단폭행 사건과 관련해 센터장, 사무처장 등의 파면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민주노총 공공연대 광주수어통역센터분회 제공>

 광주시협회는 “노조의 파업 등으로 농아인들이 통역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등 노조로 인해 센터의 정상적인 운영이 어려워졌다”며 “노조가 주장한 집단폭행 사주에 대해 센터장이 무죄라고 나왔지만, 이후에도 노조가 전혀 소통 창구를 열어주지도 않았다. 이에 중앙회에서 폐쇄를 결정하게 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수어통역센터 노조는 오히려 “통역이 필요한 농아인이라면 누구에게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우리 일임에도 집행부 입맛에 따라 통역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는 등 공정하지 못한 일들이 비일비재했다”며 “센터가 협회 산하에 있다보니 행사 등에 동원돼 제 기능을 하기 어려운 때도 많았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는 수어통역센터의 공정성, 공공성 확보를 요구해 온 것이다”며 “그런데 광주시 감사위원회 감사로 센터장, 사무처장 등이 해임되자 그에 대한 ‘보복’으로 센터를 폐쇄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폐쇄 결정 후 광주시협회는 최근 서구에 폐쇄 신고서를 접수, 관련 절차를 밟고 있다.

 이에 따라 앞으로 3개월 정도면 광주수어통역센터가 완전히 문을 닫게 될 것으로 보인다.
광주시 감사위원회가 지난 1월 발표한 한국농아인협회 광주시협회, 광주수어통역센터에 대한 특정감사 결과에 대해 반발한 협회 측이 광주시청 앞에서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는 모습.
 
▲광주시 “실제 폐쇄전 대안 마련 노력”
 
 이대로 센터가 폐쇄되면 설 곳을 잃는 수어통역센터 노조는 수어통역사들의 고용 승계를 통해 서비스가 지속될 수 있도록 해줄 것을 광주시에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광주시협회는 “센터 폐쇄에 따른 서비스 지속 방안 등은 광주시협회와 광주시가 논의할 사안이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 광주시협회는 최근 광주시의회에 농아인 쉼터 마련을 통해 거점별로 통역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안 마련을 요구한 상태다. 센터 폐쇄가 사실상 노조와의 ‘이별’을 위한 조치로도 해석되는 이유다.

 실제 광주시협회측 관계자는 “광주시가 노조의 고용승계를 책임질 의무가 없다”며 “센터 폐쇄 후에도 농아인들의 불편이 최소화될 수 있게 자체적으로 통역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대체 통역사들을 확보하고 있다. 농아인들의 불편을 최소화하겠다”고 밝혔다.

 노조 측은 “이번 폐쇄 결정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한국농아인협회에 되묻고 싶다”며 “농아인 인권 신장, 권리 보장을 위한 역할을 해야 할 협회가 정작 농아인들의 ‘서비스 권리’ 문제 마저 폐쇄한 것이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광주시는 “어떤 경우에도 수어통역서비스가 중단되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며 지역 장애인복지시설 등과 대안 모색에 나서긴 했지만, 광주시협회와 노조간 대치 상황에서 마땅히 손을 쓰기 어려운 상황이다.

 시 관계자는 “수어통역서비스가 끊기지 않게 다양한 방안들을 고민하고 있지만 양측의 요구와 주장이 달라 어려움이 있다”며 “실제 센터가 폐쇄되기까진 아직 시간이 있는만큼 그때까지 대안이 마련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강경남 기자 kkn@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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