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만세 평화도서관’
그러나 이제 더 이상 그럴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세월호 참사에 마음 아파하고 잘못된 국가운영에 대해 거리에서 촛불을 드는 일에-마음으로든 행동으로든-참여하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었던 지난 시간을 지내면서, 또 광주는 37년 전 광주민중항쟁으로부터 지금까지 크고 작은 여러 일들을 겪어내면서, 평화와 이웃, 공동체에 대한 감수성이 점차 또렷해지고 있는 것이다.
▲동네 작은 도서관의 평화 선언
동네책방 숨 역시 지난 7년의 시간을 돌아보니, 평화와 생명, 공동체에 관한 관심이 끊이질 않았고 부족하나마 이와 관련된 일들을 해 왔다. 그것이 바탕이 되어 이번주 (11월14일, 화요일) 운영하던 책만세도서관을 ‘책만세 평화도서관’으로 명명하고 새로운 각오로 시작하겠다는 선포식을 하게 되었다. 비록 동네 작은 도서관이지만, 만나는 이웃과 함께 평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고 행동을 할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작은 경험이라도 하나씩 쌓여 간다면, 우리 사회의 평화를 향한 마음과 행동은 점차 구체화되고 확산되어 갈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책만세 평화도서관’을 새롭게 시작하며 우리가 일상에서 이루어가야 할 평화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책을 만났다. 30권이 넘는 어린이 책을 쓴 작가로 애니메이션 텔레비전 쇼인 ‘토드 월드’로 자주 에미상 수상자로 거론되기도 하는 미국작가 토드 파의 ‘평화책 the Peace Book’(꿈교출판사:2016) 이다. 이 책에는 27문장의 ‘평화는 ___이다’가 나온다. 아주 쉬운 문장이지만 그 내용을 곱씹어 보면, 진정한 평화는 거대한 담론으로 정의되는 무언가가 아니라, 강대국에 의해 전쟁을 멈추는 어떤 물리적 상황이 아니라, 바로 우리 일상에서 이뤄진다는 점이다.
“평화는 친구를 새로 사귀는 거야 / 평화는 물고기들을 위해 물을 푸르게 하는 거야 / 평화는 다른 종류의 음악을 듣는 거야 / 평화는 누군가를 아프게 했을 때 미안하다고 말하는 거야 / 평화는 이웃을 돕는 거야 / 평화는 여러 가지 다른 책을 읽는 거야 / 평화는 네가 사랑하는 누군가를 생각하는 거야 / 평화는 신발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신발을 주는 거야 / 평화는 나무를 한그루 심는 거야 / 평화는 밥을 나눠 먹는 거야 / 평화는 다른 옷을 입어 보는 거야 / 평화는 눈이 내리는 걸 지켜보는 거야 / 평화는 거리를 깨끗하게 하는 거야 / 평화는 친구를 안아주는 거야 / 평화는 모두에게 집이 있는 거야 / 평화는 텃밭을 가꾸는 거야 / 평화는 낮잠을 자는 거야 / 평화는 다른 말을 배워보는 거야 / 평화는 세상 모든 사람에게 피자가 넉넉하게 있는 거야 / 평화는 누군가를 따뜻하게 해 주는 거야 / 평화는 아기가 새로 태어나는 거야 / 평화는 자유로운 거야 / 평화는 다른 곳을 여행하는 거야 / 평화는 별을 보며 소원을 비는 거야 / 평화는 네 자신의 모습 그대로인거야 / 평화는 서로 다름을 아는 거고 스스로를 기분 좋게 느끼는 거고 다른 사람들을 돕는 거야 / 네 덕분에 세계는 더 좋은 곳이 되는 거란다.”-‘평화책’본문내용-
▲“평화는 상태가 아니라 관계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에는 ‘내가 생각하는 평화는 ( )입니다’라는 빈 칸을 마련해 두어 읽는 이가 완성하게 하고 있다. 어려서부터 세상을 바꾸는 데 관심이 많았고, 어떤 사람이 지구 저 멀리에 있는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믿어왔던 작가가 내 놓은 ‘평화’의 개념은 누구나에게 평화는 이미 네 곁에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세상이 더 좋은 곳이 되기를 바라면서…우리 모두가 안전하고 행복한 세상, 친절하고 서로 돕는 세상, 아무도 배고프지 않고 슬프거나 두려워하지 않는 세상 평화롭게 여러분이 자신의 모습 그대로 살아갈 수 있는, 더 좋은 세상을요…’라고 책머리에 적은 작가의 인사말은 사실 우리 모두가 꿈꾸는 세상이다.
한 신문의 칼럼에서 “평화는 상태가 아니라 관계다. 아프고, 슬프고, 외롭고, ‘버림받은’ 사람들이 서로를 알아보는 순간의 위로. 나는 그런 평화를 기원한다. 그런 평화는 믿는다. 이것이 우리에게 허락된 유일한 평화다”(한겨레 2016년 1월/ 정희진의 어떤 메모) 라고 쓴 글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평화라면 살아내는 일상에서 경험할 수 있겠다. 어린이들에게 들려주기만 할 뿐 전혀 감흥 없는 문장덩어리가 아니라 이 사회를 책임 있게 이끌어 가고 있는 어른들이 취해야 할 행동양식이다. 그런 평화가 나로부터 시작하기를 기원한다.
문의 062-954-9420
이진숙 <동네책방 숨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