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도장’ 권윤덕 글 그림 (평화를 품은 책 : 2016)

 지난 며칠 특별한 제주 여행을 하고 왔습니다. ‘제주4·3 발생 70년’이 되는 올 해, 권윤덕 작가의 ‘나무도장’ (평화를 품은 책 : 2016)의 이야기를 따라 제주 곳곳을 살펴보고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문학기행이었는데, 경기도 파주의 평화를 품은 집, 부산 책과 아이들, 광주 책만세 평화도서관(동네책방 숨) 등 평화를 사랑하는 활동가들이 함께했습니다. 평화를 품은 집과 제주착한여행사가 주최한 이번 제주4·3 문학기행은 권윤덕 작가, 강중훈시인과 함께 ‘나무도장’의 모티브가 되었던 제주4·3평화공원, 관덕정, 빌레못 동굴, 북촌마을, 동광리 큰넓궤동굴과 월령리 무명천 할머니 삶터, 성산읍 성산리 터진목 등 주요 4·3 유적지를 따라가며 당시 제주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4·3유족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듣고, 그날의 현장을 온몸으로 느끼는 시간이었습니다.
 
▲70년 지나도록 풀지 못한 아픈 매듭
 
 제주도는 1947년부터 약 8년이 채 안 되는 시간동안 당시 전체 제주도민의 10% (3만여명)가 죽어간 - 아직 제대로 이름도 갖지 못한 ‘제주4·3사건’으로, 너무도 아름다운 섬이지만 곳곳에 슬픈 역사가 배어있습니다. 오랜 식민지배에서 벗어나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어야 할 그 시절에 발생한 이 사건은, 제대로 된 나라의 틀을 스스로 갖추지 못해 발생한 비극이었고 냉전체제의 이념전쟁에 양민들이 희생된, 70년이 지나도록 풀리지 않은 우리나라 현대사의 아픈 매듭인 것입니다. 역사에는 늘 원인과 결과가 있고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다지만, 가해자이며 피해자인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또 자신의 뜻과 달리 시대의 광풍 속에 그 자리에 섰어야 하는 이들도 얼마나 많았는지 생각하니 제주의 역사가 더 이상 그들만의 상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까이는 광주오월도 세월호참사도 아직도 여전한 이념의 갈등도 이제는 좀 더 다른 눈으로 봐야 하는 것인 아닌지 묻게 되었습니다.

 제주 4·3 70주년을 맞는 제주의 분위기는 다소 들뜬 듯 보였는데, 촛불정권으로 불리우는 문재인대통령이 10여년만에 추념식에 참석하기 때문이고 어떤 메시지가 나올 것인지 제주 4·3의 진상규명과 배·보상을 위한 특별법은 어떻게 처리가 될런지 기대와 우려가 섞여 있기 때문인 듯 싶었습니다.

 그렇기에 ‘나무도장’의 이야기는 이번 여행에서 더욱 의미 있었습니다. 이 책은 학살의 현장에서 살아남은 한 소녀의 이야기를 통해, ‘제주 4·3’을 돌아보고 그 상처를 어루만지는 그림책입니다. 작가 권윤덕은 3년여의 시간을 통해 답사와 인터뷰, 철저한 고증과 모니터링을 거쳐 역사적 사건을 객관적으로 정확히 재현하려 애썼습니다. 그리고 비극의 현장에서도 끝내 버릴 수 없었던 실낱같은 희망을 간결한 글과 제주의 풍광처럼 아름다운 그림으로 그려 냈습니다. 평화를품은책 출판사는 이 책을 “문학과 예술은 어렵지만 피할 수 없는 이야기를 자연스레 나눌 수 있게 해 줍니다. 이야기를 통해 다른 이의 아픔에 공감하는 경험을 한 아이들은, 또다시 이런 역사가 되풀이되려할 때 누군가를 아프게 하지 않을 길을 찾게 될 것입니다.”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살아가면서 진정 중요한 것은?
 
 이야기는 유품인 나무도장을 물려받은 소녀 시리를 통해 가해자이지만 생명의 은인이 된 이를 어떻게 볼 것인지 묻고 있습니다. ‘나 자신이 가해자일 수 있다는 자각으로 문제들을 직면하게 될 때 우리 사회의 변화와 성찰이 일어나지 않겠느냐’는 권윤덕 작가의 나직한 말에 모두들 숙연해 지기도 했습니다. 성산읍 성산리 터진목 학살터를 돌보고 있는 70대 중반의 강중훈 시인은 4·3 사건의 피해자로 가족 8명을 잃고 굴곡진 인생을 살아왔지만 다시 고향에 터 잡고 섬의 아픔을 문학으로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누구의 탓으로 돌려야 할지 알 수도 없고 이젠 돌이킬 수도 없다면, 무엇으로 이 해결되지 못하고 반복되는 갈등과 원한을 끊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사랑밖에 없습니다’ 라며 제주4·3을 화해와 상생으로 나아가는 원동력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결코 쉽지 않은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이 사회를 위해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를 위해 지금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읽은 ‘나무도장’은 새로운 흔들림으로 마음에 다가왔습니다. 어머니와 삼촌이 시리를 돌보며 매년 제사를 지내고 사연담긴 나무도장을 건네준 것은, 다음 세대에게는 아픔이나 원한보다는 사랑을 누리며 살라고 말한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진정으로 무엇을 중요하게 여겨야 할까요. 힘이나 권력, 풍요와 편리함을 넘어서는 일은 정말로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다움, 생명, 정의와 사랑을 이루어가는 것이 진정한 인생이 아닐까…. 질문이 많아지는 봄이 왔습니다.
이진숙 <동네책방 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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