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이후 북한 정세&초기 조선 공산당

 한 시대를 살아가는 것은 누구에게나 힘겹고 부대낌이 있다. 인간이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미약한 존재로 보잘것없이 스러지기도 하고 시대의 위인으로 우뚝 서기도 하기 때문이다. 근현대사가 복잡다난했던 우리나라는 더욱 그러하다. 구한말로부터 이어진 백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변화와 비극이 공존했는가 살펴볼 때면, 그 시대에 살지 않은 것이 오히려 다행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지난달 열린 동계올림픽 덕분에 ‘우리나라’와 함께 ‘북한동포’에 대해 다각적으로 생각할 기회가 많았다. 더 이상 통일에 대해 기대가 없는 세대가 등장했다는 이야기부터, 북한 고위급대표단의 방남을 기점으로 극우 보수주의자들이 가진 ‘쳐부수어야 할 적’에 대한 두려움이 극명히 드러나기도 했다. 여전히 지속되는 민족적 비극은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더욱 복잡해진 이념갈등 때문이구나 싶다. 그런 의미에서 조선희 작가의 장편소설 ‘세 여자 : 20세기의 봄’(한겨레출판)은 단편적으로만 짐작했던 그 시대-특히 우리에게는 금기시 되었던 ‘조선공산당’의 변천사를 엿볼 수 있게 하는 보기 드문 수작이다. 두 권으로 이루어진 방대한 역사 이야기이지만, 한번 읽기 시작하면 책을 놓을 수 없을 만큼 흥미롭게 전개된다. 독자로 하여금 어느새 그 시대로 훅 들어가 일제강점기의 조선을 살고 모스크바와 북경 등 대륙의 곳곳을 누비게 한다.
 
▲금기시된 역사를 엿보다

 이름만 들었을 뿐 더 살펴볼 수 없었던 ‘초기 조선공산당’의 인물들이 즐비하게 등장하며 한국전쟁 이후 분단 상황의 북한정세까지 엿보게 되니, 네 편 내 편을 따지기보다는 시대 전체를 아우르는 눈으로 우리의 지난 역사를 보게 한다. 이 장대한 이야기의 흐름을 이끄는 ‘세여인’이 바로 주세죽, 허정숙, 고명자이다. 이름도 낯설고 역사 속에 묻혀있었던 세여인의 이야기를 발굴해 내 들려주는 이 소설은, 읽을수록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과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 같다.

 세여인 중 한 명으로, 박헌영의 아내로만 알려졌던 주세죽은 헌신과 열정의 화신이었다. 역사의 굴레에서 숱하게 겪는 어려움을 온 몸으로 받아내며, 결국 일본스파이로 몰려 카자흐스탄 유배지에서 홀로 외로이 숨져갔으나 마지막까지 자신의 삶에 대한 고귀함을 놓지 않았던 여인이었다. 또 한 명, 분단 후 북한 조선노동당 최고위원의 자리까지 올랐던 허정숙은 누구보다도 자유롭고 낭만적이었다. 자유연애를 부르짖던 젊은 시절부터 북한 정권의 실세를 살다 나이 들어 생을 마감할 때까지, 특유의 호방함과 자유로움으로 살벌한 역사의 무대 위에 꿋꿋이 자신의 삶을 살아갔다. 마지막 여인, 강경의 고판사댁 고명딸 고명자. 그녀는 별다른 선택 없이 부모가 하라는 대로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았다면 변화무쌍한 시대의 흐름에서 비켜서서 편안하게 몸종을 부리며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이상(理想)과 변화를 위해 투신하는 주세죽 허정숙과의 운명적인 만남을 통해 자신만의 인생을 살기로 결심한 고명자는, 과감하리만치 역사 앞에 자신을 내 던지는 선택을 한다. 무수한 어려움을 겪지만 결코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고 홀로 죽음을 맞이하는 마지막 외로움까지 견뎌내었다.
 
▲혼자 몸으로 역사를 상대하다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시대를 살아도, 매순간 삶에 충실하며 자신에게 정직하고 동지들을 온전히 사랑한 그녀들을 만난 것은 가슴 떨리는 일이었다. 비극적인 근현대사를 지닌 우리나라의 역사 속에서, 자신만의 특별했던 인생을 살았으나 남성 영웅들 곁에 흘러가듯 묻혀버린 그들을 살려낸 작가는 12년 만에 소설을 완성하면서, ‘혼자 몸으로 역사를 상대했던 이 여자들은 새로운 사상과 이념이 애드벌룬처럼 떠오르던 20세기 초반에 지옥 속에서도 가끔 봄날을 살아냈다’고 적고 있다

 그들이 살았던 시대와 지금은 100년의 차이가 있지만, 분단국가로 여전히 첨예한 갈등을 드러내고 있는 요즘의 현실에서, ‘나라면 어땠을까? 세 명 중 누구처럼 살고 싶은가’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한발 비켜서서 내 가족 먹고 사는 일에만 관심을 두면 안전하리라는 생각은 이미 허황된 것임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결국 어느 시대를 살더라도 어떻게 살 것인가가 중요하다. 독립운동가처럼 목숨을 내어 맡기는 급박한 시대는 아니더라도,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거창한 말이 아니더라도, ‘이곳에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은 계속되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지금-오늘’을 살아내고자 하는 우리에게 인간으로서의 존귀한 자부심과 시민으로서의 깨어있는 의식을 가지고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 수 있게 하리라.

 깨어있는 시민으로 오늘을 살기 원하는 이들에게 → ‘세 여자 1, 2 : 20세기의 봄’ 조선희 글 (한겨레출판, 2017)
문의 062-954-9420

이진숙 <동네책방 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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