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만원 ‘73광수’ 지목에 분노한 광주시민 38년 만에 증언
임종수 소장 찾아 “더이상 침묵 않겠다, 진실규명 앞장”

▲ 5·18 당시 헬기가 금남로 주변을 날아다니고 있는 모습.<5·18기념재단 제공>
5·18민중항쟁에 대해 침묵하며 살아왔던 한 시민이 지만원의 북한특수군 주장에 격분, 침묵을 깨고 ‘그날의 진실’을 증언했다.

20일 5·18기념문화센터 임종수 소장에 따르면, 지난 19일 오후 한 시민이 센터를 찾아왔다.

이 자리에서 그는 자신이 “지만원 책자에 나오는 ‘광수(광주에 나타난 북한 특수군) 73’”이라고 밝혔다. 그의 이름은 지용(76) 씨.

그는 1980년 5월 당시 계엄군의 만행을 보고, 광주항쟁에 직접 참여했다. 박남선 상황실장 등과 총기를 들고 외곽순찰과 도청경계 업무를 봤던 그는 5월26일 밤 옷을 갈아입기 위해 나왔다가 계엄군의 도청 진압작전으로 다시 도청에 돌아가지 못했다.

이후 지명수배된 그는 29일경 보안대 합동수사본부에 자수했고, 그간 사업으로 쌓은 재력과 인맥으로 곧바로 사면돼 풀려났다.

지 씨는 그간 5·18에 대해 ‘침묵’하고 살아왔다. 5·18 유공자 신청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 그가 38년 만에 입을 열게 된 것은 지만원 때문이었다.

지만원은 5·18민중항쟁 당시 사진 속에 있는 사람들을 북한 특수군이라고 억지 주장을 펴고 있다. 지만원은 한 사진에서 지 씨를 ‘광수’ 561명 중 ‘제73 광수’로 지목했다.

▲5·18 외면, 유공자 신청도 않고 살았지만

지 씨는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지만원이 ‘제75광수 리선권’으로 지목한 홍모 씨의 인터뷰 내용과 함께 실린 사진을 본 지 씨의 딸이 ‘73광수’라고 지목된 이가 아버지의 젊은 시절 모습임을 알아 보고, 지 씨에게 카카토옥 메시지를 보내왔다.

이게 19일로부터 이틀 전이다. 지 씨는 화를 참지 못해 지만원과 ‘광수’에 대한 자초지종을 알고자 임 소장을 찾았다.

지 씨는 임 소장을 만난 자리에서 “이따위 황당한 사진을 올린 놈이 누구며, 광수가 무슨 말인가 알고 싶어 왔다”며 “열이 무지하게 끓어오른다”고 분을 참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만원이 5·18 당시 광주에 투입된 북한특수군으로 지목한 광주시민들. 오른쪽에서 두 번째에 있는 ‘제73광수’로 지목된 지용(76) 씨가 지난 19일 5·18기념문화센터를 찾아 38년 만에 침묵을 깨고 계엄군의 만행을 생생히 증언했다.<5·18기념문화센터 임종수 소장 제공>|||||

지만원의 악의적 주장에 분을 참지 못한 지 씨는 임 소장을 만난 자리에서 5·18 때 직접 경험하고 본 것들을 털어놨다.

“5월18일 시내에 나왔다가 충장로 3가 기업은행과 공작다방 앞에서 계엄군들이 다구장에서 젊은이들을 끌고 내려와 개머리판으로 내리 찧고 무릎을 꿀힌 상태에서 착검한 대검으로 이들의 허벅지를 마구 쑤시는 장면을 봤다.”

청년 시절 레슬링을 해 건장한 체격을 가진 지 씨는 계엄군과 격투를 벌이다 허리를 다치기도 했다. 이때 입은 허리 부상으로 상당한 후유증을 겪고 있다고.

특히, 그는 계엄군의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집 근처 불로동 다리 지나다 수십발 목격”

그는 “도청 집단발포가 일어난 21일 이후 22일이나 23일 경 낮으로 기억한다”며 “집 근처에 있는 불로동 다리를 지나던 중 헬기가 도청 전일빌딩 쪽을 향해 총을 수십발 쏘는 장면을 생생하게 목격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전일빌딩 10층 내부에서 발견된 총탄 흔적이 ‘호버링(공중 정지’ 상태의 헬기에서 사격해 생긴 흔적이라는 감정 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탄환이 발견되지 않아 총기를 특정하진 않았지만 탄흔이 부채살 모양으로 퍼져있는 것 등을 토대로 “헬기에 장착된 기관총으로 사격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히기도 했다.

헬기사격과 관련해 중요한 증언을 제시한 지 씨는 “이번 일을 계기로 더 이상 침묵하지 않겠다”며 “5·18 진실을 밝히는데 앞장 서겠다”는 뜻도 밝혔다.
강경남 기자 kkn@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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