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살무늬’ 과연 암호일까?

▲ <사진55> 김혜련 화가의 ‘예술과 암호 Art and Code 한국 선사미술의 암호: 빗살무늬’ 전 포스터. <사진56> 세모형 빗살무늬토기, 서울 암사동, 높이 36.8cm, 국립중앙박물관.
 지난 11월 17일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2층 휴게실에서 김혜련 화가의 ‘예술과 암호 Art and Code 한국 선사미술의 암호: 빗살무늬’ 전을 보았다. 김혜련 화가는 한반도 빗살무늬토기의 ‘빗금’에 관심을 두고, 그 선을 자신만의 눈으로 해석하고 붙잡았다. <사진55> 전시 포스터에서 세모형 빗살무늬토기 뒤 배경으로 깔린 것이 바로 그러한 작업의 성과(아래 <사진57> 참조)이다.

<사진57> 김혜련의 ‘나의 신석기 My Neolithic’, 종이 100장, 종이에 먹, 2018. <사진58> 10월12일 화가 김혜련이 ‘2018 서울 암사동 유적 국제학술회의’에서 자신의 미술 작업 성과를 발표하고 있다. 김혜련·김찬곤

 한편 김혜련은 10월 12일 ‘2018 서울 암사동 유적 국제학술회의’에서 자신의 미술 작업 성과를 발표한 바 있다. 발표문 ‘한국 기하문의 뿌리: 신석기 토기의 예술성’에서 김화가의 직관이 살아 있는 대목을 아래에 들어본다.
 
 자신의 손과 흙, 불가해한 세계에 대한 심리적 반응과 이에 대한 상징체계, 생존을 위한 절규, 빗줄기에 대한 염원, 자연이자 신인 하늘과 구름에 대한 대화방식 등 제사장 등장 이전 시기의 신석기 토기에는 추상 예술의 본질과 인간의 세계관이 그대로 암호화되어 있습니다.
-‘2018 서울 암사동 유적 국제학술회의-신석기문화의 발전과 토기의 다양성’ 96쪽
 
빗살무늬와 화가의 ‘직관’
 
 이날 암사동 유적 국제학술회의에는 국내 학자 7명, 외국학자 10명이 발표했다. 그런데 참으로 희한한 발표장이었다. 모두 다 암사동 빗살무늬토기를 말하는데, 정작 그 ‘빗살무늬’가 무엇을 새긴 것인지는 어느 누구도 말하지 않았다. 아니 모두 다 그것은 알 수 없다는, 그저 ‘기하학적 추상무늬’라는 것을 암묵적으로 전제하고 말하는 듯했다. 더구나 강동구는 지금 암사동 선사유적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올리기 위해 힘쓰고 있다. 유네스코 심사위원들이 이 빗살무늬가 무엇인지 묻는다면 그때도 ‘기하학적 추상무늬’라 답할 것이 분명하다.

 나는 신석기 예술을 ‘상징’으로 보는 것, 신석기 시대에는 제사장이 없었다든지, 신석기 예술을 ‘추상 예술’로 본다거나 그것을 ‘암호’로 보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김혜련이 신석기 빗살무늬를 ‘빗줄기’와 ‘하늘과 구름’으로 보는 것은 아주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김혜련은 어디가 빗줄기(김화가는 이 비를 ‘염원’으로 해석하지만 그 반대로 ‘공포’를 새긴 것일 수도 있다)이고 어디가 하늘과 구름인지는 말하지 않는다. 세모형 토기에서 받은 전체 느낌이 그렇다는 말일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러한 화가의 직관은 소중하다.

<사진59> 아가리 쪽에 ‘하늘 속 물 층’을 여섯 층으로 하고, 그것을 짧은 빗금으로 새겼다. 그런데 빗금 사이를 일부러 띄어 놓은 곳이 있다. 이것은 ‘하늘 속 물 층’에서 비구름(삼각형 또는 반타원형 구름)이 나오는 통로(천문)이다. 그리고 그 구름에서 비가 내리는 것이다. 이 그릇에 통로는 네 곳에 나 있다. 이는 신석기인의 세계관 ‘방위(동서남북)’와 관계가 있다.
 
빗살무늬의 비밀을 풀 수 있는 실마리
 
 김혜련은 신석기 토기의 문양이 청동기를 지나 삼국시대에도 그대로 이어진다고 본다. 이런 관점은 맞기는 하지만 그는 처음부터 이 무늬를 ‘기하문’으로 보았고, “기하문 암호”(96쪽)라고까지 한다. 그가 자신의 전시 제목을 ‘예술과 암호 Art and Code 한국 선사미술의 암호: 빗살무늬’라 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더구나 국립중앙박물관은 김혜련의 전시에 맞춰 빗살무늬토기 한 점(<사진56>)을 전시 공간에 내놓았다. 국립중앙박물관 또한 세모형 빗살무늬토기의 ‘빗살무늬’를 기하문 또는 암호로 본다는 말이다. 그런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내놓은 그 빗살무늬토기에 한반도 ‘빗살무늬’의 비밀을 풀 수 있는 실마리가 담겨 있다. 바로 <사진56>의 동그라미 속 무늬이다. 나는 지금까지 빗살무늬토기의 비밀에 대해 글 세 편을 썼고, 그 세 편에서 이 동그라미 속 무늬가 ‘하늘 속 물 층’에 낸 ‘통로(天門)’라고 간략히 밝힌 바가 있다. 이번 글은 이 통로에 대한 글이다.

<사진60-61> 서울 암사동 빗살무늬토기조각. 국립중앙박물관.
 
하늘 속 물 층을 4, 5층으로 새긴 암사동 신석기인
 
 <사진60> ‘하늘 속 물’을 보면, 둘 다 물 층을 4층으로 하고 층마다 통로를 냈다. <사진61>은 5층으로 새겼다. 국립중앙박물관 ‘e-뮤지엄’ 서울 암사동 편 빗살무늬토기 사진 자료 474장에서 층수를 확인할 수 있는 그릇과 조각은 699점이다. 이 가운데 4층은 236점, 5층은 244점이다. 나머지는 다음과 같다. 2층 7, 3층 70, 6층 93, 7층 30, 8층 9, 9층 2, 10층 5, 11층 2, 15층 1점. 4층과 5층을 합치면 약 69퍼센트를 차지한다. 이것은 암사동 신석기인이 생각한 하늘 형상, ‘방위’와 관련이 깊다.

 중국 전국시대 초나라 시인 굴원(屈原 기원전 343?-278?)이 쓴 시 ‘천문(天問)’에 이런 구절이 있다. “圓則九重(원칙구중) 孰營度之(숙영도지). 惟玆何功(유자하공) 孰初作之(숙초작지)”(넷째 구) 우리말로 옮기면 이렇다. “하늘은 둥글고 아홉 겹(九重)으로 되어 있다 하나, 대체 누가 이렇게 생각해 냈을까. 대체 누가 한 일일까. 누가 처음으로 생각해 냈을까.” 이 구절을 보면, 그는 하늘을 그린 어떤 도상을 본 것 같다. 그것은 우리 세모형 빗살무늬토기의 ‘하늘 속 무늬’와 비슷했을 것이고, 물 층이 9층으로 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하늘을 ‘아홉 겹’이라 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굴원이 그 도상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사진62> 굴원은 초나라 왕족의 후손으로, 머리가 좋고 말주변이 좋아 스물여섯 젊은 나이에 좌도(좌상) 벼슬을 한다. 좌도는 내정뿐만 아니라 외교를 담당하는 중책이다. 그는 뛰어난 만큼 시기도 많이 받았다. 그가 쓴 시로는 ‘이소(離騷)’와 ‘어부사(漁父辭)’가 있다. <사진63> ‘회남자·상’(유안 편찬, 이준영 해역, 자유문고, 2015) 표지. 이 책은 중국 한나라 초기 회남려왕 유장의 아들 유안(劉安)이 엮었다고 알려져 있다.

신석기인의 세계관을 알 수 있는 책 ‘회남자(淮南子)’
 
 굴원이 쓴 ‘천문(天問)’은 354구로 되어 있는 아주 긴 시다. 굴원은 이 시에서 하늘과 땅의 형상, 천지개벽, 산천경영, 역대왕의 정치, 초나라 멸망에 대해 172가지로 추려 묻는다. 시 앞부분에서 묻는 ‘천문(天問)’은 중국 기록에서 최초의 것이다. 그의 물음에 대한 답은 중국 한나라 초기 회남려왕 유장의 아들 유안(劉安)이 엮었다고 알려진 ‘회남자(淮南子)’에 있다. 이 책에서 ‘천문훈(天文訓)’, ‘지형훈(地形訓)’, ‘남명훈(覽冥訓)’ 편은 우리나라 신석기인의 세계관과 세모형 빗살무늬토기의 무늬를 살펴보는 데 아주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 ‘천문훈’과 ‘지형훈’ 편에서는 토기(吐氣)와 함기(含氣), 균천(鈞天), 구중(九重·아홉 겹)과 구규(九竅·아홉 구멍), 구주(九州·아홉 들판, 또는 구야(九野)), 팔인(八-멀인)과 팔택(八澤)의 구름(雲), 팔굉(八紘), 팔극(八極)과 팔방(八方·여덟 방위), 하늘에 나 있는 통로 팔문(八門·여덟 천문) 개념이 나오고, ‘남명훈’편에는 ‘하늘 구멍’이 터져 홍수가 나자 여와가 오색 돌을 녹여 구멍을 막았다는 ‘여와와 홍수’ 이야기가 나온다. 바로 암사동 세모형 빗살무늬토기의 하늘 속 물 층(九重), 구멍(九竅)과 천문(八門)과 구름(雲), 팔방구주(八方九州)와 관계있는 대목이고, ‘구멍 난 하늘과 홍수’는 우리나라 세모형 빗살무늬토기 문양의 시원을 밝히는 데 아주 중요하다. 그런데 이 책의 번역이 제대로 되어 있는 것이 없다. 책을 번역할 때 ‘근대의 세계관’으로 옮겼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이 책을 번역할 때는 신석기인의 세계관을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번역을 하더라도 무슨 말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말이 되기 일쑤이다.

<사진64-65> 서울 암사동 빗살무늬토기. <사진66> 그릇 아가리 쪽 무늬를 평면에 쭉 펼쳐 놓은 그림. <사진67> 부산 동삼동 빗살무늬토기. 국립중앙박물관.
 
사방오주(四方五州)와 팔방구주(八方九州)의 세계관
 
 <사진64> ‘하늘 속 통로’를 보면 <사진65>처럼 수직 직선으로 내지 않고 하늘 물 층마다 통로(천문) 자리를 조금씩 달리 냈다. 그 까닭을 알려면 아래 <사진68>을 먼저 보아야 한다. <사진68>은 사람이 땅에서 고개를 쳐들고 하늘을 봤을 때 동서남북·중앙 하늘에 난 구멍(통로)을 그린 그림이다. 이와 달리 <사진64-67>은 하늘 속 물 층을 옆(측면)에서 본 것이다. 그런데 암사동 신석기인은 똑같이 옆에서 본 하늘 속이라 하더라도 <사진64>와 <사진65>처럼 하늘 통로를 다르게 냈다. 그것은 <사진68>에서 확인할 수 있듯 하늘 구멍 자리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봤을 때 <사진64>가 <사진65>보다 하늘 구멍을 더 세심하게 표현했고, 입체에 더 가깝게 새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진65>를 보면 하늘 물 층을 다섯 겹으로 새겼다. 이것은 동서남북 그리고 중앙 하늘을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사람이 동서남북 그리고 그 중앙 아래 다섯 곳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면 구멍(天門)이 하나씩 다섯 곳에 나 있다는 말이다. 이때 하늘은 ‘파란 하늘’(경계)과 다섯 곳에 통로가 있는 물 한 층뿐이다. 이것을 그릇 평면 1차원에 표현하기는 힘들다. 물론 <사진66>처럼 경계(파란 하늘)를 물결무늬로 표현하고, 통로 다섯 곳을 비워 놓은 하늘 속 물 한 층만 짧은 빗금으로 새겨도 된다. 어쩌면 이것이 3차원 입체를 1차원 평면에 표현할 때 가장 손쉬운 방법일 것이다. 그런데 암사동 신석기인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들은 하늘 속에 물이 방방이 차 있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래서 일부러 <사진65>처럼 하늘 속 물 층을 다섯 겹으로 새긴 것이다. 굴원은 아마 <사진67>처럼 하늘 속 물 층이 아홉 겹으로 된 도상을 본 듯싶다. 굴원이 본 도상은 팔방(八方)과 그 중심을 표현한 아홉 겹 하늘 속 도상이었을 것이다.

<사진68> 신석기인이 고개를 쳐들고 본 하늘 세계를 그린 그림.

 <사진64> 그릇은 ‘파란 하늘’(경계)과 구름을 새기지 않고 하늘 속 물 층만 네 겹으로 표현했다. 흥미롭게도 가장 아래에 하늘 물 층 하나를 새기다 만 흔적이 보인다. 이 사진에서 천문은 모두 네 곳에서 볼 수 있다. 뒤쪽은 어떻게 되어 있는지 확인하지 못했지만 아마 네 곳이나 다섯 곳이 더 있을 것이다. 다섯 곳이면 동서남북 그 사이사이에 동북방, 동남방, 서남방, 서북방 천문을 하나씩 더 두고 한 중앙 천문을 낸 것으로 볼 수 있다. 팔방구주(八方九州)의 세계관인 것이다.
김찬곤 <광주대학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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