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의 힘’ ‘광주의 발견’은 언제쯤?

▲ 1980년 이후 영상작품에 등장하는 광주전남은 ‘5·18’ 아니면 ‘조폭’일 정도로 특별했다. 일상을 다룬 영화는 언제쯤 가능할까? 홍상수 감독의 작품 ‘강원도의 힘’ 한 장면.
 작품의 공간배경으로 ‘지역’을 끌어 들이는 것이 홍상수 영화의 특징 중 하나다. ‘강원도의 힘’은 강릉과 그 주변, ‘생활의 발견’은 춘천과 경주,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는 부천, ‘극장전’은 대전과 전주, ‘잘 알지도 못하면서’는 제주, ‘하하하’는 통영.

 그런데 흥미롭게도 홍상수 영화에 광주전남은 없다. 그의 영화뿐 아니라 TV드라마 같은 대중적인 영상물에 광주전남은 늘 없다. 정확히 말해서 없는 것은 아니다. 광주전남은 매우 특별한 방식으로만 있다.

 1980년 이후 영상작품에 등장하는 광주전남은 ‘5·18’ 아니면 ‘조폭’이었다. 5·18과 조폭을 한 몸으로 묶어버린 작품이 ‘모래시계’(1995)였고, ‘화려한 휴가’(2007)와 ‘스카우트’(2007)는 조폭을 양념삼아 5·18을 다뤘다. ‘꽃잎’(1996)과 ‘택시운전사’(2017)는 5·18을, ‘가문의 영광’ 시리즈와 ‘신세계’(2012), ‘불한당’(2016) 같은 작품이 ‘전라도 조폭’을 등장시킨다. 더 많은 영화와 드라마를 열거할 수 있으나 동어반복이다. 5·18과 조폭을 벗어난 ‘전라도 배경 영화’를 찾기는 정말로 어렵다.

 광주전남에 대한 외지인들의 ‘특별한’ 인식은 ‘오리엔탈리즘’과 유사하다. 오리엔탈리즘에는 일상이 제거되어 있다. 일상이란 너도 나도 누리는 것이어서 타자의 일상을 인정하는 순간, 나와 타자는 동일한 선상에 놓이게 된다. 오리엔탈리즘은 타자의 일상을 인정하지 않고, 늘 특별하게 취급한다. 오리엔탈리즘은 타자와 나를 분리하고자 하는 운동력을 작동시킨다. 이 운동력은 신비주의, 혹은 배제나 차별로 전진한다. 동양의 신비, 여성의 신비가 어렵지 않게 동양과 여성에 대한 비하와 짝을 짓는다. 민주화의 성지 광주, 폭도와 깡패의 도시 광주를 아무렇지도 않게 나란히 세운다.
 
▲늘 특별대우 ‘5·18’과 ‘조폭’
 
 2004년 즈음이었을 것이다. 광주문화중심도시 관련 방송토론이 있었다. 진보적인 인사로 분류되는 서울 모대학의 A교수는 토론회에서 “어떻게 광주가 이럴 수 있는지, 너무나 안타깝다”며, 결코 꾸민 것으로 보이지 않은 슬픈 표정을 지었다. 그는 ‘상무지구’의 휘황찬란한 불빛을 안타까워했다.

 방송 토론 하루 전날 밤, 술집 밥집 호텔 모텔 등의 네온사인이 ‘찬란한’ 상무지구를 둘러본 A교수는 과연 여기가 광주인가, 광주가 이렇게 타락해도 되는가, 라는 회한에 빠졌다는 것이다.

 A교수의 심정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상무지구’는 광주만의 유별난 문제가 아니다. 한국 도시개발의 일반적인 현상이다. 광주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다. 한국근현대사에서 광주가 지닌 저항적 에너지의 위상이 남다른 것도 사실이지만, 그만그만한 사람들이 보통의 욕망을 갖고 살아가는 일반적인 공간이 광주이기도 하다. A교수의 발언은 광주에 대한 호·불호 어느 쪽 감정을 지니고 있든지 간에 광주를 ‘특화’시키고자 하는 의지가 작동하고 있음을 확인시켜주었다.

 오랜 시간 광주에 거주하면서 외지에서 온 언론인, 편집인, 시민활동가, 정치인 등을 만나왔다. 그들 대부분은 광주를 특별하게 취급했다. 특별하다는 것은 예외적이라는 것이다. 특별하다는 것은 유별나다는 것이다. 특별하고 유별나고 예외적인 것에는 어떤 식으로든 ‘차별과 배제’가 뒤따른다. 너무 지나친 해석일까. 다시 홍상수 영화로 돌아가자.

 홍상수 감독 영화의 주요한 특징은 일상 재현이 구체적이고 섬세하다는 점이다. 그 재현은 리얼리티에 근거하면서도 매우 전략적이다. 관객으로 하여금 “맞아, 저런 경우가 있지”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이끌어 내는 게 리얼리티라면, 필부필녀들의 찌질함과 위선을 극대화시켜 표현한다는 점이 전략적이다. 단골 관객층의 꾸준한 지지를 받고 있는 홍상수 영화의 힘이 ‘전략적 리얼리티’에 있다는 게 내 해석이다. 때문에 그의 영화가 최종적으로 안겨주는 정서적 파장은 ‘당혹스러운 재미’이거나 ‘씁쓸한 카타르시스’이다.

 공간 배경으로 지방 소도시(혹은 그만그만한 여행지)가 자주 배치되는 까닭은 ‘전략적 리얼리티’를 구현하기에 적합해서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서울이라 하더라도 ‘북촌방향’처럼 공간이 분명하게 제한된다. 지방소도시, 혹은 적절히 제한된 공간에서는 우연한 부딛힘, 상호간섭, 소문의 발생과 번짐 등 사람들 간의 ‘좌충우돌’이 흔하고 자연스럽다. 홍상수가 표현해 내는 ‘당혹’ 혹은 ‘씁쓸한’ 경우가 자주 발생하는 것이다. 거대 도시이거나 깊은 산중이라면 사람들 사이의 ‘좌충우돌’은 충분히 피해갈 수 있다. 확실히 지방소도시는 홍상수 영화에 잘 어울린다. 그런데 왜 홍상수 영화에는 광주나 순천이나 목포나 여수 같은 전라도 도시가 안 나오는지 나로서는 불만이다. 혹여 ‘광주전남’을 일상의 공간으로 배치하는 것에 부담을 느낀 건 아닐까 추측해 보는 것이다.
 
▲‘일상’을 다룬 작품을 기대한다
 
 오래전부터 영상작품은 광주전남을 특별하게 다뤘다. 특별함은 ‘5·18’과 ‘조폭’으로 요약할 수 있다. 5·18은 유별나게 성스럽고, 조폭은 유별나게 잔인하거나 비겁하다. 이 같은 현상들이 고쳐졌다는 증거는 아직 찾기 어렵다. 어느 정도 사실관계에 근거한 것이어서 굳이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문제는 그것만 있고 나머지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5·18’과 ‘조폭’은 앞으로도 계속 만들어질 것이고, 그대로 두면 된다. 광주전남에도 ‘일상’이 있다는 평범한 사실이 중요하다. 차별과 배제의 반댓말은 ‘추앙’이 아니다. 평등이다. 평등을 생활로 바꾸면 일상이다. 그 일상이 작품으로 탄생하기를 기대한다. 제주도 배경에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인어공주’(2004)가 있다. 이런 작품들이 좀 더 만들어지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다만, 기왕에 홍상수 감독이 전국 곳곳을 영화의 배경으로 활용한 만큼 광주전남 또한 피하지 말고 와서 카메라를 들이 댔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심란하기 짝이 없는 홍상수의 캐릭터들이 광주나 목포나 순천을 마구마구 헤집고 다니는 것이다. 허튼 우정을 과시하고, 맘에도 없는 사랑을 약속하고, 저도 잘 모르는 철학을 나불대고, 이순신 장군 때문에 화를 내는 그런 장면 뒤에 무등산이나 옛 전남도청, 양동시장처럼 광주사람들에게 익숙한 풍경(그러나 어떤 외지인들에게는 신성시되는)들이 펼쳐졌으면 좋겠다. 찌질하고 칙칙한, 가끔은 화사한 생활이 있는 도시로서 광주전남을 ‘새롭게(!)’ 해석하는 그런 영화의 등장을 기다린다. 제목은 ‘전라도의 힘’, 또는 ‘광주의 발견’이 어떨까.
이정우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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