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만세 평화도서관’

 평화. 요즘 우리나라 상황에서 이 보다 더 절실한 말은 없을 것이다. ‘나와 내 가족’이라는 가장 가깝고 작은 단위만 생각하고 삶을 꾸려나가기도 벅찬데, 이젠 ‘한반도 평화와 국제관계’라는 논문제목과 같은 상황을 날마다 들여다봐야 하니 말이다. 사실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이면서도 통일이나 평화에 무관심한 것이 일반 국민들의 인식이었다. 오래된 휴전상황은 전쟁의 대한 위기감을 희석시켰고 핵실험을 한다지만 피부로 느껴지는 위협도 아니었다. 국가폭력에 대한 저항의식이 생겨난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 그나마도 보수와 진보라는 이름으로 그 입장차가 극명하니 그 사이에 있는 대다수의 국민들은 그저 평온하게 내 삶을 잘 살아내는 것이 제일 중요할 따름이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그럴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세월호 참사에 마음 아파하고 잘못된 국가운영에 대해 거리에서 촛불을 드는 일에-마음으로든 행동으로든-참여하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었던 지난 시간을 지내면서, 또 광주는 37년 전 광주민중항쟁으로부터 지금까지 크고 작은 여러 일들을 겪어내면서, 평화와 이웃, 공동체에 대한 감수성이 점차 또렷해지고 있는 것이다.
 
▲동네 작은 도서관의 평화 선언 

 동네책방 숨 역시 지난 7년의 시간을 돌아보니, 평화와 생명, 공동체에 관한 관심이 끊이질 않았고 부족하나마 이와 관련된 일들을 해 왔다. 그것이 바탕이 되어 이번주 (11월14일, 화요일) 운영하던 책만세도서관을 ‘책만세 평화도서관’으로 명명하고 새로운 각오로 시작하겠다는 선포식을 하게 되었다. 비록 동네 작은 도서관이지만, 만나는 이웃과 함께 평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고 행동을 할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작은 경험이라도 하나씩 쌓여 간다면, 우리 사회의 평화를 향한 마음과 행동은 점차 구체화되고 확산되어 갈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책만세 평화도서관’을 새롭게 시작하며 우리가 일상에서 이루어가야 할 평화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책을 만났다. 30권이 넘는 어린이 책을 쓴 작가로 애니메이션 텔레비전 쇼인 ‘토드 월드’로 자주 에미상 수상자로 거론되기도 하는 미국작가 토드 파의 ‘평화책 the Peace Book’(꿈교출판사:2016) 이다. 이 책에는 27문장의 ‘평화는 ___이다’가 나온다. 아주 쉬운 문장이지만 그 내용을 곱씹어 보면, 진정한 평화는 거대한 담론으로 정의되는 무언가가 아니라, 강대국에 의해 전쟁을 멈추는 어떤 물리적 상황이 아니라, 바로 우리 일상에서 이뤄진다는 점이다.

 “평화는 친구를 새로 사귀는 거야 / 평화는 물고기들을 위해 물을 푸르게 하는 거야 / 평화는 다른 종류의 음악을 듣는 거야 / 평화는 누군가를 아프게 했을 때 미안하다고 말하는 거야 / 평화는 이웃을 돕는 거야 / 평화는 여러 가지 다른 책을 읽는 거야 / 평화는 네가 사랑하는 누군가를 생각하는 거야 / 평화는 신발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신발을 주는 거야 / 평화는 나무를 한그루 심는 거야 / 평화는 밥을 나눠 먹는 거야 / 평화는 다른 옷을 입어 보는 거야 / 평화는 눈이 내리는 걸 지켜보는 거야 / 평화는 거리를 깨끗하게 하는 거야 / 평화는 친구를 안아주는 거야 / 평화는 모두에게 집이 있는 거야 / 평화는 텃밭을 가꾸는 거야 / 평화는 낮잠을 자는 거야 / 평화는 다른 말을 배워보는 거야 / 평화는 세상 모든 사람에게 피자가 넉넉하게 있는 거야 / 평화는 누군가를 따뜻하게 해 주는 거야 / 평화는 아기가 새로 태어나는 거야 / 평화는 자유로운 거야 / 평화는 다른 곳을 여행하는 거야 / 평화는 별을 보며 소원을 비는 거야 / 평화는 네 자신의 모습 그대로인거야 / 평화는 서로 다름을 아는 거고 스스로를 기분 좋게 느끼는 거고 다른 사람들을 돕는 거야 / 네 덕분에 세계는 더 좋은 곳이 되는 거란다.”-‘평화책’본문내용-
 
▲“평화는 상태가 아니라 관계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에는 ‘내가 생각하는 평화는 ( )입니다’라는 빈 칸을 마련해 두어 읽는 이가 완성하게 하고 있다. 어려서부터 세상을 바꾸는 데 관심이 많았고, 어떤 사람이 지구 저 멀리에 있는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믿어왔던 작가가 내 놓은 ‘평화’의 개념은 누구나에게 평화는 이미 네 곁에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세상이 더 좋은 곳이 되기를 바라면서…우리 모두가 안전하고 행복한 세상, 친절하고 서로 돕는 세상, 아무도 배고프지 않고 슬프거나 두려워하지 않는 세상 평화롭게 여러분이 자신의 모습 그대로 살아갈 수 있는, 더 좋은 세상을요…’라고 책머리에 적은 작가의 인사말은 사실 우리 모두가 꿈꾸는 세상이다.

 한 신문의 칼럼에서 “평화는 상태가 아니라 관계다. 아프고, 슬프고, 외롭고, ‘버림받은’ 사람들이 서로를 알아보는 순간의 위로. 나는 그런 평화를 기원한다. 그런 평화는 믿는다. 이것이 우리에게 허락된 유일한 평화다”(한겨레 2016년 1월/ 정희진의 어떤 메모) 라고 쓴 글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평화라면 살아내는 일상에서 경험할 수 있겠다. 어린이들에게 들려주기만 할 뿐 전혀 감흥 없는 문장덩어리가 아니라 이 사회를 책임 있게 이끌어 가고 있는 어른들이 취해야 할 행동양식이다. 그런 평화가 나로부터 시작하기를 기원한다.
문의 062-954-9420

이진숙 <동네책방 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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