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현대 미술가이자 `노숙 생활 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이치무라 미사코 씨가 지난 9일 광주비엔날레 거시기홀에서 열린 20주년 특별 강연 릴레이에서 발제하고 있다.
광주비엔날레 강의 `점거의 기예’ 발제자로
홍성담 `세월오월’사태 관련 광주시에 일침

 ‘반드시 ~해야 한다’는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살아갈 것인가,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자신이 생각하는 옳은 방식으로 새로운 조건들을 만들어갈 것인가? 무엇이 더 나은 방법인지 대답하기란 어렵다. 단, 후자를 택한 이들만은 예외다. 이들은 숱한 반대에 부딪혀도 자신의 ‘선택’을 믿는다.

 일본에서 ‘노숙 공동체’를 이루고 살며, 예술 활동에 활발히 참여하고 있는 이치무라 미사코가 광주를 찾았다. 한국에는 그녀의 노숙생활을 고스란히 보여준 다큐영화 ‘레드마리아(2012)’ 주인공 중 한 명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이치무라 미사코의 이번 광주 방문은 광주비엔날레 20주년 특별 강연시리즈의 일환인 포럼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지난 9일 광주비엔날레 거시기홀에서 진행된 이번 강연은 ‘점거의 기예’라는 주제로 도시에서 예술의 사회적 가능성을 모색하는 논의의 장이었다.

 

집세를 벌기 위해 사는 삶 거부

 

 발제자 중 한 명으로 강단에 선 이치무라 미사코는 자신을 “11년째 노숙생활을 하고 있는 노숙자이자 예술인”으로 소개했다.

 교토 세이카대학을 거쳐 도쿄예술대학원을 수료한 그녀가 노숙생활을 시작한 것은 2003년. 당시 도쿄의 한 자취방에 거주하던 그는 작품 활동으로 번 돈을 온전히 집세로 지불했다.

 “집세를 벌기 위해 사는 것 같았어요. 집세를 벌기위해 누군가와 경쟁을 해야 하고, 작품 활동의 즐거움은 점점 사라지고요.”

 그녀는 ‘일’에 대한 생각을 뒤집으면서 타인과 경쟁하지 않고도 즐겁게 일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도쿄 요요기 공원에 천막을 치게 됐다.

 “이미 공원에는 30, 40년째 노숙생활을 하고 있는 노숙자들이 있었어요. 상상을 초월하는 다양한 이유로 이곳에 모여든 사람들과 ‘공동체’ 생활이 시작된 것이죠.”

 요요기 공원에 조성된 ‘노숙 공동체의 삶’은 넘치면 나누고 부족하면 메우면 되는 단순한 삶의 방식이었다.

 “노숙인들과 함께 주말에 ‘그림이 있는 카페’를 열어요. 때때로 그림교실을 운영하기도 하고요.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가져오면 차를 한 잔 대접합니다. 싱싱한 꽃 한 송이를 찻값으로 받은 적도 있어요.”

 자신이 선택한 삶이 결코 남보다 못하다거나 편견의 잣대로 해석되는 것을 거부하기라도 하듯 그녀는 발제 내내 일말의 의심 없이 당당한 표정이었다.

 

 재개발·자본화 공원조차 검열 대상

 

 단 그녀의 얼굴이 잠시 어두워진 순간이 두 번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여성 노숙자’의 삶으로 프리즘을 확대할 때였다.

 “보통 노숙자라고 하면, 남성 노숙자를 떠올리기 쉽습니다. 정확한 통계는 아니지만 대략 여성 노숙자들 10% 정도가 돼요. 이들은 여러 가지 위험 상황에 노출될 염려가 있기 때문에 숨어 지내서 보이지 않는 것뿐이죠.”

 그녀 역시 노숙생활을 시작하며 성적 피해를 입은 적이 있다. 하지만 그녀는 비단 노숙생활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느 곳에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여성 노숙자도 이를 대변하는 사례라고 설명한다.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 그녀는 여성 노숙자들 간의 ‘연대’를 이루고 있다.

 또 다른 그녀의 고민은 ‘공유지’의 개념이다.

 “공공공간의 대표적인 장소가 공원인데, 공원조차 ‘검열’의 대상이 되고 있어요. 지자체가 알아서 공원이름을 바꿔버리고, 공원의 성격을 바꿔버리기도 하죠. 최근 한 공원은 ‘나이키’사의 지원을 받아서 이름을 ‘나이키 공원’으로 바꾸고 스포츠 활동만을 하도록 하는 일이 있었어요.”

 그녀는 노숙생활이 한계에 부딪힐 때마다 이 땅이 누구를 위한 공간이어야 하는지, 정부의 재개발을 위해 누군가의 터전이 무참히 짓밟혀도 되는 것인지, ‘공유지’는 어떤 이상과 꿈이 실현 돼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게 됐다.

 고즈넉하게만 보이는 노숙 생활 가운데서도 그녀가 사회가 쳐놓은 위험스런 그물망을 무시하지 못하는 이유다. 그녀는 자신이 택한 삶, 어떤 권위에도 구속받지 않고 최소한의 풍요를 누리는 삶과 연장선상에 있는 사회운동에도 활발히 참여하고 있다.

2020 도쿄 올림픽 준비는 ‘배제화’ 내재

 

 특히 2020년 도쿄 올림픽에 반대하는 운동을 이끌고 있는데, 이를 예술 활동으로 승화시켜 ‘도쿄올림픽 반대 퍼포먼스’ 등을 벌이는 중이다.

 “대규모 메가 이벤트는 마치 한 도시와 국가의 성장일로를 약속하고 화려한 장면을 연출하지만 실은 그렇지가 않아요. 현재 도쿄는 도쿄올림픽에 대비해 도시재개발을 위한 법령을 만들어서 ‘배제’를 가속화 하고 있어요. ‘배제’의 대상은 늘 힘없는 자들이고요.”

 ‘배제’에 주목하는 있는 이치무라 미사코가 이번 광주비엔날레에서 일어난 홍성담 작가의 ‘세월오월’ 전시유보 사태에 대해 언급한 뒤 따끔한 일침을 가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처음에 제가 강연을 오기로 약속한 광주비엔날레에서 이런 사태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오고 싶지 않았어요.”

 하지만 결국 그녀는 비행기에 올랐다. ‘검열에 반대한다’는 자신의 의견을 직접 전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홍성담 작가가 ‘민중’화가고, 그 그림이 ‘옳은’ 그림이고 그런 이념 논리에서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광주라는 역사적인 장소에서 ‘검열’이라고 볼 수 있는 일이 일어났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어요.”

 일본 역시 예술작품에서 천황을 소재로 하는 것이 금기시 돼 있다. 때문에 그녀는 권력을 향한 목소리가 억압될 가능성에 주목했다.

 

권력과 충돌 때 감시·비판을 존재화하라

 

 “권력을 그리고, 권력에 대해 비판하고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은 쉽지 않죠. 반대편에 서서 목소리를 내는 것은 복잡한 권력관계와 맞서야 하는 어려운 과제에요. 하지만 이런 사태가 있고 나서 발표·회의 등을 통해 그 반대급부가 항상 응시하고 있다는 ‘존재감’을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두 다 현실 속에 있으면, 현실을 바로 보지 못할 것이다. 그곳에서 조금 비껴나 소신껏 외침을 이어가는 이들에게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김우리 기자 uri@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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