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흥초등 신문 격주 발행…“학생 누구나 기자”
급식부족 사태 점검·모범학생 선정 찬반 논쟁도

▲ 올해 광주 문흥초등학교는 학교신문 ‘이스크라’를 발행한 이후 시교육청을 통해 신문기사 작성 수업을 듣기도 했다.<광주시교육청 제공>
 칸칸을 나누고 큼직한 제목을 붙여 배열한 기사들. 영락없는 신문의 형태다. 하지만 기자는 따로 없다. 아이템과 형식의 제한도 없다. 누구나 기자가 될 수 있고, 어떤 소재도 기사가 될 수 있는 이 신문의 이름은 ‘이스크라’. 광주 문흥초등학교에서 2주에 한 번 발행 중인 학교신문이다.
지난 13일 발행된 문흥초등 학교신문 ‘이스크라’ 3호.

 이스크라는 실명 대신에 ‘눈물보’, ‘내맴샘’과 같은 필명을 사용한다. 필자가 드러나면 다소 민감할 수 있는 소재라도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하나의 장치인 셈이다. 학교소식을 전달만 하는 기존 학교신문 형식을 탈피하고 학생 목소리가 십분 반영된 기사가 주를 이룬다. 학교신문 제호 이스크라는 러시아어로 ‘불꽃’을 뜻하며, 1917년 독재 체제에 반대해 레닌이 만든 신문의 이름에서 따왔다.
문흥초등 조재호 교사.

 “정말로 학생들이 읽고 쓰는 신문이 있었으면 했어요. 학교는 ‘건강관리식단’과 같은 어른의 언어를 사용하지만, 학생들은 그런 말을 쓰지 않거든요. ‘어떻게 하면 맛있는 급식 메뉴를 먹을 수 있을까?’처럼 아이들의 언어가 있어요. 그래서 학생 누구에게나 신문 지면을 열어두기로 했죠.”

▲“학생을 위한 학교신문” 필요성 절감

 문흥초 조재호 교사는 이스크라가 창간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올해 학생회 업무를 맡게 된 그는 “학생을 위한 학교신문”의 필요성을 절감했다고. “학생 스스로 판단하고 목소리를 내기 힘든 구조라면, 학생을 대표하는 학생회조차 제 기능을 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반응은 지난달 23일 1호 신문이 발행되자마자 나타났다. 이스크라 제작에 참여하고 싶다는 학생들이 여럿 등장한 것. 신문 상단에 새겨진 ‘자유를 바라는 문흥초 학생과 교사 일동’이란 문구와 무겁지 않은 분위기가 신문의 문턱을 낮춘 것이다. 지난 24일 네 번째 신문까지 발행됐고, 5호 신문 발행을 앞두고 있다.

 곧장 편집을 잘 하는 학생, 그림을 잘 그리는 학생, 핵심을 콕 집어내는 학생 등 6명(현도희, 이가영, 박여빈, 정현주, 김지영, 천민희)의 고정멤버가 꾸려졌다. 2호부턴 ‘선생님을 그려라’라는 고정 코너까지 생겼다. 각 반을 소개하는 게 주된 목적이지만, 학생이 직접 그린 담임선생님의 초상화를 실어 심심하지 않은 코너가 됐다.

 1페이지엔 주로 학생회 소식이 연재되고, 2페이지엔 시의성 있는 기사와 사설, 그림 등이 실린다.

 어느 날은 학교 급식이 부족해 밥을 먹지 못한 3학년 학생이 문제를 제기해 바로 기사(2호, ‘좀 더 주시면 안돼요?’)가 되기도 했다. 학교 행사가 있던 날이어서 외부인이 식사를 하게 돼 급식부족 사태가 불거졌다는 내용이었다. 기사를 본 교사들은 교직원회의를 통해 ‘외부인 식사 제한’이라는 수습책을 마련했다.

 모범학생 표창을 놓고 지면상에 찬반 기고문(4호, ‘모범학생 정하기 찬반 논쟁 배틀’)이 실린 일도 있었다. 눈물보 기자의 ‘모범학생 정하기는 모범적인가’ 기사에 대해 글쓴이 ‘zlrock1107’의 ‘모범학생 뽑지 말자’는 글과 ‘5학년 권태경’의 ‘개선점이 있으면 개선하자’는 의견이 대립했다. 결국 전교회장단 다모임에서 난상토론을 벌였고, 투표를 통해 근소한 차이로 ‘모범학생 표창’ 폐지로 결론이 났다.
 
▲ 학생자치 진전…선생님 초상화 코너 인기
 
 신문을 통해 논의의 장이 열리고, 실제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걸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신문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예상치 못한 문제들도 생겼다. 일부 교사들은 학생들의 따끔한 문제제기에 상처를 입었고, 전문적이지 못한 취재로 인해 2% 부족한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학교 인쇄소는 지면을 선명하게 인쇄하기에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소외됐던 학생들의 목소리가 전면에 등장했다는 사실만으로 문흥초등학교는 학생자치에 한 발 가깝게 다가섰다. 민주주의란 서로 다른 입장이 부딪히기도 하면서 문제를 개선해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여는 것임을 몸소 깨닫는 중이다.

 “신문은 2주에 한 번 나오지만, 제작팀은 매주 모여 토론을 해요. 아이들이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많이 성장하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선생님들 역시 기고문을 통해 학생들과 소통을 시작했고요. 이제 작은 걸음을 뗐지만, 희망이 있어요.”

 올해 문흥초등 이스크라는 총 24회 발행을 계획하고 있다. 학생회 선거가 예정된 시기에는 후보들의 소개와 공약을 담은 ‘특별판’을 발행할 예정이다.
김우리 기자 uri@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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