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곱씹는 ‘책’, 인생의 교과서로 남길
교원연수 통해 ‘학교 안 문맹자들’에 눈 떠

▲ 온작품읽기 연계활동으로 직접 윤상원 열사를 연기하는 4학년 학생들.
 ‘광주의 역사적 인물’을 공부하는 수업시간. 학생들은 윤상원 열사가 되어 민주주의를 외치고, 허백련 화백의 수묵화에 도전했다. 인물에 대한 사전조사는 필수였다. 그리고 그보다 먼저, 인물에 대해 궁금하게 만든 한 권의 책이 있었다.

 지난 18일 광주풍향초에선 책과 관련한 교육활동이 활발하게 진행되는 중이었다. 이날은 5·18 교육주간을 맞아 중간놀이 시간 강당에서 벌어진 체험코너를 비롯해 수업시간에도 학생들이 직접 기획하고 참여한 활동이 주를 이뤘다.

 특히 3, 4학년이 함께 어우러진 ‘학년 간 연계활동’으로 광주의 역사적 인물을 다룬 대목은 인상적이었다. 각 반별로 조를 이뤄 4학년 선배들이 준비한 연극, 수묵화 체험, 퀴즈 등을 3학년 후배들과 공유하는 자리였다.

 이날 학생들의 활동은 교과서가 아닌, ‘길 이름으로 광주를 보다’라는 책에서 비롯됐다. 4학년 사회 2단원을 중심으로 교육과정 재구성을 추진하며, 광주 도로명주소와 관련된 인물들이 소개된 책을 접하게 된 것이 계기다. 사회뿐 아니라 국어, 도덕, 미술 과목과 연계해 답사, 작품제작 등 활동 영역은 확장되고 있다.
 
▲“많이 읽기보다 깊이 읽기 지도”…교과연계
 
 빛고을 혁신학교 6년째인 광주풍향초(광주광역시 북구 군왕로)는 교육과정 재구성의 뼈대를 ‘온작품읽기’로 세우고 살을 붙여가는 중이다. 지난해 혁신학교 2기로 재지정 되면서 본격적으로 ‘주제중심’보다 ‘온작품’을 통한 교육과정 재편이 이뤄지고 있다.

 온작품읽기는 원본 글에서 쪼개져 나온 일부만 읽는 게 아닌, ‘작품 전체’를 파고들면서 깊이 읽는 것’을 뜻한다. 교과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매번 소화하기도 힘든 글을 다수 읽다보면, 기능적이고 단편적인 배움에 그치기 십상이다.

복도에 전시된 책들을 살펴보는 학생들.

 때문에 하나의 작품이라도 제대로 읽고, 그 작품 안팎에서 배움을 확장하는 방법이 선호되는 추세다. 2015년 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학교 현장에선 이미 ‘1학기 1권 책읽기’가 추진 중이다. 올해부턴 초등 3학년에서 고교 1학년까지 교과별로 1학기 1권 책읽기 수업이 실시됐다.

 그런데 풍향초의 경우엔 책 1권에 그치지 않는다. 학년 초 학기당 10여 권의 책 목록을 정해 교육과정에 녹여내는 방식으로 일 년 내내 책과 함께한다. 책을 온전히 소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만, 교육과정에 따라 필요한 부분을 집어내 차용하기도 한다.

 “2년 전 혁신교육력제고의 일환으로 연수를 받으면서 학교 안 문맹자들에게 주목하게 됐어요. 글을 읽어도 내용을 이해하고 자기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문해력은 또 다른 문제더라고요. 다양한 체험학습, 이색적인 교육활동에 치중하느라 놓쳤을지 모를 ‘진짜 배움’을 되찾고 싶었어요.”

 혁신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광주풍향초 김수진 연구부장은 “온작품읽기를 통해 삶을 가꾸는 교육과정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교과서를 통해 배우는 지식만으로 온전한 이해를 담보하긴 어렵기 때문이다. 책에서 길을 찾고, 그 길을 직접 걸으면서 습득하는 지식이야말로 오롯이 ‘자기 것’이 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큰 이유다.

광주 풍향초가 학생들에게 제공한 `책 목록 기록장’

 “매주 전문적학습공동체의 날, 선생님들께선 사전에 읽어보신 책들을 소개하며 회의를 시작해요.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책을 재료로 수업의 내실을 높일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늘 있거든요. 그래서 매년, 매번 책의 목록은 다양해지고 적용 범위도 넓어지죠.”
 
▲“매년 책 목록 다양해지고 범위 넓어져”
 
 읽기와 쓰기가 분리된 영역이 아니라는 관점에서 ‘쓰기 교육’도 시도됐다. 지난해 관련 주제에 대한 쓰기 활동을 학교에서 제공한 백지 공책에 수행하도록 했다. 개인 문집처럼 특별한 기록물로 남긴 했지만, 의무사항처럼 부담이 될 것이란 우려에서 올해부턴 ‘책 목록’만을 기록하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온작품읽기를 추진했던 초창기엔 학부모님들께서 ‘왜 교과서는 안 배우냐’며 오해도 하셨어요. 책 구매에 대한 불만사항도 있었구요. 하지만 책 선정은 교과 내용과 겹치는 선에서 이뤄지고, 최대한 학교 예산으로 책을 구매하고 가정에서 일 년에 구매할 책이 1~2권을 넘지 않게 하고 있어요. 처음엔 우려했던 분들도 년차가 쌓이고 노하우가 늘어가면서 신뢰가 생기시는 것 같아요.”

 풍향초의 온작품읽기는 해를 거듭할수록 교육과정 재구성과 연계한 교육활동의 폭과 깊이가 더해지고 있다. 앞으로는 교원들의 학년 간 교류를 확대해 학년 안에서 몰입되는 피로감을 줄여나가고 더 많은 노하우를 축적해간다는 계획이다.
김우리 기자 uri@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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