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 둘러싼 사투(?)가 빚는 웃음과 눈물
관객에게, 배우에게 ‘의자’는 무엇일까?

▲ 연극 ‘의자는 잘못 없다’의 중심 소재인 의자.
 광주에서 선욱현의 ‘의자는 잘못 없다’ 공연이 있다고 해서 7월28일 궁동예술극장을 찾았다. 선욱현(현 강원도립극단 예술 감독)은 전남대학교극문화연구회(이하 전대극회) 출신으로 1995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중독자들’이 당선됐고 그 이후 꾸준히 극작과 배우 활동을 겸하면서 작품 활동을 해 온 한국 연극계의 중진이다. ‘의자는 잘못 없다’는 15년 전에 나온 희곡인데 광주에서는 공연을 본 적이 없는 것 같아 자못 기대가 됐다.

 무대에는 의자 하나가 조명을 받고 있다. 팔걸이가 있는 나무 의자다. 장소는 문덕수가 운영하는 가구점이다. 곧이어 가구점 주인 문덕수가 나와서 작은 책자를 펼쳐 읽는다. ‘한 남자가 한 의자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 그 때 한 남자가 등장한다. 그는 무대에 놓인(가구점에 진열된) 의자를 보고 발걸음을 멈추고 문덕수에게 의자를 팔라고 조른다.

문덕수는 파는 의자가 아니라고 한다. 무대 초반부터 가구점 주인 문덕수와 의자를 사려는 송명규 사이에 벌어지는 작은 실랑이가 선욱현의 희곡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코미디적 요소가 강해서 관객들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극에 빨려 들어간다.
 
▲의자를 사고 싶은 사람, 팔고싶지 않은 사람
 
 결국 문덕수는 의자를 만든 장본인인 딸 문선미를 데리고 나온다. 문선미는 이것은 파는 의자가 아니다, 이것은 쓰레기다, 라는 말로 송명규를 당황하게 만들고 들어가 버린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송명규는 의자를 사려고 집요하게 달라붙고 문덕수는 딸을 생각하면 안 팔아야 하지만, 돈을 생각하면 팔아야 하는 딜레마에 빠진 채 송명규가 부르는 30만 원이라는 가격에 혹해서 계약금 3만 원을 받아 챙긴다. 그리고 그 이후로 극은 온통 난장판이다.
연극 ‘의자는 잘못 없다’ 중.

 송명규는 (별 볼일 없어 보이는) 의자 하나에 30만 원을 쓸 정도의 경제력은 없는 (별 볼일 없는) 남자라고 할 수 있다.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운 후 도서관에 다니면서 취업 준비를 하고 있고 통장에 잔고가 얼마나 있는지도 모른 채 아내와 살아가고 있다.

송명규의 아내 송지애는 남편이 통장에 남아 있는 230만 원에서 30만 원을 들여 의자를 사겠다고 하자 이혼을 불사하며 반대한다. 의자를 팔고 싶지 않은 문선미, 꼭 의자를 사야겠는 송명규, 약속한 30만 원을 받고 싶은 문덕수, 계약금 3만 원을 돌려받고 의자도 안 사고 싶은 송지애. 이 네 사람이 벌이는 의자를 둘러싼 난장판이 웃음과 함께 그런 생각이 들게 한다. 의자는 잘못 없다.

 선욱현의 희곡은 단순하지 않아서 관객은 도중에 연극이 끝났다고 생각하고 박수를 친다. 하지만 극은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되고 각 캐릭터의 성격이 어느 정도 바뀐다. 즉 한 가지 사건을 두고 펼쳐내는 사고(思考)와 대사가 다르다. 그러니 따라서 극의 상황도 달라진다. 그러다 갑자기 극은 중국의 무협시대로 시간과 장소를 바꾼다.

 아마도 이 부분이 가장 크게 웃음을 주는 부분이었던 것 같다. 웃음 코드만 난무할 것 같은 극이 의외로 진중하고 무거운 분위기를 함께 가지고 있어서 진지한 자세로 보고 있었던 관객들도 여기서는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연극 ‘의자는 잘못 없다’ 중. 갑자기 극의 시간과 장소가 중국의 무협시대로 옮겨간다.

 의자 하나를 두고 거의 사투를 벌이는 이 연극을 보면서 어떤 관객은 포복절도했다. 어떤 관객은 울었다. 박수치고 옆 사람을 때려가며 웃었던 관객과 계속 눈물을 훔치며 훌쩍였던 관객에게 각자의 의자는 뭐였을까. 하나의 무대를 만들기 위해 모인 이 연극의 배우들과 스텝들에게 각각의 의자는 무엇일까.
 
▲연출·배우·스태프… ‘돌아온 옛사람들’
 
 선욱현의 희곡을 무대에 올린 사람들은 전문 연극인들이 아니었다. 연출을 맡은 박선주는 선욱현의 전대극회 후배로 두 아이의 엄마이며 직장인이다. 그녀는 근 10년 만에 연출을 하면서 가족들, 특히 아이들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전했다. 그러면서 10년이 지난 후에 또 연극을 하고 있을 자신을 보고 싶어 했다.

 무대에 오른 남자 둘과 여자 두 명의 배우들과 스텝을 맡은 사람들 모두 전에 연극을 했고 그 향수(?)를 잊지 못해 뭉친 이들이었다. 이쯤 되면 이렇게 말해야 할까? 연극은 잘못 없다. 무대는 잘못 없다.

 팔 생각이 없는 의자를 만든 문선미 역의 배우(윤보미) 역시 직장인이고 연극을 한 지 8년이 넘어서 처음 도전한 무대였다고 한다. 어느 순간 눈물을 뚝 흘리다가 다음 장면에서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밝은 연기를 소화해낸 그녀에게 찬탄을 보낸다.

 진짜 가구점 주인 같았던 문덕수 역의 박명원 배우의 열연 고마웠다. 미친 사람처럼 의자에 탐닉했다가 다음 순간에는 또 다른 인격을 보여준 강명규 역의 박성용 배우, 아주 사랑스러운 캐릭터와 표독스러운 캐릭터 사이를 자유스럽게 왔다 갔다 한 송지애 역의 김정화 배우에게도 박수를 보낸다.

 ‘그 남자는 그 의자를 보고 반한 것에 만족해야 했다. 그 의자를 갖지는 못하였다. 그래서 그 남자는 그 의자를 많이 그리워했다’는 말로 연극은 끝이 난다. 나에게 살아갈 욕망을 불러일으키고 이상을 심어주었던 그 의자를 나는 지금 가지고 있을까? 아니면 끝내 가지지 못한 채 그리움만 가슴에 품은 채 살아가고 있을까. 그러거나 저러거나 의자는 잘못 없다. 안다, 나도.
임유진<연극을 좋아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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