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70번 이상 택배 주고받고…
“주민 위해 감수, 보관 장소라도”

▲ 광주의 한 아파트 경비실. 경비원 옆에 택배 물품 상자가 쌓여있다.
 아파트 경비원들이 쏟아지는 ‘택배’ 물량에 직격탄을 맞고 있다. 최저임금 상승에 따라 경비원 감축·해고가 이어지면서 살아남은 경비원들의 업무가 가중된 탓이다.

 여러 개의 동을 돌며 택배 주고받기를 하루 평균 70여 차례. 분리수거, 주차관리 등 할 일은 많은데, 늘어난 택배 업무에 매이게 되자 ‘택배 경비’라는 자조 섞인 푸념이 나온다.

 최근 법에선 경비 업무 외에 다른 역할을 금지했지만, 주민들은 여전히 택배를 경비원의 주요 업무로 인식하고 있다. ‘타 업무 금지’ 조치는 언제 잘릴지 모르는 경비원들에게도 반갑지 않은 소식이다.

 처우는 날로 악화되고 있고, 비좁은 경비실은 택배가 쌓여 “닭장”이 되는데도 경비원들이 숨 죽여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오전엔 수령하고, 오후엔 배출하고

 광주 광산구의 K아파트는 3년 전 최저임금 인상 등을 이유로 경비원을 삼분의 일로 줄였고 올해는 휴게시간을 늘리는 편법으로 임금 인상을 막았다.

 한 명의 경비원이 2개 동을 맡게 됐고 오히려 임금도 줄었지만, 경비원이 소화해야 하는 택배는 차고도 넘친다.

 “택배 때문에 하루에 60~70번씩 뛰어다녀요. 한 동(120여 세대)에 하루 30개 정도 받으니까 두 개 동에 60개죠. 거기다 택배 도착할 때 한 번, 주민이 가지러 올 때 또 한 번 이렇게 받으랴 내주랴 정신없습니다.”

 이곳 아파트는 복도형 구조에 가로로 긴 구조다. 경비실 기준으로 아파트 간 거리가 최대 500m 이상이어서 수시로 오가는 데 무리가 된다. 오전에는 택배기사로부터 택배를 전달받고, 오후에는 주민에게 전달해 주느라 ‘휴게시간’은 있으나마나.

 “지하실에 가서 밥을 해먹는데, 한 숟갈 뜨면 핸드폰이 울려요. 택배 찾으러 온 주민이에요. 한 끼에 서너 번씩 그런다고요. 언제 목이 날라 갈지 모르니까 바로 달려가는 거죠. 한편으론 찾아가기만 해도 다행이에요.”

 전날 찾아가지 않은 택배가 다음날까지 남아있는 건 예삿일이다. 다음날 도착한 택배까지 더해져 1~2평 남짓한 경비실은 금세 ‘택배 창고’가 된다.

 “경비실을 보세요. 이게 어디 사람이 있는 곳입니까? 경비원들은 이곳을 ‘닭장’이라고 불러요. 택배 박스 때문에 다리 뻗을 공간도 없어요.”
 
▲경비실은 닭장…다리 뻗기도 힘들다

 경비원 A씨는 이날이 월요일이어서 택배가 별로 없는 날이라고 했다. 주말을 지나 월요일에 배송을 하면 보통 화요일에 도착하는 택배가 많다는 것. 이곳 아파트는 별도로 개별 세대에 연락할 인터폰이 없기 때문에 베란다 불 켜진 것을 확인해 경비원이 직접 현관문까지 배달하는 일도 잦다.

 광주 광산구의 H아파트의 경우, 2년 전 택배 수령 과정의 일부를 첨단화 한 뒤 경비원의 부담을 줄였다. 동 출입구에서 비밀번호를 입력하면 택배 알림이 뜨고, 주민이 경비실에 맡겨진 택배를 수령해 가는 시스템이다.

 이로 인해 택배 분실과 훼손의 가능성이 낮아졌고, 경비원과 주민 간 택배를 놓고 벌어지는 갈등 상황도 줄어들었다. 하지만 이곳 경비원 역시 하루 30개 이상씩 쌓이는 택배 물량을 감당하기엔 역부족이다.

 “장갑 끼고 빗자루 들고 단지를 쓸고 있는데, 택배 가지러 오면 하던 일을 내팽개치고 가야해요. 요즘엔 반품하려고 택배를 다시 맡기는 주민들도 많아요. 명절 때는 넘쳐나는 택배를 경비실에 들일 수 없어서 바깥에 쌓아놓기 때문에 꼼짝 못하고요.”
 
▲택배회사도 막무가내…고통 가중

 경비원 B씨는 택배 보관품 대장을 보여주며, 하루 한 장(20개 목록)도 부족할 때가 많다고 했다. 5~6개 택배회사 기사들과 하루에도 여러 번씩 마주치다 보니 크고 작은 마찰도 생긴다고.

 “택배 기사들도 바쁘니까 택배를 경비실에 놓고 가버려요. 주민과 연락이 안 닿은 거죠. 하도 많은 택배가 있으니까 언제 왔는지도 모르게 새로운 택배가 와 있는 거예요. 나중에 주민이 ‘왜 연락하지 않았느냐’면서 그 불똥이 경비원들한테 튀어요.”

 쌓이는 택배만큼 경비원들의 고충도 많지만, 경비원들에게 택배 업무는 “하고 싶지 않지만 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다.

 “어느 누가 경비원 가만히 앉혀놓고 돈 줄까요? 주민편의를 위한 일이다 생각하면 못할 것도 없지요. 그래도 최소한 별도의 택배 보관창고를 만들어주면 더 바랄게 없을 거 같아요. 택배 가 공간 차지할 일도 없고, 택배 보관 부담이 조금이라도 줄어들 거고요.”

 한편 광주비정규직센터가 2016년 실시한 광주 관내 212명 아파트경비원 노동자 대상 설문조사에서 경비 업무 외 업무에 대한 응답으로 ‘택배관리’ ‘분리수거 관리’ ‘주차관리 및 단속’ ‘제설 방재’ 업무가 모두 95%를 상회했다.
김우리 기자 uri@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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