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재 본채만 덩그러니 남은 최부잣집에는 최순 씨와 딸, 단 둘이 살고 있다.
`최부자’ 후손 최순 씨, 가옥 사수 위해 평생 싸움
전남대 “기부 받은 것…용지 활용하고 싶어”
광주시 “개입 여지없어”…전문가 “문화유산 인식을”

 문화재급 건축물로 인정받고 있는 사직공원 입구, 남구 사동 ‘최부잣집’이 소유권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몇십 년째 방치·훼손되고 있다. 토지와 건물로 나뉘어 각각 전남대와 후손이 소유권을 별도로 행사하고 있는 이분적 구조 탓인데, 광주시가 매개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최부잣집’은 흥학관을 건립한 최명구 선생 가문이 명맥을 이어온 근대 목조 가옥으로 1942년에 상량된 이래 광주 남구 사동을 지키는 몇 안 되는 고택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최부잣집은 허술한 관리로 인해 일부 훼손이 진행된 데다 지난한 소유권 다툼으로 상처만 남게 됐다.

 최부잣집 소유권 문제는 부지 소유자와 가옥 소유자가 다른 데서 연유한다. 5940㎡(1800여 평)의 최부잣집 부지는 전남대 소유, 단 하나 남아 있는 안채는 최명구 선생의 후손인 최순 씨와 최윤성 씨의 소유다. 지금은 최상현 선생의 큰 손녀 최순(77) 씨가 딸 한 명과 단둘이 가옥에 거주하고 있다. 개인이 2층 규모의 거대한 고택을 지키고 관리해야 하는 실정인 셈이다.

 그렇다면 최부잣집은 왜 광주시 문화재로 지정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문제의 발단은 4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재 최부잣집 소유자인 최순 씨에 따르면, 최명구 선생의 아들 최상현 선생이 장남 성숙 씨에게 가옥의 소유권을 넘겨줬으나 성숙 씨는 37세의 이른 나이에 작고했다. 최순 씨의 아버지였던 성숙 씨가 세상을 떠난 뒤 광주에서 제일 부자였던 최 씨 가문은 가장의 부재로 인해 재산 수성이 어려워졌다.

 이때 최 씨 가문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손모 씨가 등장한다. 손 씨는 8만 달러를 지불한 뒤 최부잣집 가옥과 부지를 넘겨받고는 전남대에 증여해 버렸다. 1964년의 일이다.

 당시 이화여대 음악과를 졸업하고 귀향한 최순 씨는 그 때부터 가옥을 사수하기 위한 지난한 싸움을 시작했다.

 어떻게든 최부잣집을 되찾으려한 최순 씨는 결국 1993년, 전남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4년 뒤인 1997년 일부 승소해 본채를 돌려받았다. 하지만 수차례의 탄원서 제출에도 불구 최부잣집 부지는 전남대 소유로 남으면서 가옥의 유지 및 보존에 차질이 생겼다.

 지난 몇십 년 새 최부잣집 부지를 둘러싸고 있던 돌담과 솟을대문은 전남대 측에 의해 허물어져, 벽돌담이 들어섰다. 전남대는 최순 씨 소유의 본채만 남겨놓고 나머지 시설물엔 손을 대기 시작했다.

 최순 씨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거세게 항의하고 대항했지만 소용없었다. 이를 막기 위한 법률적 장치 또한 없었다. 결국 최순 씨는 최부잣집을 온전하게 지키기 위해 문화재로 등록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여전히 전남대라는 벽은 높았다.

 작년 최 씨는 광주시를 찾아가 문화재 등록을 위한 자료조사와 소유자 동의 절차 등의 협조를 구한 바 있다.

 하지만 광주시는 당시 최 씨의 요구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없었다. 시 관계자는 11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최부잣집 부지가 전남대 소유인 한 광주시가 개입할 여지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전남대에 땅을 내놓으라며 떼를 쓸 수 없는 노릇이라는 것.

 실제로 전남대는 최부잣집 부지를 철저히 사유재산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본보는 이날 전남대 관계자에게도 전화를 해 최부잣집 소유권 분쟁과 관련한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다.

 이날 전남대 측은 최 씨의 문화재등록과 관련한 동의를 거부한 것과 관련해 “(최부잣집 부지는) 국유지이고, 전남대가 관리만 대신 해주는 입장이기 때문에 문화재 등록 절차를 독단적으로 수행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최순 씨가 본채를 전남대에 팔기만 한다면, 그 땅을 전남대 측에서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을 텐데 그렇지 못해 답답하다”는 속내를 밝혔다. 전남대가 최부잣집 부지를 재산의 관점에서 활용할 의지가 있음을 내비친 것이다.

 최 씨가 최부잣집을 문화재 등록을 위해 사방팔방을 뛰어다니는 동안 광주시는 최 씨에게 어떠한 도움도 주지 못하고 있고, 전남대의 답변도 늘 한결같다.

 때문에 최부잣집을 보존하기 위해 이를 재산으로 보는 주체들의 소유권 다툼을 중단하라는 목소리가 높다. 근대 문화유산으로서 보존가치가 충분한 만큼 몇 십 년간의 분쟁을 끝내고, 하루 빨리 문화재로 등록하기 위한 수순을 밟아야 한다는 것.

 이를 위해 전남대의 협조, 광주시의 적극적인 중재가 필수적이다. 최순 씨가 문화재 등록을 위해 아무리 발 벗고 뛰어도 소유주인 전남대가 거절하고 광주시가 강 건너 불구경 하는 수준으로 손을 놓는다면, 그 사이 최부잣집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본채마저 복구가 불가능한 지경에 이를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한편 최 씨와 전남대가 최부잣집을 두고 다툼을 벌이는 동안 1800여 평의 부지를 채우던 11칸의 문간채가 헐리고, 장대한 솟을대문은 사라졌다. 현재 최 씨가 거주하고 있는 최부잣집 본채 기와부분이 훼손되고 있고, 기와를 받치는 서까래는 일부 부패되기 시작했다.

김우리 기자 uri@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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