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가마을 은행나무 축제, 주민과 함께 준비

▲ 청소년들이 준비해 만든 신가마을 은행나무 축제.<광산구청 제공>
 캐나다 구겐하임연구소 도시 연구원인 찰스 몽고메리의 연구에 따르면 대형 상가 근처에 사는 노인들이 다양하고 작은 상점이 많이 모인 곳의 노인들보다 노화 속도가 빠르다고 한다. 이 점은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유현준 교수가 말한 ‘이벤트 밀도’를 통해 해명할 수 있다. 거리를 걸으며 우리는 특정 가게에 들어갈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 다음 가게에서도 이는 마찬가지이다. 만일 그 거리에 n개만큼의 가게가 있다면 이때의 이벤트 밀도는 2n이 될 것이다. 그러니 대형상가가 있는 대로변은 작은 가게들이 즐비한 골목에 비해 이벤트 밀도가 현저하게 낮아질 수밖에 없다. 지겹고 따분한 거리가 노인들의 노화속도조차 빨라지게 하는 것이다.
 
▲이벤트 있는 거리가 삶에 미치는 영향
 
 유현준 교수에 따르면 단위거리당 상점의 출입구 숫자가 많다는 것은 다음의 세 가지 의미를 가진다. 첫째, 이벤트 밀도가 높은 거리는 보행자에게 권력을 이양한다. 우리가 매일 눈 뜨고, 일어나, 먹고, 마시고, 이야기하고, 일하는 모든 것이 하나하나의 이벤트가 되어서 우리 삶을, 혹은 세상을 결정한다. 어느 길을 걸어 친구를 어디서 만날 것인가 하는 매일의 의사결정이 모여서 우리가 만든 그날의 세상(a world)이 구성된다면, 이벤트 밀도가 높은 거리는 그만큼 우리에게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한다. 둘째, 이벤트 밀도가 높은 거리는 보행자에게 다양한 변화의 체험을 제공한다. 셋째, 높은 이벤트 밀도의 거리는 매번 같은 거리를 가더라도 방문할 때마다 새로운 체험의 가능성을 높여준다. 이렇게 이벤트 밀도는 그 거리가 보행자에게 얼마나 다양한 체험과 삶의 주도권을 제공할 수 있는가를 정량적으로 보여주는 척도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거리의 이벤트 밀도를 높게 만드는 것이 시민들에게 더 많은 권리를 보장하는 일이 될 것이다.
 
 세탁기가 없고 집집마다 빨래를 내어말리던 때는 집집마다 걸린 형형색색의 빨랫감도 하나의 이벤트였다. 거리와 골목이 ‘걷기 위한’ 공간을 뿐만 아니라 지나가던 사람들이 잠시 걸음을 멈추고 잡담을 나누던 공간일 때에도 매일 이벤트가 달라졌다. 하지만 아기자기한 집들을 불도저로 갈아엎은 뒤 들어선 아파트들은 이런 이벤트들을 없애버렸다. 아파트 베란다에 내걸린 옷가지들은 부끄러운 사생활의 노출로 생각돼 꼭꼭 감추어지고, 반바지에 런닝셔츠 차림으로 골목을 걷던 아저씨들도 경로당에서 점잖게 자리를 잡고 계신다. 조그만 화분 하나 내놓을 여유가 없는 도시에서, 갖가지 부스가 펼쳐지는 벼룩시장이나 마을 축제는 잃어버린 삶의 활력을 되찾게 해주는 좋은 기회이다.
 
▲마을 이곳저곳 학교를 위한 배움터로
 
 여기저기서 마을축제가 열리고 삶의 여유를 찾으려는 노력이 늘어나고는 있지만, 아직은 정부나 기업의 지원을 받은 NGO들이 그들의 사업을 대행하는 성격이 짙다.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이루어지기보다는 전시행정을 위해 부스에 참여하는 단체들에게 수만원의 돈을 지급하며 마을의 자생력을 갉아먹는 경우도 많다. 정부의 지원을 받는 축제의 부스 프로그램처럼 놀이가 확산되는 것은 곤란하다. 놀이는 이웃의 사랑을 확인하는 주민들의 자발적 연대운동이 되고, 축제는 주민들이 도시의 주인으로 다시 서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신가마을에서는 은행나무축제를 준비하며 주민들과 70여 개의 가로수 아래를 화단으로 만들었다. 청소년들은 석회와 카제인을 섞은 천연 페인트를 만들어 벽화를 그렸다. 축제날에는 PVC흄관으로 미끄럼틀을 만들고 팔레트를 재활용해 아지트를 만드는 등, 아이들을 위한 팝업놀이터를 청소년들이 직접 만들기로 했다.
 
 아이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마을에서 자라기를 바란다면, 아이들 스스로 마을과 도시를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게 제일 좋다. 아이들이 학교의 담장 밖으로 나와 마을로 흘러들어가고, 또 마을의 주민들이 학교로 흘러들어갈 때, 학교가 지역주민들 모두를 위한 공간이 되고 마을의 이곳저곳이 학교를 위한 배움터가 되면서 그러한 흐름이 학교라는 공간을 살아 숨쉬게 할 것이다.
하정호 <청소년플랫폼 마당집 마당쇠>

[드림 콕!]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광주드림을 구독하세요

저작권자 © 광주드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