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16일 유희경 시인과 ‘문학하는 하루’

▲ 지난 16일 진행된 유희경 시인과 만남 행사.<동네책방 숨 제공>
 올 겨울은 며칠동안 눈이 펑펑 내리더니 또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더군요. 미세먼지로 며칠을 답답하게 하더니 곧 한파가 온다는 예보도 들립니다. 그러니 겨울엔 긴 밤 내내, 방에 콕 박혀 간식 먹으며 소설이든 시든 문학작품 들고 읽는 일이 최고 호사구나 싶습니다.

 “선생님이 시를 낭송하셨을 때 단어들이 이리 저리 움직였어요. 제가 마치 선생님 말들 사이로 넘실거리는 배 같았어요.” - 안토니오 스카르메타의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중

 지난 1월16일 저녁에 동네책방 숨에서는 문학이며 시에 관한 이야기가 넘쳐났습니다. 서울 신촌에서 시집전문서점 ‘위트 앤 시니컬’을 운영하는 유희경 시인과 함께 하는 ‘문학하는 하루’ 행사를 진행했기 때문인데요, 시인이면서 서점 운영자라서 그런지, 문학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이야기들에 참가자들의 몰입도도 높고 재미도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이야기 사이에 들려준 시 그리고 낭독하는 목소리는 비 오는 소리와 함께 어우러져 무척 낭만적인 순간을 선사하기도 했습니다.

 열두 살에 죽은 친구의 글씨체로 편지를 쓴다.
 
 안녕. 친구. 나는 아직도
 사람의 모습으로 밥을 먹고
 사람의 머리로 생각을 한다.
 
 하지만 오늘은 너에게
 나를 빌려주고 싶구나.
 
 냉동실에 삼 년쯤 얼어붙어 있던 웃음으로
 웃는 얼굴을 잘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구나.
 
 너만 좋다면
 내 목소리로
 녹음을 해도 된단다.
 
 내 손이 어색하게 움직여도
 너라면 충분히
 너의 이야기를 쓸 수 있으리라 믿는다.
 
 답장을 써주기를 바란다.
 
 안녕. 친구.
 우르르 넘어지는 볼링핀처럼
 난 네가 좋다.
 신해욱의 시 ‘보고 싶은 친구에게’
 
 ‘시집이 필요하다고 느껴질 때 (손에) 들 수 있는 용기’가 있다면 이미 문학을 하고 있는 독자라는 이야기, 시를 읽으면 혼자가 되는 시간을 가질 수 있고, 점이었던 것이 미로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될 거라는 이야기가 괜시리 마음을 설레이게 하더군요.

 ‘문학’이 무엇인지 왜 시를 읽어야 할지, 독자가 된다는 건 문학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것인지 등등 어렵게 느껴졌던 문학이나 시에 대한 여러 담론을 들으며 한층 시를 읽고 싶은 마음이 든 것은 저 뿐만이 아닌 듯 했습니다.

 “혼자 쓰고 혼자 읽습니다. 문학이란 근본적으로 혼자 생산하고 즐기는 것이겠지만, 동료시인, 소설가, 독자를 만나 내가 사랑하는 작품과 매혹의 가능성을 가진 작품에 대해 ‘함께’이야기 하는 것은 얼마나 즐겁고 또 필요한 일인가요.”라는 시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저희 ‘동네책방 숨’이 이런 만남을 가능하게 하는 곳으로서 서점이 될 수 있기를 소망했습니다.

 아름답지도 잊히지도 않는 가늘고 긴 바람이 있어 얼굴은 성냥처럼 붉어지고 쌓인 가지에선 그늘 부러지는 소리 얼어붙은 새벽은 어둡고 조용했네 기억은 왜 자꾸 언덕을 낳는지 미끄러지듯 가팔라져가는 마른 눈 맞으며 그때 나는 무엇을 찾으러 가는 중 이었을까

 ‘겨울의 언덕’-유희경의 두 번째 시집 ‘당신의자리:나무로자라는방법’ 중
이진숙 <동네책방 숨 대표>

▲함께 읽고 싶은 시
유희경 ‘오늘아침단어’(문학과 지성사. 2011)
 ‘당신의자리-나무로 자라는 방법’(아침달. 2017)

한강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문학과 지성사. 2013)

박남준 ‘박남준시선집’(펄북스.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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