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원과 마주하는 시간 택배 수령·분리 수거”
경비원들 “살아남으려면 ‘우리 일’ 여겨”

▲ 광주 동구의 한 아파트 단지에 도착한 택배회사 차량이 물품을 내리고 있다.<동구시니어클럽 제공>
 경비원들에게 택배나 주차 관리, 분리수거 등 기타 업무 지시를 금지하는 법이 존재하지만, 주민들은 여전히 택배 수령 업무를 ‘경비원의 가장 주된 업무’로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개정된 공동주택관리법 개정안에 따르면, 경비원에게 본연의 업무를 넘어선 부당한 지시를 할 수 없다. 경비원의 본연의 업무란, 감시·단속 업무를 말한다.

 하지만 실제 대부분 현장에선 준수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 광주시비정규직지원센터가 진행한 ‘광주지역 아파트경비노동자 간담회’에서 한 경비원은 “감시·단속적 업무 외에도 택배 관리, 음식물 쓰레기 수거 및 세척, 쓰레기 분리 수거, 청소, 화단 제초 작업 등 온갖 허드렛일을 다 시킨다”고 증언했다.

 특히 “택배관리가 가장 문제”라며 “초소도 협소하고 좁아 동선을 막는 문제, 휴게장소가 마련되지 않아 좁은 공간에서 쉬어야 하는 문제, 밤 늦은 시각 택배 관련 방문 등이 힘들다”고 덧붙였다.

 경비원들의 이같은 호소와는 달리, 아파트 주민들은 경비원의 존재 이유를 택배와 연관짓고 있음이 여실하다.

 본보가 광주지역 아파트 주민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대부분은 “경비원의 업무 중 택배 보관·수령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수완지구 B 아파트 주민 조은경 씨는 “평소 인터넷 쇼핑을 자주 이용하는데, 직장인이다 보니 경비실에 자주 맡기게 된다”며 “경비원과 유일하게 마주치며 대화하는 순간은 택배 수령할 때와 쓰레기를 분리수거할 때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아파트 주민 입장에서는 가장 중요한 업무는 택배 보관·수령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광산구 월곡동 K 아파트에서 만난 주민 강희석 씨도 “아파트 입주한지 10년 동안 경비 아저씨들과 택배를 받으면서 관계를 맺어왔다”며 “법(공동주택관리법·경비원 택배 업무 금지) 같은 것을 잘 모르는 주민들은 모두 분리 수거나 택배 보관, 제설작업 등이 경비원들의 주 업무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아파트 주민 김광희 씨는 “미혼이나 맞벌이 부부의 경우, 낮 시간대 집에 아무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택배 수령이)주민들을 위해 꼭 필요한 서비스”라고 말했다.

 한편 감시·단속 업무 외 업무 지시를 금지한 ‘법 개정’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인식이 강했다.

 서구 광천동 J 아파트 주민 정모 씨는 “아파트 현실을 잘 모르고 나온 법안인 것 같다”며 “경비원 분들이 해오던 일을 이제는 누가 해야 하나”고 반문했다.

 같은 아파트 주민 조재형 씨도 “경비원들을 위한 법이 아닌 것 같다”면서 “보안 업무만 한다면 오히려 현재처럼 경비원들이 근무하는 게 아니라 아파트 중앙에서 보안업체들이 들어와 업무를 보는 게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수완지구 B 아파트 경비원 A씨는 이에 대해 “지난해 경비원에 지원할 때 이미 법이 바뀐 것을 알고 있었지만 처음부터 택배나 기타 업무들을 각오하고 들어왔고 실제 지금까지 해오고 있다”면서 “현장에서는 주민이 원하는 역할을 해야 우리 직업이 유지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최저임금 인상과 해고 위협, 경비업체 등과의 경쟁 등으로 인해 업무 경감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 않다”고 해석하기도 했다.
김현 기자 hyun@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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