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들려주는 그들 이야기

▲ 영화 대리시험.
 9회 광주여성영화제 캐치프레이즈였던 ‘이제 우리가 말한다’. 특별히 작년 9회 여성영화제의 기억들을 되살리며 그때의 캐치프레이즈를 형상화한 단편영화 4작품을 선정, 단편 섹션을 통해 공개한다.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말하고 싶지만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던 이야기들. 그러한 말 못했던 사연들은 ‘나’와 또 다른 ‘여성’간의 연대를 통해 아픔을 나누고 치유한다.
 
▲영화 ‘대리시험’

 “언닌 내가 최현주 라는 걸 증명 할 수 있어? 내 이름 아무데도 없는 거잖아.”

 한국에 온지 4년 된 탈북 2세 현주는 부모님이 중국에서 돌아가신 탓에 국적 불분명으로 무국적자이다. 그런 현주의 위의 대사는 애처롭다. 주민 번호가 없어 학교도 못 다니는 현주. 아이돌 팬 미팅에 너무나 가고 싶지만 신분이 없는 현주는 갈 방법이 없다.

그런 현주가 택한 건 대리시험을 해주고 신분을 잠시 빌리는 것. 누구는 대한민국을 떠나고 싶다하지만 현주에게 대한민국 국적은 절실하다. 그 속마음도 모르고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사람들의 말말말.

영화 ‘대리시험’은 우리가 알면서도 알지 못했던 탈북자, 그 안에서도 무국적자라는 낯선 주제를 어린 소녀에게 투영시킴으로써 거부감 없이 그녀의 아픔을 받아들이게 하는 묘한 끌림이 있다. 생소하지 않은 이야기를 ‘나’의 이야기로 탈바꿈 시키는, ‘나’는 누구인가?, 진정한 ‘나’란? 이라고 반문케 하는 영화의 힘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영화 계양산
 
▲영화 ‘계양산’

 “날파리 꼬이는 게 싫어서?”

 영화 ‘계양산’은 이혼한지 얼마 안 된 현남과 산에서 우연히 만난 선주, 너무나도 다른 두 캐릭터를 대비시키며 그려내는 통쾌함이란!!

현남의 고구마 같은 답답함이 선주의 사이다 같은 발언들과 현남의 사이다 같은 엔딩씬은 속이 다 후련할 정도로 통쾌하다.

영화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이혼 여성 또는 싱글 여성으로 살아가고 있는 여성들의 외침을 그린다. 대한민국 사회의 편견 속에서 남성의 시점에서 보여지는 ‘그녀들’이 아닌 여성의 시점에서 남성들에게 당당히 일침을 가하는 영화이다.

그리고 스크린 안에서의 두 여성의 연대는 조용하게 다가오지만 커다란 울림을 선사한다. “그래, 우린 되지도 않는 날파리가 꼬이는게 싫다!”
애니메이션 겨털소녀 김붕어
 
▲애니메이션 ‘겨털 소녀 김붕어’

 “우리 딸 예쁘네.”

 ‘겨털 소녀 김붕어’는 러닝타임이 6분밖에 되지 않는 내 몸에 관한, 여성성에 관한, 더 확장시켜 여성의 ‘꾸밈노동’에 의한 정체성까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짧은 애니메이션이다.
어느 순간 혐오의 표식이 된 여성의 겨드랑이 털! 겨털이 ‘혐오’의 이미지인지, 왜 그것이 ‘내’ 몸의 일부임에도 불구하고 여성만이 가져야하는 고통과 스트레스가 되어야 하는지에 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하면서 당당한 여성의 이미지란 무엇인지에 관해 성찰을 하게 하는 작품이다.
다큐멘터리 누구는 알고 누구는 모르는
 
▲다큐 ‘누구는 알고 누구는 모르는’

 “지지바가 공부해서 머하냐고 막 따라 댕기고 나는 간다카고.”

 다큐멘터리 ‘누구는 알고 누구는 모르는’는 어린 시절 한글 교육 자체를 받지 못한 안치연 할머니와 같은 한글학교에 다니는 80대 할머니들의 인터뷰를 스크린에 담아낸 작품이다.

한글 교육을 받지 못한 이유가 ‘지지배’ 라서? 하지만 영화는 단순히 그것만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 영화는 할머니들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그녀들’과 연대했던 또 다른 ‘그녀들’의 기억을 재소환 한다.

할머니들 팔에 새겨진 검은 먹물 문신 자국. 어떤 것은 선명하고 어떤 것은 그렇지 않다. 15,6살 소녀들이 했던 성스런 의식! 그 할머니들의 먹물 문신의 하나하나가 지금 여성연대의 밑바탕은 아닐런지... 영화 속에서 할머니들의 기억을 되짚어가며 알지 못했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맘 한켠이 아련해지면서 당시 소녀적 할머니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이렇게 4편의 단편 영화들의 캐릭터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목소리로 자신의 이야기를 토로한다.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때론 생소하고 때론 안타깝고 때론 가슴 아프다. 그러나 영화가 주는 메시지와 울림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여러분이라면 그 울림에 한번 귀 기울려 보고 싶지 아니한가.

 단편모음 3 ‘이제 우리가 말한다’는 오는 11월8일 금요일 16시, 광주독립영화관 GIFT에서 상영하며 영화 상영 후 ‘계양산’의 주영 감독과 ‘누구는 알고 누구는 모르는’의 배꽃나래 감독의 GV도 있을 예정이다.
정주미 <광주여성영화제 프로그램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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