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년 옛 도청이 사라지고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공사가 한창이다.
 광주드림이 태어난 2004년. 그리고 광주드림이 열살이 된 오늘, 2014년. 그 10년 동안 광주드림은 매일 매일 ‘광주’를 기록해 왔다. 매일 조금씩 혹은 하루 아침에도 광주는 변했고, 변하고 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다. 10년 동안 광주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가. 10년 전 광주드림 사진 DB를 뒤졌다. 정확히 10년 전 광주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통해 광주의 과거와 오늘을 살폈다.

 

 시청 상무지구로, 도청앞 회화나무 고사 

 2004년 3월 광주시청은 계림동 청사에서 상무지구 신청사로 이전했다. 계림동 시청이 있던 자리는 원래 경양방죽이었다. 1969년 태봉산을 깎아 경양방죽을 메우고 시청을 건립했으니 말 그대로 상전벽해. 광주사람들이 물놀이를 즐겼던 너른 호수는 사라지고 산이 없어졌고 2004년까지 시청이 자리했던 계림동 부지엔 지금은 홈플러스가 자리했다. 2004년 상무지구 신청사 시대가 열렸다. 허허 벌판이었던 상무지구에 5·18을 상징하는 18층짜리 청사가 우뚝 섰다.

 옛 도청이 사라졌다. 도청 앞을 지키던 회화나무도 죽었다. 옛 도청은 5·18민중항쟁의 심장과도 같은 장소. 해마다 5월이면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저항했던 그 옛 도청 앞에 모여 그 날을 ‘기억’했다. 이제 우리는 도청을 헐고 지은 새로운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앞에서 5월을 기억해야 하는 입장이 됐다. 새로운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5월 항쟁의 정신을 배반해선 안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학동 팔거리가 사라졌다. 숱한 애환들이 서려있던 여덟갈래 골목길과 집들이 사라졌다. 주민들도 흩어졌다.

 “여그는 도둑놈이 들왔다가도 질을 못찾아서 도망을 못가. 첨 온 사람은 한번에는 못나가네. 여그는 머리가 좋아야 사는디여.” “여그가 솔직한 말로다가 없는 사람들이 모태서 사는 디요. 집구석은 작아도 신간은 편헌디 어디 가서 이만치 편허게 살 것인고. 사통팔달로 산바람 들어오고 버스길 좋고 우리는 우리동네만헌 디가 없다 허고 사요.”

 2004년 학동 팔거리에 사는 주민들이 했던 말들이다. 2014년 그 곳은 동구의 주거환경개선사업으로 LH공사가 지은 휴먼시아 아파트가 들어섰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새 아파트에 입주하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떠났다. 학동 팔거리의 기억은 이제 어디에도 없다.

 

 사직공원 팔각정, 무등경기장… 

 40년 가까운 세월 그 자리에 서 있던 사직공원 팔각정 역시 2014년인 지금은 볼 수 없다. 팔각정은 철거됐고 대신 높이 34.7미터의 ‘빛의 타워’를 세우는 공사가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다. 광주 천변에서 보면 무성한 사직공원 숲 위로 우주선 같은 거대 몸체가 떠 있는 걸 볼 수 있다. 광주시는 명소가 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이전에도 광주시는 지금은 사라진 팔각정 건물에 LED가 발광되는 봉들을 설치, 명소가 될 것이라고 했다. 팔각정은 사라졌다.

 야구장의 모습도 달라졌다. 32년 동안 광주시민들이 환호하고 눈물을 흘렸던 그 익숙한 무등야구장은 역사로 남고 새 야구장인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가 생겼다. 무등경기장 축구장 부지 위에 세워진 새 야구장은 지난 3월8일 개장 행사를 갖고 제 역할을 하고 있다. 야구 시즌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현재 광주시민들은 새 야구장에서 야구를 즐긴다. 지난해까지 야구 경기가 치러졌던 무등야구장은 새 야구장 옆에 나란히 건재하다. 무등 야구장은 아마추어 야구와 사회인 야구 등을 위해 활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사라지고, 생기고 어쨌든 변화 

 10년 동안 많은 숲들이 콘크리트 건물들에 의해 목숨을 잃었지만 새로 태어나 몸집을 불려온 녹색도 있다. 폐선부지였던 ‘푸른길’이다. 지난 1999년, 폐선구간의 활용방안을 놓고 지자체·지역주민·시민사회단체의 의견이 분분했었다. ‘푸른길 조성’ ‘경전철 건설’이라는 양론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결국 시민들의 힘으로 폐선길은 푸른길 조성됐다. 광주를 길게 잇는 녹색의 푸른 길은 이제 ‘선’이 아니라 ‘면’이 돼가고 있다. 이제 휴식과 산책공간을 넘어 낭만과 여유가 있는 문화예술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10년 동안 우리의 삶도 변했다. 누구나 ‘스마트폰’으로 10년 전엔 상상도 못했을 많은 일들을 처리하며 산다. 10년 전 산 엠피쓰리며 씨디플레이어는 무용지물 골동품이 됐다. 그래서 살기 좋아졌다고 말 못하겠다. 월급은 그대로고 물가는 올랐다. 기름값도 오르고, 수도요금, 전기요금, 가스요금도 올랐다.

 10년을 더듬다 보니 수많은 것들이 사라지고, 생겨나고 변하고 있단 것이 체감된다. 그 변화의 방향이 우리가 함께 잘 사는 것에 도움이 되는 것이었던가? 앞으로 광주드림이 담게 될 ‘10년의 기록’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었으면 한다.

황해윤 기자 nabi@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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