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어둠 지키는 방풍림이었으면”

 봄이

 작고 연약한 것들과 시작하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요.

 

 어느 싹, 어느 잎, 어느 꽃 하나도

 크고 강하게 시작하지 않고

 작고 여리게, 부드럽고 은밀하게,

 떨리고 설레며 시작하는 것을 보면서

 위로와 격려를 받습니다.

 

 나의 시작도 그러니까요.

 나에게도 봄이 오니까요.

 나에게도 결실이 있을 테니까요!

 

 정용철 시인의 ‘봄’

 

 제일 좋아하는 색이 노란색이다. 봄이면 흐드러진 개나리로 가슴이 울렁이고 후리지아의 색과 향에 취한다. 한낮에 부쩍 따뜻해지는 봄 햇살은 노란빛을 띄고 있다. 봄이면 가장 약하면서도 강한 것이 생명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작고 여린 것들, 아주 잠깐의 따뜻함 뿐인 봄의 것들이 그렇게 화려한 꽃망울을 터뜨리고 딱딱해 죽은 것 같았던 나뭇가지에서 연한 싹을 내미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런 봄에 사람들이 느끼는 작은 기쁨은 결코 작지 않은, 죽음 같았던 차갑고 무심한 겨울을 지나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과 힘을 준다.

 “큰 슬픔을 견디기 위해서 반드시 그만한 크기의 기쁨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작은 기쁨 하나가 큰 슬픔을 견디게 합니다.”- 신영복

 시간이 지나 그저 잊혀 지는 것 뿐 아닐까 라는 반문과 자책이 맘을 무겁게 하는 날이 쌓여 어느새 3년이 지났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사라졌던 배의 끝 부분을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하는 우리 모두 앞에 처참해진 몰골로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세월호를 보면서 2014년 4월16일로 돌아가 버린 것 같았다. 그렇게 아직 우리 모두는 큰 슬픔 안에 있다는 것이 또 확인되었다. 3년 내내 노란색의 리본이 늘 왼쪽 옷깃에 있다. 가방에도 달려있고 팔찌도 있고 목걸이도 있다. 동네책방 숨에는 세월호 코너가 있어서 책이며 소품이며 그동안의 과정을 알리는 전단지까지 매일 눈인사를 하게 된다. 아침마다 알리는 피켓을 들고 저녁마다 마을마다 촛불모임으로 모여 거리를 걷는다. 그런다고, 마침 좋아하는 색이라고, 매일 생각하고 바라본다고, 슬픔이 참담함이 조금이라도 가벼워졌는가.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는 말처럼, 내 문장으로 그들의 아름다움을 도드라지게 만들고 싶었다. 역사에 몸을 담았으되, 인간만이 깨닫고 선보일 수 있는 향취와 자세를 제일 앞에 두려는 것이다. 그 눈짓 그 헛헛함 그 쓰라림까지.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순간의 아름다움을 담고자 했다. 여덟 사람 곁에 여덟 사람을 세우고 여덟 사람을 더 찾아다녔다. 그 순간이 너무나도 참혹하고 안타깝고 돌이킬 수 없는 슬픔으로 가득하다고 해도, 혹은 생사의 경계를 넘어가 버렸다고 해도, 서로의 어둠을 지키는 방풍림이었으면!”(350쪽. 작가의 말 중에서)

 2016년 ‘거짓말이다’를 통해 우리에게 차갑게 기억하고 뜨겁게 분노하라던 작가가, 올 봄에는 그 모든 것을 너머 계속 나아갈 수 있는 인간의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로 우리를 다시 찾아왔다. 8편의 중단편이 실린 소설집인데, ‘그 순간이 너무나도 참혹하고 안타깝고 돌이킬 수 없는 슬픔으로 가득하다고 해도, 혹은 생사의 경계를 넘어가 버렸다고 해도, 서로의 어둠을 지키는 방풍림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써내려간 이야기로 가득하다. 가벼워지기 위해서 잊기 위해서 덮어두고 아무렇지 않게 살게 되길 바래서가 아니다.지난주 살고 있는 광산구에서 ‘세월호참사 3주기 춧불문화제’가 열렸는데, 그 때 함께 외쳤던 것이 ‘기억에서 시작하다, 진실로 희망으로’였다. 참담하고 아프다 할지라도 제대로 기억할 때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뜻이리라. 제대로 기억하며 우리가 버텨낼 수 있는 것은 바로 우리 곁의 사람들에게서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 때문이리라. 가장 처참한 순간에도 옆 사람에게서 이웃에게서 지도자그룹에서 인간이 지닌 고귀함과 아름다움을 발견한다면 우리는 좀 더 참을 수 있고 버텨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다보면 정말 봄을 희망을 만끽할 수 있으리라.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김탁환 (돌베개:2017)

문의 062-954-9420

이진숙 <동네책방 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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