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쿠리쿠 연락회’ 28일 후지코시 소송 앞두고 광주 방문
-후지코시 강제동원 피해자와 만남·미쓰비시 항소심 결심 방청
-“광주에서 얻은 힘으로 반드시 승리하겠다”

“미쓰비시 소송과 후지코시 소송은 다르지 않습니다. 광주가 보여주고 있는 노력을 본받아 저희도 꼭 승리하겠습니다.”

일제강점기 무려 1000명이 넘는 소녀들을 강제로 끌고가 강제노역을 시킨 일본 ‘최대 전범기업’ 후지코시를 상대로 피해자들과 함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제2차 후지코시 강제연행·강제노동소송을 지원하는 호쿠리쿠 연락회(이하 호쿠리쿠 연락회)’ 활동가들이 27일 광주를 찾았다.

28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진행되는 후지코시 근로정신대 소송 재판에 참석하기 이전에 미쓰비시 중공업을 상대로 오랜 투쟁을 벌이고 있는 광주의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이하 시민모임)’과 피해자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특히, 이날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미쓰비시 중공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 항소심의 결심 재판이 열리는 날이기도 했다.

▶후지코시 피해자 김남순 할머니 만나

미쓰비시 재판 방청에 앞서 호쿠리쿠 연락회 나카가와 미유키 사무국장과 이노우에 쥰, 아이카와 쯔네미, 호리에 세스코 등 4명은 먼저 시민모임과 함께 5·18묘지를 참배하고 북구의 한 요양병원에 있는 후지코시 근로정신대 피해자 김남순 씨(83)를 찾았다.

후지코시를 상대로 싸워오는 동안 미처 보살피지 못했던 광주지역의 피해자들을 만나보고 싶었던 것이다.

미유키 씨와 쥰 씨는 지난 3월에도 광주를 찾아 김 씨를 만난 적이 있지만, 쯔네미·세스코 씨는 이번이 첫 만남이었다.

“할머니 건강은 어떠세요?” 병실에서 휠체어를 타고 나온 김 씨에게 일본에서 찾아온 손님들이 먼저 안부를 물었다.

“귀도 멀고…. 나이탓이야. 이제 갈 때가 됐어. 후지코시면 상당히 먼데 여기까지 오느라고 고생했네.”

▶김할머니, 선생님 꼬드김에 일본행

호쿠리쿠 연락회 활동가들을 만난 김 씨는 오래된 기억을 하나하나 끄집어 냈다. 호쿠리쿠 연락회가 활동하는 일본 도야마와 광주. 지금이야 비행기가 있지만, 김 씨가 일본으로 끌려간 1945년에는 “이틀 밤을 자야 갈 수 있는 거리”였다.

수창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진학을 원했던 김 씨는 “일본에 가면 좋다”는 선생님의 말에 ‘일본행’을 자원했다.
13살의 ‘소녀’는 그게 평생 잊지 못할 고통을 가져다줄지 몰랐던 것이다. “어리니까 뭘 알 겄어. 가면 좋다고 하니까 좋을지 알았지.”

김 씨의 눈가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이를 바라보는 호쿠리쿠 연락회 활동가들도 안타까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비행기 부속품 깎는 일을 했는데, 내가 요령이 없으니까 많이 다쳤지. 쇠 깎는 칼이 뜨거워서 여기(왼손 검지손가락) 이렇게 데였어. 내가 도야먀(후지코시 공장이 있던 곳)에 간 게 3월이었는데 4월에는 열병이 났지. 한 달을 아파서 입원했는데, 낫기가 바쁘게 공장으로 끌려갔어.”

혹사로 몸은 상하고, 배도 고팠다. 대화 중 점심시간이 가까워지자 호쿠리쿠 연락회 활동가들이 “배고프지 않으세요”라고 물었는데, “그 때는 배고팠지”라는 답이 돌아왔다.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풀, 나무를 뜯어먹는 것은 기본이었다.

▶“일본이 나쁜게 아냐 전쟁이 나쁘지”

김 씨가 가슴 아픈 기억을 떠올리며 얘기를 하는 동안 일본에 찾아온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에게 마사지 봉사를 해주고 있는 쯔네미 씨는 김 씨의 발을 마사지하고 있었다. “됐어 그만해도 돼”라는 말에도 쯔네미 씨는 김 씨의 발을 놓지 않고 계속 주물렀다.

자신의 얘기를 듣고 있는 일본의 활동가들에게 김 씨는 말했다. “내가 어려서 몰랐는데, 이 나이가 되니 알겠어. 일본이 나쁜 게 아니야. 세계2차대전 자체가 나쁘지. 고통 받은 건 일본사람들도 마찬가지였어.”

40분 가량 대화를 마치고 병원을 나오며 호쿠리쿠 연락회 활동가들은 “그런 고통을 겪고도 원망보다는 상황을 이해하려는 할머니의 마음에 너무나 놀랐고, 한편으론 죄송하다”고 했다.

“피해자도 모든 걸 내려놓고 이해하려고 하는데, 정작 잘못을 저지른 후지코시는 반성할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무거운 마음을 안고 이들은 광주고등법원으로 향해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소송 항소심 결심 재판을 방청했다. 미유키 씨는 “미쓰비시 소송과 후지코시 소송은 결국 같은 싸움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일본은 아베정권에서 식민지 시대의 침탈을 옳았다고 하는 방향으로 되돌아가가고 있지만, 광주에서 싸우고 있는 피해자들과 시민모임을 본받아 더 열심히 노력해서 최대 전범기업 후지코시를 상대로 한 싸움에서 승리하겠다”고 다짐했다.

한편, 일제 강점기 후지코지사의 도야마공장에 강제동원된 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 13명과 사망한 피해자 4명의 상속인 18명은 지난해 2월 서울중앙지법에 후지코시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후지코시는 일제 전범기업들 중에서도 강제동원 규모가 1089명으로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강경남 기자 kkn@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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