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광주,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이들
그리고 무명용사묘에 무릎꿇은 사내 이야기

▲ 연극 ‘고백’. <극단 푸른연극마을 제공>
 극단 ‘푸른 연극 마을’에서 하는 ‘고백’이라는 공연을 보러 갔다. 슬슬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10월 말이었다. 공연은 ‘푸른 연극 마을’의 전용극장인 ‘연바람 씨어터’에서 올려졌다.

‘고백’이 ‘5·18민주화운동’과 관련된 극이라는 것만 알고 갔다. 제목 때문에 자연스럽게 연극 내용을 추측하게 되었다. 지금까지의 5·18관련 연극들이 주로 부당한 권력에 희생당한 민중들의 희생과 폭압에 대한 저항을 담은 것이었다면 이번 연극은 바로 그 부당한 폭력을 사용한 자가 주체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공연에 대한 강한 흥미가 생기는 지점이었다.

 첫 장면에서 한 초로의 사내가 죽은 이의 영정 사진을 앞에 두고 이야기를 했다. 사진의 주인공은 5·18에서 희생당한 사람이고, 그의 목소리는 내레이션으로 깔렸다. 죽은 이의 이야기를 살아있는 이 초로의 사내가 하는 연극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대목이었다. 하지만 연극은 나의 기대를 저버렸다. 영정 속의 죽은 이는 그 장면에서만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그 뒤로는 흐지부지 되어 버렸다.

 초로의 사내는 중국식당을 운영하는 만호라는 사람이다. 그는 1980년 5월에 사랑하는 딸과 가족처럼 지내던 이웃들을 잃어버린 사람이다. 지금 그는 알콜중독자이고 약간의 치매기도 가지고 있다. 알코올중독도 중독이지만 그의 기억이 종종 과거로 돌아가는 바람에 현재의 삶이 불안하게 삐그덕 거린다.
 
▲‘그들의 새벽’ 변형판

 만호와 그의 가족 그리고 이웃들이 겪은 5·18이 이야기의 한 축이라면 다른 축에는 정하라는 사내가 있다. 기업을 운영하며 살아가고 있는 그는 알고 보면 80년 5월 광주에 투입되었던 공수부대 출신이다. 이 인물이 자기의 과거를 숨기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따라가는 구성이었다면 ‘고백’이라는 제목이 정확하게 어울리는 공연이 되었을 것이다. 고백이란 숨기고 있는 이야기나 생각을 말하는 행동을 가리키므로. 80년 5월에 누가 군인을 광주에 보냈는지, 발포 명령은 누가 한 것인지 이제는 밝혀질 때가 되었으니, 아니 밝혀질 때가 훨씬 지났으니 말이다.

 그런데 연극은 만호와 정하, 두 인물의 이야기를 동시에 진행한다. 보다 보니 어디서 많이 본 이야기고 인물들이다. 다름 아니라 2018년 11월에 보았던 같은 극단의 ‘그들의 새벽’이라는 공연의 변형판이 바로 ‘고백’이었다. 무대가 끝난 뒤, 극단 관계자가 나와서 ‘그들의 새벽’이라는 작품을 계속 뜯어 고쳐서 이 작품을 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고백’이 작품 자체로 나쁜 것은 아니었다. 동행했던 10대의 학생은 5·18 이야기가 너무 가슴 아팠다고 감동적인 공연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것은 저번 ‘그들의 새벽’ 리뷰에도 썼듯이, 광주 사람이라면 거의 선험적으로 느껴지기 마련인 감정이다. 광주 사람이 아닌, 1980년 5월 광주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모르는 사람들, 혹은 그때 광주에는 폭도들의 시위가 있었는데, 북에서 내려온 간첩들이 숨어서 활동을 했다고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보아도 감동과 진실을 알 수 있는 연극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연극 ‘고백’. <극단 푸른연극마을 제공> |||||

 영정 속의 인물이 가진 스토리를 따라가면서 살아 있는 자가 고백을 하는 구성이든지, 아니면 당시 광주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살해했던 사람들(군인들)이 고백을 하는 구성이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집을 배경으로 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이제는 좀 식상한 구성이 되어 버렸으니(이렇게 말하면서 80년 5월에 희생당하신 분들께는 역시 죄송스럽다. 하지만 나는 지금 사후에 일어난 문학예술에 대해 말하고 있으니 그 분들도 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나를 용서하리라 믿는다.), 광주를 진압하기 위해 투입되고, 민간인을 상대로 발포까지 한 인물이 과거의 진실을 밝히는 구성이었다면 제목과도 잘 맞아떨어지면서 아주 좋은 공연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구성은 그렇다 치고 이 ‘고백’이라는 연극에는 한 가지 독특한 점이 있었는데 인물들이 대형을 이루어 노래와 대사와 몸짓(혹은 율동)이 어울린, 일종의 뮤지컬에나 나올 법한 장면들을 연출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뮤지컬보다는 집체극에 가까웠다. 집체극은 80년대 후반, 주로 학생운동이나 노동운동권에서 많이 했던 극의 일종인데, 프로파간다적인 성격이 강한 극이다 보니 정치적 색채가 짙은 반면 예술성은 다소 떨어진다. 만약 한 번 정도만 나왔더라면 그래도 효과가 있었을 것인데 몇 번 반복되다보니 무대의 질은 떨어지면서 효과는 반감되었다.
 
▲정치색 짙은 집체극 예술성 떨어뜨려
 
 극단 ‘푸른 연극 마을’이 5·18을 소재로 한 연극을 만들면서 얼마나 고뇌하고 애쓰는지 감히 알 것 같았다. 이번 ‘고백’도 그리 나쁜 공연은 아니었다. 하지만 조금만 더 냉정하게 희곡의 내용과 구성을 바꾸고 표현에도 신경을 썼으면 싶다. 초반에 나왔던 영정 속 사진 속의 인물처럼 중간에 사라진 캐릭터가 한 명 더 있었는데, 정하의 대학생 딸이다. 이 여대생은 5·18에 관련한 연극을 한다고 어쩌고 하더니 두 장면 나오고는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연극 무대에서는 소품 하나도 그냥 나오는 법이 없다. 만약 첫 장면에 총이 나온다면 그 총은 반드시 발사되어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그런데 인물 두 명이 소리 소문 없이 조용히 사라졌다. 설마 이것을 80년 그때 아무도 모르게 사라졌던 사람들을 은유한 거라고 하진 않겠지.

 이번 ‘고백’에서 가장 좋은 장면, 혹은 구성은 마지막 부분이었다. 정하는 무명용사의 묘 앞에 무릎을 끓고 사죄를 한다. 아마도 이 장면에 무게를 더 두고 핵심으로 삼아서 작품을 조금 더 손질한다면 훌륭한 5·18 연극 작품 하나가 탄생하지 않을까 싶다. 그때 광주에 투입되었던 군인들이나 그 군인들의 손에 무참하게 살상 당했던 사람들이나 어쩌면 같다. 그들 모두 보이지 않는 권력의 손에 희생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부지하여 살아남은 가해자가 이름도 없이 스러져간 이의 무덤에 사죄를 올리는 장면은 깊은 카타르시스를 선물하니까 말이다.
임유진 <연극을 좋아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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