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세 성자
지난해 문규현 신부·전종훈 신부·수경 스님 삼보일배 기록

 광주인권영화제가 오는 25~28일 광주영상복합문화관 G-시네마에서 `그만파쇼’란 기치를 내걸고 펼쳐집니다. 이에 광주드림에서는 광주인권영화제 프로그램팀이 소개하는 작품을 4차례에 걸쳐 싣습니다. 영화는 무료상영입니다. <편집자주>

 오체투지(五體投地). 땅에 자신의 온몸을 던진다는 의미처럼 세 걸음을 걷고 바닥에 엎드린 채 양 무릎과 양 팔, 이마를 땅에 붙이는 절의 형태로 자기 안의 교만을 버리고 어리석음을 참회하는 불교의 수행법이다.

 지금종·최유진 감독의 ‘오체투지 다이어리’는 짧게는 몇 주, 길게는 몇 년까지 걸리는 이 고행의 길에 나선 세 성직자의 모습을 그린 다큐멘터리다. 그들은 왜 이 고행의 길을 선택한 것일까.

 영화는 지난 해 문규현 신부, 전종훈 신부, 수경 스님 세 성직자의 지리산 하악단에서 계룡산 중악단까지의 오체투지 과정을 담고 있다.

 영화는 그들이 택한 순례의 방식처럼, 그리고 순례단이 오체투지 과정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억지로 많은 것을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오체투지의 시작부터 끝까지 다른 불필요한 과정들은 과감히 생략하고 그들의 ‘길’과 순례길에 함께했던 ‘사람’들, 그리고 오체투지 순례의 ‘의미’만을 고스란히 보여줌으로써 그들이 오체투지를 통해서 우리 사회에 말하고자 했던 메시지와 기도의 본질을 힘 있게 전달한다.

 영화는 종교에 대해 무겁거나 심각한 접근을 하지 않는다. 다른 세 성직자에게도 종교의 구분은 농(弄)의 소재일 뿐, 화해와 화합, 평화와 상생의 의지 그리고 그들이 왜 오체투지를 선택했는지, 이러한 고된 수행의 과정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가 중요한 것임을 말하고 있다. 이를 통해 영화는 단순한 ‘기록’에서 의미 전달의 매개로 거듭난다.

 세 성자(聖者)는 자신을 가장 낮춤으로써 깨달음을 얻는 원초적이면서도 순수한 수행법을 선택했다. 그들은 우리를 대신하여 오체투지를 통해 소통이 단절된 현 정부와 우리 사회를 향한, 혹은 우리 스스로에게 자성과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비록 느리고 말없는 고행의 걸음이지만, 그들의 삼보일배를 목도하고 있노라면 그들과 함께 수행하는 것과 같은 숙연한 성찰의 시간을 갖게 된다.

 오체투지 기간 동안 순례단은 길에서 많은 사람들과 마주한다.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 하는 순간 ‘길’은 고행의 공간에서 나눔과 소통의 장으로 변화한다.

 그들의 염원과 진심이 통해서일까. 순례길에 공감하고 자발적으로 동행하는 사람들, 그들의 고통을 함께 느끼며 아파하는 사람들, 현 정부의 행태에 분노하는 사람들의 모습까지 순례길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은 흡사 이 말없는 세 성직자와 닮아있다. 어느 순간 너무나도 닮아 버린 인자한 세 성자의 미소처럼.

 순례단은 오체투지를 통해 평화와 화해, 참여와 상생의 모습을 직접 실천하며 그 의미를 길에서 마주한 사람들에게 마음과 행동으로 전파한다.

 그들이 고행의 길을 통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을 단 하나로 정의할 수는 없을 것이다. 순례단의 오체투지는 4대강 사업을 비롯한 생명과 존엄의 가치, 평화와 소통의 문제 등 현재 대한민국 사회 전체를 관통하는 많은 쟁점들을 안고 있으며, 그들이 행한 걸음은 보는 이로 하여금 자기반성과 성찰, 나아가 적극적인 표현과 변화를 촉구한다.

 이와 같은 연유에서 ‘오체투지 다이어리’는 올해 15회 광주인권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었다. 본 영화를 통해 국민의 의견을 무시한 채 강행되는 의미 없는 4대강 사업, 국민과의 소통을 거부하고 계속되는 정부의 폭압과 후퇴하는 민주주의 등 현재 우리 사회가 직면한 여러 문제들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자성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비록 영화에서 오체투지 순례단은 계룡산 중악단에서 순례길을 잠시 멈추었지만, 언젠가 묘향산 상악단까지 희망의 오체투지가 계속 이어질 수 있기를, 그래서 그들의 기도와 염원이 반드시 실현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박정대 <광주인권영화제 프로그램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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