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행사 관람 수업 결손
과목마다 과제 내준 학교
▲디자인비엔날레 관람 학생의 4과목 숙제
광주지역의 대부분의 학생들은 비엔날레와 디자인비엔날레를 학교를 통해 단체로 관람한다. 매년 세계적인 규모의 전시를 본다는 것은 행운일까“ 고통일까“ 개인적 동기가 충만해지기 전에 이루어진 관람. 그렇기 때문에 학생들의 관심도는 떨어질 가능성이 높고, 단체 관람이라고는 하지만 적지 않은 비용과 시간을 투자하는 학교나 교사의 입장에서는 충실한 관람을 위한 다른 동기를 부여해야할 압박을 느낀다. 학교의 모든 행위를 교육적으로 가치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은 결국 교육의 질을 떨어뜨리는 어거지가 된다. 전시 관람 뿐 아니라 교사와 학생 간에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동기 결여의 학생들에게 어떻게 충실히 과업을 부여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학생들은 시험과 과제 모두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기 일쑤이고 학교에서 수행하는 행위에 충실히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럴수록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증거를 요구한다. 최소한의 충실함을 증명하는.
하지만 교육은 증거를 통해 매개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 활동과 교육의 내용 사이의 괴리가 이루어진다. 어떤 미술평론가도 수행할 수 없는 과업이 학생들에게는 모순적으로 주어지고 이 모순 속에서 학생들은 겨우 과업을 수행한다. 그리고 그 내용에 대해 부정적인 인상을 내면적으로 간직하게 되는 악순환이 이루어진다. 이 악순환에서 탈출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교육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가르치는 혹은 활동하는 모든 것이 간직되기를 원하는 마음을 벗어나야 한다.
교육은 매번 그 각각의 내용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관계와 형식으로 부터 출발한다. 전시 관람은 전시 관람이 최우선 과제가 되어야 한다. 살면서 자의든 타의든 수많은 전시를 관람하지만 어떤 전시가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는 어렵다. 그것을 인정해야한다. 어떤 전시를 오랫동안 간직한다는 것이 어렵다. 전시 뿐 아니라 다른 영역도 마찬가지다. 행위에 대한 증거가 아니라 그 행위 자체가 간직되기란 어렵다.
▲ 전시 관람은, 관람이 최우선 과제돼야
인간의 대부분의 행위들은 잊혀진다. 또 그럴 권리를 가지고 있다. 보르헤스의 소설 ‘기억의 천재 푸네스’에서 주인고 푸네스는 모든 것을 기억하기 때문에 어제를 기억하기 위해 오늘 하루를 소비한다. 어쩌면 우리에게 망각이란 오늘을 혹은 미래를 살기 위한 필수적인 능력이다. 그러나 교육자들은 자신이 행한 모든 것이 기억되기를 바라고 또 그 기억을 통해 학생들이 자신들처럼 복제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쉽게 사로잡힌다. 그것이 불가능한 것임을 이미 알고 있음에도 외면한다.
학생의 망각을 두려워하고, 이 망각을 다양한 과업 속에서 금기시한다. 왜냐하면 학생의 망각은 곧 자신의 행위에 대한 부정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확인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확인을 위한 장치들이 많아질수록 행위에 제약을 받는다. 혹시 만나게 될지 모르는 위대한 기억을 방해하는 작은 기억을 위한 장치들이 작동한다. 교육 행위는 결국 동기 부여로 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동기 부여로 완성된다. 모든 종류의 공부는 독학을 통해서만 완성되지만 그 스스로의 독학은 자신만이 점검할 수 있다. 공부는 어떤 것을 알거나 짐작하는 것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자신이 안다는 사실을 재인하는 과정을 통해 완성될 수 있고, 지속된 공부에 대한 동력은 그 행위 자체를 사랑하는 것으로만 가능하다. 그리고 그 사랑은 증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교육은 불완전한 행위의 연속일 뿐이다.
강경필 <광주교육연구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